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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여행자 Nov 11. 2024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 뮤지엄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는 어디일까요?

네 맞아요. 바티칸입니다.


이탈리아 로마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국가이기에 바티칸 시국(Vatican City State)이라 불리죠.

1929년 교황 비오 11세가 무솔리니와 체결한 라테라노 조약을 통해 탄생하였습니다.

국가원수는 교황인 가톨릭 교황국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다니, 면적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면적은 49ha(헥타르)로 여의도 면적의 약 9분의 1정도입니다.


바티칸 시국의 대부분은 바티칸 박물관과 성베드로 대성당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투어의 시작은 바티칸 박물관입니다.

이곳은 개인적으로 방문하기가 꽤 까다롭습니다. 가능한 그룹투어를 통해서 관람하기를 추천드립니다.


바티칸 박물관(Vatican Museums)의 시작은 고대 그리스 조각상인 <라오콘 군상>이 발견된 순간부터 였습니다.  라오콘* 군상은 1506년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근처 포도밭에서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는데요. 그는 이 조각은 매우 특별하다고 여겼고, 이는 당시 교황 율리오 2세(Julius II)의 귀에도 들어가게 됩니다. 이에 교황청 소속 건축가인 줄리아노 다 상갈로와 교황청 소속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는 이를 감정하기 위해 파견됩니다. 미켈란젤로는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조각품이라고 극찬을 하였고, 교황 율리오 2세는 즉시 이 조각을 농부로부터 구입하여 소장하기로 합니다. 그 후로 교황청은 예술품과 고대 유물들을 지속적으로 수집하며 박물관의 토대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라오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트로이 전쟁의 등장인물, 라오콘 군상은 고대 그리스 헬레니즘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기원전 160년에서 2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


현재 바티칸 박물관은 엄청난 양의 예술 작품과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데요. 여러 갤러리와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전시관 3곳을 살펴볼까요?


피오 클레멘티노 미술관(Museo Pio-Clementino): 고대 그리스와 로마 조각품을 소장,  ‘라오콘 군상’과 '아폴로 벨베데레' 등

라파엘로 방(Stanze di Raffaello): 율리오 2세의 집무실이었던 곳,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등

시스티나 성당(Cappella Sistina):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열리는 장소,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1. 피오 클레멘티노 미술관

이 작품은 트로이 전쟁의 일화 중 하나인,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이 바다뱀에게 공격당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으로, 생동감 넘치는 표현과 강렬한 감정이 특징입니다.

고통스러움에 엄지발가락을 웅크린 디테일까지 너무도 사실적입니다.


2. 라파엘로 방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는 37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지만, 많은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뛰어난 실력과 함께 사회생활도 잘 해서 어른들이 좋아할 스타일이었다고 합니다.

브라만테는 고향 후배인 라파엘로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후원했습니다. 라파엘로가 피렌체와 로마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즈음, 브라만테는 이미 로마에서 명망 높은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었는데요. 특히 그는 당시 교황 율리오 2세의 후원을 받으며 성 베드로 대성당의 재건을 맡고 있었고, 이를 계기로 라파엘로를 로마로 초청하여 바티칸의 예술 작업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작업이 율리오 2세의 초상화와 그의 집무실의 벽화인 아테네 학당입니다.

특히나 <아테나학당, 1510 ~1512>은 작품 안의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실제로 한 곳에 모일 수 없는 고대 그리스의 다양한 학자들을 한곳에 불려들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직접 본 것은 아니기에 곳곳에 당시의 인물들의 얼굴을 그려넣었는데요. 이를 찾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① 가장 가운데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습니다. 플라톤은 이데아론을 주장하며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좀더 경험적이고 현실적인 철학을 강조하며 땅을 향해 손을 내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플라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얼굴로 묘사하였습니다.

② 철학자 헤라클리토스는 미켈란젤로를 모델로 삼았습니다. 유일하게 그림 속 인물중에 신발을 신고 있는데요. 가죽장화를 보자마자 사람들이 '미켈란젤로다' 라며 알아봤다고 합니다.

③ 수학자 유클리드는 브라만테로 묘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④ 검정 모자를 쓰고 정면을 보고 있는 인물이 있는데요. 고대 그리스의 화가 아펠레스입니다. 이는 라파엘로 본인의 얼굴로 그렸네요.

⑤ 왼쪽 아래에 커다란 책에 몰두하고 있는 이는 우리 모두가 아는 수학자 피타고라스입니다.

⑥ 카키색 옷을 두르고 사람들과 토론을 하고 있는 인물은 철학자 소크라테스입니다.

⑦ 계단에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기대어 있는 이는 철학자 디오게네스입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찾아와 필요한 것을 말해보라고 하자, "내 햇빛을 가리고 있으니 조금만 비켜주시겠소."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죠.


3. 시스티나 성당

이곳은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또한 정체되지 않도록 계속 이동하라고 안내하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황홀한 곳입니다.

아마도 이렇게 제한하지 않으면 아무도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이 엄청난 천장화와 벽화는 모두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의 작품입니다.

교황 율리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자신의 묘를 장식할 조각상을 의뢰합니다. 천상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는 흔쾌히 수락합니다. 그러나 브라만테는 영묘 작업을 미켈란젤로가 맡았다는 소식을 듣자 분개했고, 교황을 설득해서 그를 골탕먹일 요량으로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맡깁니다.

회화에는 별 관심없었던 미켈란젤로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교황 율리오 2세는 그리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는 이 작업도 수락하게 됩니다. 아마도 브란만테는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회화보다 조각을 더 좋아했을 뿐이지 못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요.

미켈란젤로는 천장화를 그리기 위해 매일 공사장에서 쓰는 작업대 같은 곳에 올라가 허리와 고개를 젖히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프레스코화는 벽면에 직접 그려야 하기 때문에 그릴 공간에 몸을 맞춰야만 합니다. 또한 물이 마르기 전에 채색해야 하므로 편안히 쉴 수도 없습니다.

그는 실제로 천장화 작업이 고통스러웠다고 이야기합니다. 목과 척추는 틀어지고 눈과 입에 물감이 계속 들어가 관절염과 근육 경련 그리고 눈병도 생겼으니까요. 마침내 1512년, 작품을 완성하여 작업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작업을 시작한지 4년만에 완성한 천장화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습니다.

최후의 심판

천장화를 완성한 이후 미켈란젤로는 다시는 붓을 잡을 것 같지 않았지만, 1534년 제단 뒤를 장식할 벽화를 위해 다시 한번 미켈란젤로를 설득합니다. 당시 교황은 바오로 3세였는데요. 설득에는 전임자인 교황 클레멘스 7세의 역할이 컸을 것입니다. 그는 메디치가의 사람으로 어린시절 미켈란젤로와 함께 생활했던 사이이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6년에 걸쳐 <최후의 심판>을 완성했습니다.

그렇게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와 벽화가 그의 손에서 탄생하였습니다.


천장화는 ‘천지창조’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일본 방송사에서 ‘천지창조’라는 제목의 다큐를 제작하면서 마치 그림의 제목처럼 알려지게 된 것으로 천장화에는 특별한 제목이 없습니다.


*참고할만한 추천자료*

영화 <미켈란젤로, 2021>

시스티나 성당 영상 https://youtu.be/E75woOZ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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