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핫했던 둔촌주공 아파트의 재건축 전의 기록
영화는 별다른 인트로 없이 아파트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이들의 목소리로 시작합니다.
생활감이 묻어나는 아파트 내부 공간이 화면에 가득 들어오고,
외부에서 들리는 아이들 소리, 차 소리, 바람 소리가 배경음처럼 잔잔히 깔려 있어 현장감을 더합니다.
둔촌주공 아파트는 1979년에 준공하여 1980년 3월부터 입주를 시작했습니다.
이곳의 재건축 이야기는 꽤 오래 전인 1990년대부터 나왔지만,
2017년에 재건축이 결정되었고, 2018년 5월 철거를 위한 이주가 완료되었습니다.
입주 초기부터 거의 40년 가까이 살았던 거주자들에게
이곳은 단순한 아파트가 아니라 태어나고 자라서 성인이 되고
다시 본인들의 자녀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동네이고 마을이었습니다.
영화는 둔촌주공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살았던 이들의 목소리가 주인공입니다.
터줏대감부터 중간에 이사 온 사람들, 중간에 이사 간 사람들까지
이들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한 대답으로 이루어져 있답니다.
같은 규격에 같은 실 구성으로 이루어진 아파트이지만
그 내부는 사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공간이 됩니다.
재건축에 대한 우려, 아쉬움, 기대 등 반응도 다양하지만,
이들의 목소리에서
둔촌주공 아파트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오래된 건물, 특히나 집처럼 많은 기능을 담아야 하는 건축물은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면서 보존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실제로 사람이 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일부분을 남기고 바꾸는 것보다는 모두 철거하고 새로이 짓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쌓아온 추억과 시간들이 함께 없어지는 것 같아
아쉬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영상으로 남을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내가 살았던 곳, 현재 사는 곳, 앞으로 살고 싶은 곳에 대한 생각이 많아질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떠오르는 집이 있었습니다.
5층짜리 작은 아파트
저는 그곳에서 유치원과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당시는 집집마다 차가 있는 경우가 드물어서 아스팔트가 깔린 주차장은 아이들 놀이터의 연장일 뿐이었죠.
모래가 있는 놀이터와 바닥이 단단한 놀이터
앞집, 옆집, 아랫집에는 모두 또래 아이들이 있었기에 엄마들도 아이들도 모두 친구였습니다.
아랫집에서 카스텔라를 만들면, 옆집에서도 만들고, 우리 집도 만들고,
그렇게 몇 날을 지겹게 카스텔라를 먹었던 기억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연탄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었던 기억
겨울에는 아파트 뒤편에 꽝꽝 언 논에서 썰매를 탔던 기억
동생이 집을 잃어버리지 않게 엄마가 동, 호수를 넣어 만들어준 노래
유치원에 입학하고 졸업하고 국민학교를 입학하고,
피아노를 배우고, 보조바퀴를 떼고 자전거를 탔던
인생에서 처음 하는 경험들을 가장 많이 했던 곳
그곳에서 산 시간은 5년 남짓이지만 가끔 그곳을 떠올리곤 합니다.
몇 년 전 우연히 그곳을 방문했는데 거의 그대로인 모습에
기분이 이상해졌습니다.
제가 그곳을 떠올릴 때는 따뜻한 빛으로 늘 필터 처리가 되어 있었는데
필터를 없앤 맨 모습을 본 느낌이랄까요?
그냥 추억으로만 떠올릴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답니다. 하핫;;
하지만 여전히
'집'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집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집이 있겠죠?
*<집의 시간들>은 현재 네이버 시리즈에서 볼 수 있어요.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