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 때문에 회사에 가려 했던 것일까
나도 모르게 '요즘 저 쉬고 있어요'라는 말을 내뱉는다. 진짜 웃긴다. 누가 나보고 '요즘 놀아?'라고 물어보면 혼자 열폭해서 부들부들거릴게 뻔하면서 말이다. 이런 거 보면 (나 포함) 사람이란 존재는 참 이중적이고 간사하다.
5년을 양양에서 치열하게 살다가 갑자기 마주한 도시생활은 편하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 친구들에게 여러 번 말했지만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그냥 나도 원래대로 회사에 가고 싶었던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네임드면서 복지도 좋고, 연봉도 많이 주고, 내가 하는 일도 명확할 그런 회사 말이다.
서류와 면접, 전부 다 탈탈 털리고 나서야 내 현실을 직시했다. 5년 전의 나는 한창 일할 나이의 데려다 갖다 쓰고 싶은 몸값 높은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애매한 경력에 나이는 많고 애까지 딸려, 대충 일하거나 또 다른 일 하겠다고 그만둘 것 같은 모든 게 불확실한 사람이 되었다는 걸.
그렇게 나는 이제 진짜 경력단절녀가 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What should I do?
나는 왜 회사에 다시 가고 싶었던 걸까.
꿈이었을까? 돈이었을까? 아님 몰입할 무언가가 필요했을까?
그마저도 아니라면 그냥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이었을까?
답은 그냥 관성의 법칙 같은 거였다.
앞에서 썼듯이 도시로 다시 돌아왔으니 원래대로 하던 거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던 것 같다. 아이는 내 주변 맞벌이 친구들이 하듯 등하원 도우미 선생님을 구하고, 유치원 끝나고 돌릴 학원을 알아보면 된다 생각했다. 우리도 이런 도시 맞벌이 근로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든 싫든 말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막상 다 돼서 골라갈 줄 알았던 회사들에 줄줄이 떨어지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만 했다. 나는 뭘 하면서 120세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그래서 갭이어가 떠올랐다.
그래. 지금 나는 갭이어를 보내고 있는 중인 거야.
태생이 계속 무언가를 계획하거나 실행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인 탓에 지금까지는 빠르게 생각하고 넘겼다면, 이제야 비로소 나에게 시간이 생겼다. 나에 대해 들여다보고 앞으로의 커리어를 어떻게 가져갈지 결정할 시간 말이다. 음악을 그만둔다 선언했을 때도 나에게 갭이어는 없었다. 빠른 결정과 실행만 있었을 뿐.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한다 했을 때도 마찬가지. 그냥 바로 넘어가서 일하기 바빴었다.
나부터 경력단절녀가 아닌 갭이어 중인 사람으로 시선을 돌리기로 했다. 그랬더니 무거운 마음은 가벼워졌고, 앞으로의 내 시간과 인생이 또 기대되면서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또 느낀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아진다는 걸.
이제는 내가 왜 떨어졌을까의 생각은 안 한다. 떨어질만하니까 떨어졌겠지. 지난 5년의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긴 했나 보다. 회복탄력성은 더 좋아진 것을 느낀다. 정말 다행이다.
이 모든 과정을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옆에 없다면 난 분명 무너졌을 거다. 자신감이 바닥을 친 나라는 존재를 나보다도 사랑해 주고 기대해 주는 사람들 덕분에라도 이 갭이어를 알차게 보내봐야겠다.
나 뭐 하면서 살까? 그리고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의 즐거운 고민이 또 시작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