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석사 무량수전 vs 파르테논 신전

by 공간여행자

한국의 부석사 무량수전, 그리스의 파르테논신전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그런데 이 두 건축물 서로 다르지만 또 많이 닮았다는 사실 아시나요?


경북 영주의 소백산 기슭에 자리한 무량수전은 고려 시대(1376년)에 중창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는, 한국에서 오래된 목조건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중해 햇살 아래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우뚝 선 파르테논 신전은 기원전 5세기, 약 2,500년 전 페리클레스 시대에 지어진 대표적인 고대 그리스 신전이죠.

시대와 대륙은 달라도, 두 건축물 모두 긴 세월을 견디며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 첫인상부터 다른 두 건축물

부석사 무량수전: "자연 속에 숨은 보물"

영주에서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 안양루의 계단을 오르면, 단아한 자태의 무량수전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듯 나타납니다.

지붕 처마선은 부드럽게 들려 있고, 주변 산세와 어우러져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자연스럽습니다.

파르테논 신전: "도시 위의 왕"

반면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 시내 어디서나 보이는 언덕 위에 우뚝 서 있습니다.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거대한 신전은 고대 그리스의 위엄과 자신감을 그대로 드러내며, 정면과 측면의 기둥 배열이 완벽한 비례를 이루고 있습니다. 멀리서 봐도 대칭미가 돋보이죠.

| 건축 방식도 정반대

무량수전: "못 없이 짜 맞춘 나무 건축"

무량수전은 전통 목조건축 기법으로, 나무 부재를 정교하게 가공해 서로 끼워 맞추는 결구 방식을 사용합니다. 못이나 금속 부품 없이도 구조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죠.

이러한 구조는 지진이나 강풍 시 건물이 약간 흔들리며 충격을 흡수해, 오히려 오래 보존되도록 합니다.

파르테논 신전: "돌이 만든 완벽한 비례"

파르테논은 잘 다듬은 대리석 기둥과 보를 정밀하게 쌓아 올린 건물입니다.

단순히 직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둥의 중앙을 약간 볼록하게 만들고(엔타시스, Entasis), 바닥과 지붕선에도 가운데 부분이 봉긋하도록 미세한 곡선을 주어 시각적 안정감을 높였습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 장인들의 과학적 계산과 미학이 결합된 결과입니다.

|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의 차이

무량수전: "자연과 하나 되는 미학"

한국 전통 건축은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중시합니다. 무량수전의 처마선은 멀리 보이는 산 능선과 이어지고, 계절에 따라 건물의 인상이 달라집니다.

대칭보다는 약간의 비대칭과 변화를 통해 ‘자연스러운 균형’을 추구합니다.


파르테논: "수학이 만든 완벽한 질서"

그리스 건축은 황금비와 기하학적 비례를 적용해 보는 사람 모두가 안정적으로 느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정확한 비례와 균형, 질서가 곧 아름다움이라는 믿음이 건물 전체에 담겨 있습니다.


| 종교적 의미

무량수전: "극락정토로 향하는 공간"

무량수전은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입니다. ‘무량수’는 ‘끝없는 생명’을 뜻하며, 극락정토의 평화를 상징하죠.

참배객은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며 마음을 가다듬고, 마지막에 무량수전에 이르러 평온함을 느끼게 됩니다.


파르테논 신전: "아테나 여신을 위한 성전"

파르테논은 도시 수호신 아테나에게 바쳐진 신전입니다. 내부에는 한때 황금과 상아로 만든 거대한 아테나상이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 신전은 단순한 예배 공간을 넘어, 고대 아테네의 부와 권력,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했습니다.


| 기둥에 숨겨진 비밀

그런데 여기서 정말 흥미로운 사실 하나!

서로 다른 시대, 다른 문화권에서 태어난 두 건축물이지만, 놀랍게도 같은 비밀을 품고 있습니다.

무량수전의 기둥을 자세히 보면 완전히 곧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가운데가 살짝 불룩한 배흘림기둥입니다. 마치 사람이 배를 살짝 내민 모습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죠.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그리스어로 엔타시스(Entasis)라고 부르는 기법인데, 기둥 중앙을 아주 미세하게 부풀려서 멀리서 봤을 때 곧고 당당하게 보이게 하는 시각 보정 장치입니다.

이 두 기법은 모두 인간의 눈에 생기는 착시를 보완하기 위한 것입니다. 높은 위치에 있는 건물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직선의 기둥이 오히려 가운데가 들어가 보이면서 약해 보일 수 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기둥을 미묘하게 볼록하게 만든 것이죠.

한국과 그리스, 1,000년 이상 떨어진 시대와 서로 다른 대륙의 건축가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해답을 찾았다는 사실이 참 흥미롭습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자연 속에서 고요하게 스며드는 아름다움을, 파르테논 신전은 수학적 질서와 비례로 장엄한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재료도, 종교도, 시대도 달랐지만, 두 건물 모두 ‘사람이 보기에 가장 아름다운 비례’를 찾아내려는 노력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향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건축이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우리를 연결하는 힘이 아닐까요?


keyword
이전 08화사찰 vs 성당, 뭐가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