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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Park May 11. 2019

Jay는 드디어 캐나다로 향한다

좌충 우돌 캐나다 영주권과 취업 도전기

급하게 진행된 캐나다로의 결정은 속전속결로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출국일 6월 5일까지 2주간의 시간이 남았는데 내겐 너무나도 짧은 시간들이었고 가족들을 모두 한국에 두고 혼자 가자니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아내에게는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하겠지만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캐나다 영주권을 취득하여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가겠다고 말했고 조금만 참아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없으면 세 아들들을 케어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을 나는 알고 있었지만 잠시간의 떨어짐이 나중의 행복을 위한 고통이라고 생각하고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큰 아들은 중 3이지만 나름 철이 들었고, 사춘기도 지났기에 따로 불러 얘기를 했다.


"이제는 네가 가장이니 어머니와 동생들 잘 보살피고 도와드려라~" 라고 말이다. 큰 아들은 "예" 라고 대답은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아직 10대 중반인 아들이 어려보이기만 했다. 캐나다행 비행기 발권을 했는데 밴쿠버로 입국하기 보다는 캘거리 공항으로 입국하는게 좋다는 이주공사의 추천에 따라 일본항공(JAL)을 이용한 루트를 선택했다. 부산->도쿄(나리타, NRT)->미국(LA, LAX)->캐나다(캘거리 공항, YYC) 순으로 가는 비행기였다. LA에서 5시간을 체류해야 하는 게 제일 힘들 것 같았다. 인천을 통해서 가려고 하니까 도착 도시와 일정도 쉽지 않고 서울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야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대한민국은 지방에서 해외로 여행하거나 출장을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좀더 지방 공항과 연계편이 많아야 할 것 같은데 아마 국가의 공항 정책상, 인천 허브 공항 집중, 각 지자체 이권 등이 얽혀 설켜 쉽지 않은가 보다. 캐나다 행 왕복 티켓(?)을 끊었고, 돌아오는 날짜는 6월 14일로 정하고 발권을 마쳤다. 왜 2주 뒤에 돌아오냐고? (그건 나중에 설명하겠다)


6월 5일 나는 드디어 몸을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실었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며칠 전에 오른쪽 무릎 통증 때문에 치료용으로 맞은 부위가 약간 쑤시고 아프나 무릎 내 염증을 일으켜 관절을 튼튼하게 한다는 시술이라고 의사는 말하였으나 솔직히 효과는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나 이번에 가면 캐나다에서는 이러한 시술조차 어려울 거라 생각했기에 일정이 모자람에도 주사를 맞았었다.


비행 2시간 쯤 후에 비행기는 도쿄 나리타 공항에 내렸고,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부산에서 이미 출국을 했음에도 일본에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바꿔 타려고 하니 공항보안검색을 또 하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귀찮은 보안검색을 마치고 2시간 후 미국 LA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평일 인데도 꽤 많은 승객들이 탑승했고 주로 필리핀, 홍콩 등지에서 타고 온 승객들이 많았다. 늘 비행기를 탈 때마다 이 많은 사람들은 목적지가 어디며 어디서 뭘하고 살아가는 걸까? 하는 생각이 참 많았는데 오늘은 저 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거꾸로 생각도 해 보았다.


비행기는 미국쪽으로 부는 편동풍 바람을 타고 10시간 가까이 비행하여 LA 공항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 나는 캐나다로 향하는 비행기로 TRANSFER 해야 하는데 희한하게 LAX는 미국 내 도시로 이동을 하든 캐나다 또는 멕시코로 가든 무조건 미국 입국 절차를 거쳐얀 한단다. 덕택에 ESTA라는 미국 무비자를 미리 등록하여 입국 절차를 마쳤다. 심사관이 뭐하러 가냐고 묻길래, 캐나다로 여행한다고 하였더니 별로 묻지도 않고 입국 도장을 찍어 주었다. CUSTOM을 거쳐 짐까지 찾아 나갔더니 LAX 공항이다. 내가 캐나다 비행기로 다시 옮겨 타지 않는다면 나는 LA 시내로 가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에 입국했기 때문.... ㅋ

5시간을 공항에서 대기하자니 막막했다. 공항은 쉴만한 의자도 만만치 않았으나 어쩌겠나? 쪽잠을 자고 지친 몸을 이끌고 캐나다 캘거리로 향하는 캐나다 국적기 WEST JET사 비행 탑승구 쪽으로 가야하는데, 젠장 또 보안 검색이다. 부산에서 한번, 도쿄에서 한번, LA에서 또 한번 세 번째 보안검색을 하고 나니 다음부터는 절대 이렇게 오면 안되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 여정인 캘거리행 비행기에 다시 지친 몸을 싣고 LA를 출발했다. 다행히 LA로 가는 비행기는 승객이 그리 많지 않아 옆 자리도 공석이라 좀 편하게 갈 수 있었다.


