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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Park Apr 11. 2019

Jay의 캐나다를 향한 첫걸음

좌충 우돌 캐나다 영주권과 취업 도전기

 서울로 올라가는 발길은 무거웠지만 또 다른 삶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해 마음 한 구석에는 조금이나마 희망의 싹이 트는 느낌이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아침 햇빛에 비쳐 창 밖에 스치는 풍경들은 왠지 싫지 않았다. 3시간 가까이 달려 서울에 도착하였고, 약속했던 이주공사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여 도착했다.

대부분의 서울 주재 이주공사 들은 강남역을 중심으로 위치하고 있다. 상담 예약을 헀던 3군데 모두 강남역, 역삼역 근처라 이동하기에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첫번째 이주공사로 들어섰었고 해당 이주공사는 홈페이지에 밴쿠버 스시요리사로 재직하면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고용주 리스트를 보유하고 있었었고, 내가 처음 찾았던 희망의 불씨를 보여줬던 업체였다. 사실 다른 업체들보다는 전화로 상담을 친절히 해 주셨고, 나름 신뢰가 가던 업체였다. 그 외 전화를 걸었던 다른 업체들은 전화상으로 상담하는 것으로 꺼려 하였고 직접 방문하는 것을 권유하였었다.


처음 방문한 업체는 예정시간대로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본인의 이력서는 미리 이메일로 부친 터라 도착 시 상담을 할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다. 어느 업체든지 이민을 계획하고 있는 남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고 싶다면 친절, 정확, 신뢰를 줘야만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이 업체는 최소한 2개는 나의 고려 사항을 만족하지 않았나 싶다. 약 1시간의 상담을 진행하는 동안 그 동안 궁금했던 많은 내용을 가지고 질문을 했으며, 친절히 답변을 하나하나 해 주셨다. 다른 업체와의 약속이 잡혀 있었으므로 길게는 하지 못했고 집에 가서 아내와 상의를 하겠다고 하면서 1시간 안에 마무리를 하였다. 


상담 내용은 이랬다. 한국에서 요리 경력이 없거나 많지 않더라도 인성만 훌륭하고 열심히 일하면서 영주권을 취득하겠다는 목표만 있다면 요리 실력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해당 고용주는 꽤나 많은 브랜치를 소유하고 있으므로 원하는 지역이 있으면 해당 지역의 브랜치에 일을 할 수가 있다고 했다. 상담하시는 직원분은 상담 후 본인이 원하면 고용주에게 잘 얘기하여 스폰서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이 1시간의 상담 만으로도 나만 열심히 하여 꾹 참고 일하면 영주권을 취득하는데는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을 시작하고 나서 영주권 취득까지는 3-4년 정도가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장 걸리는 부분은 Salary 였다. 거의 하루 8시간 일하고 일주일에 하루만 휴일을 받는 직업인데 실제 손에 쥐는 돈은 한달에 200만원 정도 밖에 안되는 것이었다. 아, 한국도 그렇지만 캐나다도 Cook 이란 직업으로 일했을 때 받는 봉급이 참으로 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 혼자 생활하면서도 밴쿠버 같은 대도시에서 아파트 렌트비, 생활비, 식비 등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한달에 200만원이란 돈은 결코 넉넉치 않은 돈이었다. 거기다 한국에 있을 아내와 아이들 생계까지 책임지려면 그 돈으로는 턱도 없어 보였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래가지고서는 영주권 뿐만아니라 식구들까지 굶게 하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앞섰다.


