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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Park Jun 15. 2019

캐나다에서 드디어 일을 시작하다.

좌충 우돌 캐나다 영주권과 취업 도전기

멀리 국경을 갔다가 무사히 Work Permit을 받고 5시간 가까이 걸려 다시 캔모어로 돌아왔다. 비자에 찍힌 일할 수 있는 날짜는 2018년 7월 24일이었다. 비자 받으러 간 날짜 다음 날짜로 바로 발급해 준 것이다. 내가 받은워크 비자는 1년 짜리 비자로써 LMIA가 허용하는 1년 기간만 딱 일할 수 기간만 부여한다. LMIA가 2년짜리를 발급 받는 사람들은 2년 기한으로 기간을 부여한단다. 난 왜 2년이 아닌 1년인가? 답은 간단했다. 나를 고용하는 고용주가 1년 LMIA를 애초부터 신청했었고 나는 이 고용주에게 고용되면 그 기간만 일할 수 있는 것이다. 영주권을 손에 넣으려면 1년이면 모자라지 않을까? 이주공사를 통해 확인한 바로는 공부를 시작한 조리사 자격증을 획들 후 11월에 있을 FSTW (Federal Skilled Trade Worker) 의 Draw 를 통한 Express Entry로 진행할 경우 난 늦어도 2019년 6-7월 안에는 영주권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일정이었다.


아직 일도 시작하지 않은 나에게 과연 고용주가 쉽게 그리하라고 할 수나 있을까? 이주공사 담당자와 십도있게 얘기한 결과, 그 얘기는 쉽게 하시면 안된다고 하였다. 캐나다의 LMIA로 일할 사람들을 고용하는 고용주의 입장은 이렇다. 1) 인력을 쉽게 구할 수 없으므로 LMIA 라는 캐나다 정부가 만든 제도를 통해 인력 수급을 나름 쉽게 할 수 있다. 2) 피고용인을 구하더라도 FULL TIME으로 채용할 경우, 시급으로 일하는 피고용인 보다는 봉급을 적게 그리고 많은 시간을 부여하여 부릴 수 있다. 3) LMIA를 하려면 고용주의 재정상태가 괜찮아야 하고, 인력 채용을 하고자 하나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피력해야만(인터뷰를 통해) 채용할 수 있는 T/O를 부여 받는다. 4) 고용주 나름대로 어렵게 T/O를 확보하여 피고용인을 채용할 경우, 최대한 오래 잡고 일을 시키고자 한다. (왜? 인력을 구하기 힘들고 일한 시간만큼 시급을 많이 안줘도 되니까...)


여기서, 고용인과 피고용인 간에 시비나 해석이 틀려질 수가 있다. 피고용인 입장에서는 내가 당신의 가게에서 열심히 일을 하여 가게에 손님이 많을 경우, 고용인이 경제적으로 부를 축적할 것이고 피고용인 덕분에 가게가 온전히 운영되기 때문에 피고용인의 노력 없이는 고용인이 운영하는 가게는 절대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궁극적인 피고용인의 목적은 무엇인가? LMIA 제도를 이용하여 취직도 하고, 취직을 하면 영주권 지원에 필요한 점수가 UP되고 결국에는 영주권 지원하여 내 손에 영주권을 하루라도 빨리 받는 것이다. 그러나, 피고용인의 입장은 그렇지 않다. 내 재정 정보를 모두 오픈하여 캐나다 정부에 보고를 해야하는 부담이 있고, 어렵게 구한 직원을 빨리 보내주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든 오래 눌러 앉히고 싶은 것이 고용주의 속마음이다.



내가 일하기로 한 음식점의 고용주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워크 퍼밋을 받자 마자 아니나 다를까 바로 일을 하자고 하였다. 나의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일하기 시작한 날짜는 7월 24일이었다. 한국에서는 식당일을 해 보았으나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이 곳 음식점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주방 일은 고용주의 아내, 사모님이 교육을 해 주셨고, 해야 할 일, 마치는 시각, 해서는 안될 것 등등 배울 것이 너무 많았다. 음식 레시피부터 외워야 했고 생소한 메뉴도 익혀야 했고, 잔심부름부터 무거운 음식 재로 등등 할 일이 샐 수 없이 많았다. 더군다나 이 음식점은 일하다 그만 둔 직원이 3월 달에 떠난지라 내가 오기까지 한정된 인원으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가게는 Banff와 가까운 관광지에 위치하고 있어 관광객들이 무척 많이 방문하는 곳이 었다. 즉, Banff가 숙박, 음식점들이 많이 비싸 근처 도시인 Canmore에 숙박하고 식사도 해결했다. 더군다나 Canmore에는 한식점이 딱 한군데 밖에 없다보니, 한국사람 뿐만 아니라 중국사람들도 많이들 찾아 오는 곳이다. 첫 날은 이것저것 교육을 받으면서 사모님 보조로 정신없이 일을 하다보니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오전 9시 30분에 시작한 업무가 밤 10시가 넘어서야 끝난 것이다. 식당 일이 힘든 것은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무릎이 아픈 나였기에 수술한 왼쪽 무릎이 퇴근하니 아파왔다. 휴일은 일주일에 딱 하루만 주어졌고, 매주 화요일은 가게가 휴무다. 다행인 것은 아침, 점심, 저녁은 식당에서 다 해결이 가능하였고 식사 대금은 받지를 않으셨다. 더우기 한식으로 매끼를 때우는 것도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다른 고용주들 같은 경우 식사는 별도로 해결하라고 한단다. 중간 휴식시간 1시간을 빼면 하루 근무 시간은 12시간이 넘었고, 꽤 긴 시간이었다.


매주 하루 쉬는 화요일은 캘거리로 가서 조리사 자격증 공부를 하러 갔다 오기에 일주일 내내 쉬는 날은 공부하고, 나머지 6일은 일하는 강행군을 시작하게 되었다. 일을 마치면 10시에서 10시 반쯤 되고, 조리사 자격증 튜터께서는 매주 숙제를 내 주는데 이 숙제를 완료해 가려면 매일 밤마다 졸리는 눈을 손으로 비벼가면서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조리사 자격증 공부를 하다보면 어느덧 새벽 2시를 넘기는 날이 다반사였다. 이렇게 뜬눈으로 공부를 하다 화요일에 캘거리에 공부를 하러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지하철, 시내버스를 타고 도착하면, 호랑이 같은 튜터께서 반갑게 맞아주시지만 이내 숙제가 미비되었음을 인지하시고 곧 바로 싫은 소리가 들린다. "에휴~ 6일 내내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서 시달리다가, 여기 와서 또 시달리는구나~"



본인의 스토리는 현재 진행 중이며,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읽으시는 독자들에게 용기를 드리고 싶고 개인적으로 질문이 있으신 분은 카카오톡 ID: jaehan16으로 연락 주시면 시간이 나는데로 답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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