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이렇지 않나요?
미니멀라이프 영상들을 추천해 주는 대로 보며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하면서
내 주변을 한번 둘러봅니다.
책과 레고 그리고 기타 등등으로 채워진 책장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레고는 건들 수 없습니다. 보면 기분이 좋거든요.
책은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이 반이고,
혹시 몰라 수업용으로 남기고 있는 책이 반입니다.
주방 수납장을 한번 열어봅니다.
1인 가구이니 밥공기 하나, 국그릇 하나, 반찬 그릇 하나 이렇게만 있으면 될까요?
수저도 한벌씩만, 텀블러도 한 개만 남기고 모두 비우면
과연 행복할까요?
1인 가구라도 오늘은 이 그릇에 내일은 저 그릇에 먹고 싶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식기류에 크게 욕심이 없다는 것(정말입니다!).
쓰지 않는 식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매일은 아니라더라도 한 달에 한두 번씩 쓰게 되는
야채 탈수기, 그릭요구르트 제조기, 달걀찜기, 믹서기, 원두 그라인더도 모두 필요한 것들입니다.
이제, 신발장과 옷장도 열어젖힙니다.
사실 이곳은 코로나 시기에 한번 모두 꺼내어 정리한 적이 있어 자신 있었습니다.
기본템이라던가 필수템이라던가도 정하고
하나를 들이면 하나를 버린다는 원칙을 어느 정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끔씩 피할 수 없는 반항의 시기가 불쑥불쑥 들이닥칩니다.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해?'
'프로젝트를 끝냈으니 이 예쁜 것 하나는 들여도 되잖아?'
'내가 이깟 여름 샌들 하나도 못 사?'
억지로 참았던 욕구가 봇물 터지는 그 시기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창 바빴던 일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니 집 안을 둘러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야금야금 늘어간 신발과 가방은 어느새 각각의 장 밖으로 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분명 새로 들인 만큼 사용하지 않는 것들도 있을 텐데요. 어디 있죠?
분명 한두 개의 여유가 있었던 옷걸이도 모자라기 시작합니다.
허리가 아플 때 눕기 딱 좋은 요가매트는 색상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욕실 선반이며, 부엌 작업대 또한 어느새 소소한 물건들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작은 공간의 인테리어를 더욱 망치고 있습니다.
눈에 몹시 거슬리는군요.
2년 전 이사 때 꽤 많은 물건들을 정리했는데 또 나올 게 있을까요?
네, 있더라고요.
멀쩡하지만 저에게 어울리지 않아 손이 잘 안 가던 패턴이 예쁜 셔츠도
옷 입는 취향이 변해서 앞으로 입을 일이 없을 그러나 꽤 값이 나갔던 원피스와 티셔츠도
몇 번 안 신었지만 내 발이 잘 찾지 않는 신발들도
이제는 미련 없이 기부상자에 담을 수 있습니다.
분명 2년 전에도 쓰지 않았던 것들이지만 아깝다는 마음에 붙잡고 있었던 것들이었네요.
마음을 어지럽히던 선반 위의 물건들을 잘 정리하기 위한 수납함을 고르다가
잠시 멈추고 쓰임이 비슷한 것들끼리 모아봅니다.
중복되는 것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다 쓰고 나면 버릴 것들도 자리를 찾아줍니다.
굳이 꺼내놓지 않아도 될 것들은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놓아줍니다.
커피머신 옆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2단 수납함을 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며칠이 지났지만 전혀 불편함이 없습니다.
비워진 공간을 보니 기분이 좋습니다.
아마도 수납함이 그 자리에 있으니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되었던 것들을 꺼내 수납함을 채우고 있었나 봅니다.
손이 잘 가지 않는 책들, 이제는 필요하지 않은 책들을 골라냅니다.
그때는 분명 좋았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중고서점에 팔 수 있는 책과 버릴 책들은 보내고, 혹시 모를 책들은 구석진 자리 한편을 줍니다.
한 일 년 동안 다시 찾는 일이 없다면 비워질 곳입니다.
책장을 비워도 될 만큼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지만
헐렁헐렁한 공간이 생겼습니다.
저는 딱 이 정도가 좋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도, 빈틈없이 촘촘히 채워진 공간도 싫거든요.
중간중간 비어있는 채워진 공간과 여백의 공간이 함께 있는
그 정도가 좋습니다.
비우는 것 자체가 미니멀라이프는 아닐 겁니다.
비우는 것은 단지 미니멀라이프의 시작이겠죠.
각자의 미니멀의 기준은 모두 다를 테니까요.
나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경험치를 쌓은 그다음은,
내가 남긴 것들을 잘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버리지도 사용하지도 못하는 에코백은
두꺼운 종이박스나 구부릴 수 있는 와이어 판을 안에 넣어서 감성 뿜뿜한 수납함으로
버리기도 나눔 하기도 아까운 패딩점퍼는 퐁신한 방석으로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것들은 버리지도, 새로운 것들을 사지 않아도 되도록
원래의 용도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쓰임을 만들어주고 열심히 쓰는 것 또한 미니멀라이프라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을 만드는 것이 미니멀라이프라면 하고 싶지 않습니다.
너는 충분히 많은 것을 갖고 있으니 더 이상 아무것도 사면 안된다고 하면 저는 미니멀라이프를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내 눈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물건이 채워져 있고, 지금 있는 것들을 닿고 닿을 때까지 충분히 써주는 것
그러다 또 오랫동안 쓸 수 있을 것 같은 것을 만나게 되면 귀하게 데려와야죠.
그렇게 나만의 미니멀라이프를 하고 싶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아낌없이 잘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