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선의 궁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조선의 궁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으로 총 5개가 있습니다.
각 궁궐마다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알아볼까요?
1395년 : 태조 4년, 조선의 법궁(정궁)으로 창건
1592년: 임진왜란 때 전소
1865년~1868년: 고종 때 중건, '경복궁 영건일기' 기록
일제강점기: 대부분의 전각 훼손
1990년대 이후 복원 사업: 1990~2010년 경복궁 1차 복원사업, 2011~2045년 경복궁 2차 복원사업
경복궁은 조선의 법궁(정궁)으로 조선 왕조의 정치·문화적 중심이었습니다.
법궁이기에 <주례>고공기에 의해 궁궐 배치가 이루어졌는데요.
좌묘우사, 전조후시, 삼문삼조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좌묘우사는 지난번에 설명한 바와 같이 궁궐의 좌측에는 종묘, 우측에는 사직단을 배치하는 것입니다.
전조후시는 궁궐의 앞쪽에는 관청, 뒤쪽에는 시장이 위치하는 것입니다.
삼문삼조는 말 그대로 3개의 문과 3개의 공간을 말합니다.
삼문은 고문, 치문, 노문으로 구성되는데요.
광화문을 지나면 바로 만나게 되는 흥례문(고문), 근정전 앞의 근정문(치문), 그리고 왕실 가족들의 사적 공간으로 들어서는 향오문(노문)이 있습니다.
삼조는 외조, 치조, 연조의 공간으로 나뉘는데요.
외조는 신하들의 공간으로 흥례문에서 근정문까지입니다.
치조는 왕과 신하들이 정사를 돌보는 공간으로 근정문에서 향오문까지입니다. 대표적인 전각으로 근정전과 수정전이 있죠.
연조는 내조라고도 합니다. 왕실 가족들의 생활공간으로 강녕전, 교태전 등이 있습니다.
이처럼 경복궁은 북쪽으로 북악산을 배경으로, 광화문·근정문을 거쳐 근정전·수정전·강녕전·교태전으로 이어지는 중심축을 따라 대칭적 기하학질서에 따라 배치되어 있습니다.
조선의 정궁으로 위엄 있는 자태가 자랑스러운 건축물이지만,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며 많은 고초를 겪기도 했던 경복궁입니다.
현재도 경복궁은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기 위해 공사 중입니다.
1405년: 태종 5년, 경복궁의 이궁으로 창건
1592년: 임진왜란 때 전소
1610년: 광해군 2년, 중건
창덕궁은 이궁으로 경복궁이 궁을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정사를 이어서 할 수 있도록 지어진 궁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가장 먼저 중건된 창덕궁은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창덕궁은 대칭적 구성의 경복궁과 다르게 북한산 자락의 자연 지형을 최대한 살려 배치한 점이 특징입니다.
주요 전각(인정전·선정전·대조전 등)들은 산 허리를 따라 골짜기에 따라 계단식으로 늘어서 있고, 숲과 정원이 궁궐 안팎을 감싸고 있습니다.
특히 대표 건물인 인정전은 전통적 궁궐 정전의 건축구성을 따르되 주변 산세와 조화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창덕궁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후원입니다. 숨겨진 정원인 비원으로 불리는 곳이죠.
부용지와 주합루, 애련지 등 연못과 정자 그리고 수목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공간입니다.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한 조선 후기 궁궐 양식의 대표로 평가받아,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조선의 왕들이 창덕궁을 특별히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법도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아니되옵니다.'가 연신 터져 나오는 경복궁보다 약간의 숨 쉴 틈을 주는 창덕궁이 더 편안하지 않았을까요?
1418년: 세종이 즉위하며 태종을 위해 수강궁 창건
1483년: 성종 14년, 세 명의 대비를 위해 수강궁을 확장하고 창경궁으로 명명
1592년: 임진왜란 때 전소
1616년: 광해군 8년, 재건
1830년: 순조 30년, 대화재로 소실 1834년: 중건
일제강점기: 1907년 동물원과 식물원이 설치, 1911년 창경궁에서 창경원(궁궐의 공원화) 격하
1983년 이후: 창경궁의 이름 회복, 동물원을 철거, 순차적으로 복원 공사
창경궁은 창덕궁과 붙어있어 하나의 동궐 영역으로 사용되었고, 주로 왕실 가족의 생활공간으로 쓰였습니다.
남향 배치가 일반적인 다른 궁궐과 달리 유일하게 정문(홍화문)과 정전(명정전)이 동향으로 배치된 점이 특이합니다.
창경궁의 편전인 '문정전'은 영조의 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합니다.
1617~1623년: 광해군 때, 세조의 다섯째 아들인 원종(인조의 생부)의 집터에 세운 이궁으로 경덕궁이라 명명
1760년: 영조 36년, 원종의 시호(경덕)와 같은 발음이라는 이유로 경희궁으로 개칭
1865년: 대부분의 전각들이 경복궁 복원에 사용
일제강점기: 남은 전각 철거
1987년 이후: 서울시 경희궁 복원사업 진행
흥화문(정문)·숭정전(정전)·자정전(편전)·태령전(영조의 어진 보관) 등 주요 전각을 차례로 복원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전소된 후,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중건하기 전까지는 창덕궁이 법궁이 되었고, 서궐인 경희궁이 이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인조 이후 철종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 임금들이 이곳을 이궁으로 사용했습니다.
한때 약 7만여 평 규모였으나 일제강점기 경복궁 등과 함께 대부분이 훼철되어, 현재는 그 절반 이하로 축소되었습니다.
임진왜란 직후: 선조 26년, 월산대군(성종의 형) 집터를 임시 궁궐로 사용. 정릉동 행궁이라 불림
1611년: 광해군 3년, 경운궁으로 명명
1897년: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황궁으로 사용
1904년: 대화재로 소실
1906년: 주요 전각 복원공사
1907년: 덕수궁으로 개칭
1910년: 석조전 준공
임시 궁으로 시작하여 제국의 황궁으로 사용되었던 덕수궁은 다른 조선의 궁궐과 달리 전통 건축과 서양 건축이 함께 있는 모습이 특징입니다.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지은 돈덕전(1902~1903)은 2층 구조의 붉은 벽돌, 원추형 지붕 등 유럽식 외관이 특징적인 건물로 연회장, 국빈급 외국인의 숙소로 사용하였습니다.
고종이 가베(커피)를 즐겼다는 정관헌(1907)은 전통 팔작지붕에 서양식 기둥을 결합한 건물이죠.
1910년에 건립된 석조전 또한 서양의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인 반면에, 정전인 중화전, 고종의 침전인 함녕전은 전통건축 양식의 전각입니다.
이러한 건축물들이 한 궁궐 안에 있다는 게 정말 특별한데요.
이는 고종의 개화적 성향과 서구 문물 수용의 발자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덕수궁 일대는 정동길의 유서 깊은 근대 건축과 어우러져 독특한 궁궐 경관을 이루고 있죠.
여러분은 조선의 5대 궁궐 중 어느 곳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음,,, 저는 전통과 근대가 함께 하는 덕수궁을 가장 좋아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