4시간 정도 걸려 캘거리 공항에 안착하였고, 나의 캐나다 첫 발은 이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입국 심사관에게 여권을 보여주며 방문 목적 및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니 입국 허가를 내 주었다. 캘거리에 도착한 시각이 밤 8시가 넘었고, 호텔 공항셔틀을 타고 근처 모텔로 이동하여 캘거리에서의 첫 날 밤을 보냈다.

이전에도 캐나다 캘거리에 지낸 적이 있었지만 그 때는 출장으로 왔었기에 지금의 나의 목적과는 틀렸기에 기분도 지금은 많이 틀렸다. 시차 때문에 밤이지만 잠도 오지 않았고 앞으로 내가 지낼 시간이 두렵기도 하고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미리 약속한 대로 캘거리 소재 이주공사 직원과 잠시 미팅을 마치고 내가 이제 살 곳인 캔모어(Canmore)로 향하는 그레이 하운드 버스 터미널로 이동했다. 버스는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캔모어로 12시 45분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고 최종 목적지는 밴쿠버 였다. 편도로 캐나다 달러 $25를 미리 발권하였었는데 현장에서 직접 구매할 경우 $41 이었다. 16불을 아꼈네...


캔모어로 가는 길은 하이웨이 1번으로 이 고속도로는 유명 관광지 Banff를 지나 밴쿠버까지 뻗어 있단다. 밴쿠버까지 걸리는 시간은 22시간인데 꽤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 값보다 저렴하므로 이 버스편을 이용해 이동한단다. 캔모어는 인구가 14,000명 정도되는 작은 도시이다.

주위는 록키산으로 둘러 싸여 있고 캐나다에서는 은퇴 후 가장 살고 싶은 도시 1위에 뽑힌 타운이란다.

앞으로 시간을 내어 캔모어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다. 버스에서 내리니 식당 사장님께서 정류장에 마중 나와 계셨고 사장님 차를 타고 Tim Horton 커피점으로 향했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사주시면서 앞으로 기거할 숙소와 일할 직분과 업무 등에 대해 친절히 설명을 해 주셨다. 한 시간 가까이 설명을 듣고 숙소로 향하여 짐을 풀고 나는 바로 침대에 쓰려졌고 캔모어에서의 첫날 밤을 지내게 되었다.


캐나다는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하여 LMIA(Labour Market Impact Assessment) 라는 고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일자리 등록을 하게 되었고 워크비자를 발급 받을 수가 있었다. LMIA 제도는 고용주에게는 인력 공급 수단이 되고, 피고용주에게는 일할 수 있는 직장과 추후 영주권 신청을 위한 점수 확보하는데 귀중한 기회가 제공된다. 캐나다는 외국으로부터 이민을 계속 받아 들이고 있었고 향후 몇 년간 수십만명을 이주시키기 위해 정부에서도 공표를 하고 목표치를 채우기 위해 이민자들을 받아 들이고 있다.

이는 선진국들의 고민 거리인 자녀 출생율 감소로 인한 인구 감소가 나중에 자국의 존폐와 직결되므로 부족한 인구를 해외로부터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마 세계에서도 가장 많은 이민자들을 받아주는 나라가 아닐까 생각한다. 더군다나 자녀가 18세가 되기 전까지 매달 꼬박꼬박 몇 백불의 보조금을 영주권자와 시민권자 부모에게 지급한다. 이것도 잘사는 나라에서 받는 혜택이 아닌가?

나 같은 경우 아이들만 셋이라 보조금이 한달에 천불이 넘게 지불될 것이다. 물론 영주권을 받았을 때의 얘기일 것이다만....


캐나다의 또다른 장점 중에 하나는 의료보험이 모두 공짜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매달 의료보험비를 꼬박꼬박 납부를 하였었고 병원을 가도 급여, 비급여로 나뉘어 급여 부분은 내가 지불하고 나머지는 의료보험공단에서 매워주는 식으로 운영되었으나 여기 캐나다는 모든게 공짜다. 암이 걸려 입원을 해도 공짜로 수술도 해주는 나라다. 단 약값은 본인이 부담한다고 한다.


나는 아직도 캐나다 영주권자가 되면 어떤 혜택을 더 받을 수 있을지 잘 모른다. 하나씩 알아 갈 때마다 여기에 기고를 하도록 하겠다. 아무튼 캐나다에서의 삶은 이렇게 시작이 되었고 캔모어 에서의 첫날 밤을 그렇게 지새게 되었다.




본인의 스토리는 현재 진행 중이며,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읽으시는 독자들에게 용기를 드리고 싶고 개인적으로 질문이 있으신 분은 카카오톡 ID: jaehan16으로 연락 주시면 시간이 나는데로 답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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