점심을 먹고 오후 2시에 예약된 두번째 이주공사와의 상담도 끝냈고, 세번째 이주공사도 역시 방문하여 상담을 하였으나 내가 생각하는 일정 이상의 급여와 적당한 시간의 업무 강도, 확실한 영주권 스폰서를 만족하는 고용주는 찾기가 힘들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다시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서울 올라갈 때의 마음과 내려갈 때의 마음은 같질 않았고, 편치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실망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집에 도착하여 시간을 내어 캘거리에 살고 있는 대학 동창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캐나다에 왔을 때 영주권자로서 받을 수 있는 혜택에 대하여 여러가지 설명을 해 주었고 내가 영주권만 취득만 한다면, 아이들의 미래는 한국에서보다는 훨씬 낫고 교육비 또한 한국에서의 미친 사교육비는 안 써도 된다는 게 요지였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영주권 취득 후 10년 이상 체류하면 은퇴 후 정부로부터 연금도 수령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졌다, 한국에서는 누리지 못할 혜택을 캐나다는 나같은 중년의 나이 이민자들에게도 베푸는 나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나의 현재 사정을 다 들어보고는 어떻게든 영주권을 취득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추천을 해 주었다. 남의 일이지만 친구라는 연으로 나에게 여러가지 정보를 줄 수 있는 참 고마운 친구였다. 친구 역시 캐나다에 이민을 가서 처음에는 안해본게 없었고 지금은 나름 사업을 하면서 성공한 케이스로 캘거리에서도 알려져 있었다. 


친구와 한시간 가까이 통화하면서 다시 도전해 봐야겠다는 의욕이 솟구쳤고 나도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는 오기도 생겼다. 친구가 해 준 얘기 중에 한국의 이주공사를 통하지 말고 캐나다 현지 이주공사를 통하는 게 훨씬 나을 거라는 정보였다. 그러면서, 캘거리에 소재한 이주공사 몇 군데를 소개해 주었고, 캘거리에 있는 CNDREAMS 라는 한인 신문(인터넷 홈피도 있음) 정보를 검색하여 현지 고용주를 직접 찾아 보라는 것이었다. 실제 해당 사이트에 방문하니 한국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구인구직 메뉴에서 한국인 조리사를 구한다는 고용주 리스트를 추려서 한 군데에 이메일을 보내보았다. 답장은 다음날 돌아왔고, 연락을 했던 고용주는 베트남 쌀국수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고 한국에서 군인으로 복무하다 퇴직하고 캐나다로 들어가신 분이었다. 아내분과 같이 가게를 운영하면서 매일같이 오픈하면서 아침부터 음식을 PREP (PREPARATION의 약자)하고 손님을 맞이하고 저녁에 CLOSING 하면 밤 11시가 넘는 생활을 하다보니 많이 지쳐계셨다. 물론 본인을 뽑겠다고 연락을 주신 게 아니라 적지 않은 나이에도 이민을 도전하겠다는 내 심정을 이해하시고 여러가지 조언을 하시겠다고 연락을 주신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고마우신 분이었다. 이 분과 역시 한 시간 넘게 어려운 시간을 할애하여 여러가지 조언을 해 주셨다. 결국 자신들이 찾는 분들은 부부가 같이 와서 일을 하였으면 하는 것이었고, 나의 경우 그렇게 할 수 있는 사정이 되지 않아 조건이 맞지 않았다. 그리고, 해당 식당이 위치한 곳은 인구가 3만명 정도되는 사스케츄완의 소도시였고 이 또한 내가 원하지 않는 지역이었다. 이제와서 보면 대도시보다는 소도시에 이민자들이 꽤나 많이 사업을 하고 계시고 나름 그 곳들에서 정착을하여 살아 가신다.


이 분과 상담 중 결국 도움이 된 것은 현지 이주공사 중에서도 믿을 수 있고 가족같은 마음으로 고용주를 소개하고 그 이후 진행에 대해서도 책임지고 해 줄 만한 업체를 알려 주신 것이다. CNDREAMS에 참 많은 이주공사들이 있지만 어떤 업체가 믿을 만한지 또 영주권 취득 실적이 많은지 알 수가 없었으나 한 군데 업체는 그래도 믿고 맡길 만 하다는 것이었다. 얻은 정보를 가지고 해당 이주공사에 이메일로 질문을 작성하여 보내었고, 또 다른 한군데 업체에도 같은 형식의 질문으로 보내었다.


두 업체로부터 연락이 오길 기도하면서 나는 오늘도 아픈 다리를 끌고 한푼이라도 벌기 위하여 대리 기사 일을 나갔다.




본인의 스토리는 현재 진행 중이며,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읽으시는 독자들에게 용기를 드리고 싶고 개인적으로 질문이 있으신 분은 카카오톡 ID: jaehan16으로 연락 주시면 시간이 나는데로 답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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