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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Park Mar 29. 2019

Jay의 긴 여정 전 고통의 시간들

좌충 우돌 캐나다 영주권과 취업 도전기

1월 추운 어느날 밤이었다. 부산의 날씨는 서울과는 달리 온도계의 온도는 그리 낮지 않으나 실제 바닷 바람이 차기 때문에 실제 느끼는 체감 온도는 상당히 낮다. 오늘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저녁 8시쯤 집을 나서서 대리 운전 일을 하고 있었다. 밤 12시까지 4건 정도 운행하고 시계가 새벽 1시를 가리킬 무렵 콜이 하나 들어왔다. 마음은 집으로 향하고 싶었지만 콜이 들어 온 이상 뿌리칠 수 없는 유혹에 그 콜을 잡고 말았다.\



추운 날씨에 종종 걸음으로 매서운 바람을 뚫고 스마트폰 내비를 보고 가던 중에 철길을 넘어 손님이 있었다. 철길을 넘으려면 육교를 건너야 했다. 어쩌겠나? 그래도 건너야지 하는 마음에 날씨도 춥고해서 육교를 뛰어서 오르자고 마음 먹고 3계단 쯤 힘껏 왼발을 박차고 올랐다. 그런데 왼쪽 무릎 쪽에서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래도 손님이 기다리고 있기때문에 아픔을 무릎쓰고 계속 달렸다.


손님을 목적지까지 모셔 드리고 집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아까 다쳤던 왼쪽 무릎이 많이 아프기 시작했다. 집에까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지만 피곤하여 집에 도착하자 마자 씻지도 못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속으로는 아무 일 없겠지? 일단 자고 나서 보자하고 몸을 뉘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왼쪽 무릎이 여전히 아팠고 일어서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왔다. 근처 동네 정형외과를 찾아 진단을 받았으나 근육통이라며 진통제 하나만 나아 주는 것이었다. 진통제를 맞으니 잠시나마 통증은 사라졌으나 시간이 지나면 또 아프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처음 방문한 병원은 돌팔이 같다는 생각에 다른 병원을 찾았고 의사 진단이 나왔는데, 퇴행성 관절염의 시초라고 한다. 내 평생에 무릎이 아파서 병원에 간 적이 없었는데, 아직 나이도 젊고 한데 관절염이라니? 의사선생님께 다시 물으니 1-2차 정도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무릎이 아픈 것은 무릎 내에 물이 찾기 때문이라 한다. 약이나 다른 방법으로는 나을 수 없다고 하시니 더욱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무릎에 주사를 꽂아 무릎에 찬 물을 빼 내고 연골에 도움이 되는 연골 주사를 놓아 주셨다. 주사 바늘을 찌를 때는 아팠으나 물을 빼고 주사까지 맞으니 한결 나았다.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으니 대리운전을 그만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날도 푼돈이지만 나가서 또 일을 하고 아픈 다리를 끌고 들어오는 식의 일상생활이 반복 되었다.


무릎 통증은 갈 수록 심해져서 서울 강남의 유명한 종합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올라갔다. 거긴 한국에서도 유명한 의사들이 모인 곳이 아닌가? 부산 지방 의사들보다 낫겠지 하는 생각과 나은 의료기술이라면 쉽게 통증을 가라 앉히고 치료가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램으로 병원을 들어섰다.


참 사람들도 많고 아픈 사람들도 많나 보다. 그 병원은 수술 한번 받으려면 기본 3-4달은 대기해야 한다고 한다. 정형외과 의사를 만나 진찰을 받았다. 엑스레이를 보더니 역시 퇴행성 관절염이라고 한다. 어릴 때 부터 'O'형 다리 였기 때문에 무릎 안쪽 연골이 많이 닳았고 육교를 오르면서 다친 부위는 연골이 약간 찢어 졌다는 소견이었다. 왼쪽 뼈를 절단하여 휜 'O'형 다리를 펴는 수술과 함께 무릎 연골 수술까지 같이 받으라고 권유하시는 거였다. 오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칠 줄은 몰랐는데 정말 절망 적이었다. 돈 몇 푼 더 벌고자 대리운전을 했던 내가 처량해 보이고 선배들 말대로 콜이 떨어져도 슬슬 걸어다니라고 하던 것을 좀 더 빨리가서 돈 더 벌겠다고 뛰어 다닌게 이런 결과가 닥친 것이다.


아픈 무릎으로 계속 다닐 수는 없어 부산에 있는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결정하고 입원을 하였다. 생전 수술은 처음이라 많이 떨렸고 수술하면 빨리 낫겠지 하는 바램으로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들어 있었던 보험 혜택을 받아 90%까지 수술비와 입원비를 보조 받고 10%만 부담하여 450만원 중 45만원만 병원에 지불했다.

수술 후 재활까지는 약 3개월 가까운 시간이 지나갔고 병원 신세를 지는 동안 가족 생계는 더욱 힘들게 되었다. 마음속으로는 어쨌든 빨리 재활해서 가족을 위해 다시 가장 노릇을 해야 겠다는 마음 뿐이었다.


퇴원 후 후배 식당으로 일을 하러 계속 나갔고 다치기 전의 무릎 상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걸어 다닐 수 있으니 대리 운전도 다시 시작하였다. 물론 옛날같이 절대 뛰어 다니지는 않고 손님이 기다려도 슬슬 걸어서 이동했다.

가계 사정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이 처지를 이겨낼 수 있도록 새 직장을 구하든지 돌파구가 필요했다.


폴리텍 대학교에서 베이비부머들을 위한 과정으로 "스마트 팩토리"란 과정을 개설했고 무료로 수업을 들을 수가 있었다. 원래 컴퓨터 관련 학과를 나왔기에 나의 전공과 비슷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수강 신청을 하고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수업을 하시는 강사님의 말에 의하면 과정 수료 후 진로도 전망이 밝고 특히 나 같은 전공자에게는 정말 적합한 강의라고 하셨고, 수강생 중에서도 늘 주목을 받는 나였다.


해당 강의는 3개월간 진행되었고 내용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으나 종강이 다가오면서 장밋빛 청사진을 바라던 나로서는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수강했던 강의 내용은 영업인을 위한 강의 내용이었고 월급을 받고 채용되는 직장이 아닌 대리점 형식으로 각 기업체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영업을 하여 건 수를 올려 제품을 팔아야 하는 영업사원 직이었다. 강사님께 별도로 찾아가 정규직으로 일할 수 없는지 물어봐도 애매한 답변만 돌아올 뿐 이 과정 수료는 별로 나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음을 뒤늦게 깨닳게 되었다.


그러던 중, 매년 건강관리협회에서 정기 건강검진을 하라는 편지가 날아와 처와 함께 부산의 모 병원에 건강검진 신청을 하고 같이 검진하러 갔었다. 이 날이 내가 캐나다로 오게 된 계기가 된 시초였으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때 접한 정보와 관심이 현재 내가 이 곳 캐나다까지 오게 만든 것이었다.



본인의 스토리는 현재 진행 중이며,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읽으시는 독자들에게 용기를 드리고 싶고 개인적으로 질문이 있으신 분은 카카오톡 ID: jaehan16으로 연락 주시면 시간이 나는데로 답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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