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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종묘사직을 보존하시옵소서 1

종묘

by 공간여행자

여러분은 경복궁 앞에 서 있습니다. 세종대로를 바라보면서 말이죠. 그 상태에서 양팔을 들어보세요.

여러분의 왼팔 즉, 경복궁의 왼편에는 종묘가 오른편에는 사직단이 있습니다. 이를 좌묘우사라고 해요.

네 맞아요.

사극에서 많이 듣던 그 대사

“전하, 종묘사직을 보존하시옵소서.”

바로 그 종묘와 사직입니다. 그럼 이곳은 어떤 공간이기에 전하에게 이토록 외치는 걸까요?


종묘는 한마디로 조선 왕실의 '조상님을 위한 집'입니다. 조선시대 역대 임금과 왕비들의 신위를 모시는 유교식 사당이죠. 유교를 국교로 했던 조선에서는 조상님을 모시는 일이 얼마나 중요했을까요? 정말 최고의 정성을 다했답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1394년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자마자 바로 왕실 제사를 위한 공간을 마련했어요. 그리고 1395년 9월, 목조·익조·도조·환조 네 분 조상의 위패를 개성에서 옮겨와 안치하면서 종묘 정전이 완성됐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종묘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린 후 광해군 1년(1608)에 다시 지은 것으로, 이후 영조와 헌종 때까지 계속 늘려서 처음 7칸이었던 건물이 지금의 19칸까지 커졌답니다.

이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종묘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고,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도 각각 국가무형문화재(1975년)로 지정되었으며, 2001년 5월 18일에는 '종묘 제례 및 종묘 제례악'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 걸작'에 선정,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정전, 이 웅장한 건물의 매력

종묘에 들어서면 길게 내려앉은 듯한 건물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정전이에요.

한눈에 다 담기 어려운 양옆으로 긴 형태의 건물인 탓에 시선은 아래위가 아닌, 옆으로 길게 움직이게 됩니다.

낮은 단층 건물에 무겁게 내려온 지붕, 그리고 나와 건물 사이에 놓인 넓은 월대.

저도 모르게 옷매무새와 마음을 다듬게 됩니다.

공간이 뿜어내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저절로 엄숙해질 수 있다니.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인 정전의 특징은 단순함에서 나오는 장엄함입니다.

화려한 장식 하나 없이 담백하기 그지없는 모습인데, 이는 유교에서 강조하는 '검소함'의 미학을 반영하고 있답니다.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신실(神室)이라 부르는 1칸짜리 방을 옆으로 나란히 이어져 형성되는 규모는 압도적인 장엄함을 자랑합니다.

지붕의 길이만 100미터가 넘는 종묘 정전은 동시대의 단일 목조건축물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전 앞에 펼쳐진 월대도 정말 장관이죠. 동서 109m, 남북 69m나 되는 이 거대한 빈 공간이 주는 압도감이란... 정전을 향한 한 걸음 한 걸음에 엄숙한 여운을 남깁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건물, 규모는 작지만 정전과 닮은 꼴 건물이 있는데요.

바로 영녕전입니다. 조선의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실 공간이 부족하여 세종 때 만들어진 별묘입니다.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

종묘에는 정전 말고도 제사를 위한 여러 건물들이 있어요.

망묘루는 종묘를 관리하는 관원들이 업무를 보던 곳으로, 임금이 제례에 참석했을 때 이곳에서 머물며 선대 왕을 회상했다고 해요. 망묘루의 누각 앞에는 연못이 있답니다.

향대청은 제례에 쓰이는 향이나 축문, 폐백 같은 것들을 보관하고 제관들이 대기하는 곳이에요.

재궁은 왕과 세자가 목욕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 뒤 제사 준비를 하던 일종의 '숙소 겸 준비실'이랍니다. 북쪽은 왕의 방, 동쪽은 세자 방, 서쪽은 목욕탕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전사청은 '신의 부엌'이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제사용 음식을 만들던 곳이에요. ㅁ자 형태로 지어져 있고, 뒤쪽에는 제사용 물을 길었던 우물(제정)도 있어요. 앞쪽에는 제물을 검사하던 찬막단과 제사에 바칠 동물을 검수하던 성생위도 있답니다.

이렇게 각각의 공간이 모두 제례를 위한 역할을 분담하고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정전의 엄숙하고 단아한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집니다.

망묘루 (출처: 궁능유적본부)
전사청과 우물(출처: 궁능유적본부)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전통

종묘의 가장 놀라운 점은 지금도 왕가의 제향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죠.

현재 종묘대제는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과 11월 첫째 주 토요일, 1년에 2번 봉행하고 있습니다.

종묘를 찾는 방문객들은 붉은 기둥과 검은 기와, 넓은 돌마당이 어우러진 이 공간에서 조선시대 국가 제례의 위엄을 직접 느낄 수 있어요.

종묘는 단순히 옛 건물이 아니라, 조선 왕조 500년의 정신과 유교 문화의 정수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곳이랍니다. 종묘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분위기를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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