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을 둘러본 후, 나타샤는 집안 곳곳에 무엇이 있는지 소개해주었다. 부엌, 리빙룸, 세탁기, 화장실 그리고 3주간 지낼 나의 방. 이미 메일로 방 사진을 보내주어 어떤 모습인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는 것은 또 달랐다.
가을과 어울리는 색을 가진 방 가운데에는 푹신한 침대가 놓여있고, 양쪽에는 조명등과 함께 나타샤가 좋아하는 해바라기 조화와 해바라기 캘린더가 있었다. 문 입구 가까이에는 옷장, 서랍장, 빅토가 만든 책상이 있었다.
빅토가 만든 책상 위 벽에는 나타샤와 빅토의 젊은 시절 모습이 담긴 사진액자가 걸려있었고, 책상 위에는 나를 위한 선물이 두어있었다.
나타샤 교회 친구가 만든 에코백
여행일기를 쓰는 다이어리
다음 여행지를 위해 고를 수 있도록 도서관에서 빌린 론리플래닛 책
나타샤가 뜨개질 실로 만든 행주
빅토가 만든 밀대
캐나다 국기가 그려진 인형과 깃발, 러기지 태그
보틀과 배고플 때 먹을 수 있는 초콜릿
물건들은 '캐나다에 온 것을 환영해'라고 말해주었다.
물건에 대한 나타샤의 설명을 듣고서 나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우는 나를 보고 나타샤는 포옹해주며 먼 길을 와주어 고맙다고 여러 번 말했다. 먼 길. 직항으로 11시간. 경유 한 번과 레이오버를 해서 온 캐나다. 넓고 넓은 태평양을 건너온 캐나다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빅토가 살아있을 때 왔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지만, 더 많은 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잘 왔다고 생각했다.
울음과 포옹이 반복된 시간이 지나가고 나타샤에 대한 고마움이 범벅으로 물들 때 캐리어를 열었다.
반으로 갈라진 캐리어 중 지퍼로 잠긴 부분을 열어
한국 음식을 요리하기 위해 사온 재료(당면, 떡볶이 소스, 김치, 김, 참기름)
후식을 위한 과자와 돼지감자차
세문이 만든 나무 숟가락과 수저집
컵받침과 유기로 만든 디저트 숟가락과 포크
키티버니포니 파우치와 양말을 꺼내어 서랍장 선반 위에 올렸다. 나타샤는 줄줄이 올려놓는 것들을 보면서 '정은 캐리어에 추울 때 입는 옷 대신 먹을 것을 잔뜩 가져왔어'라고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이 말은 나나이모에 사는 이웃들과 스몰 토크할 때면 늘 이야기해서 나는 옆에서 헤헤 웃었다.
나는 정말로 필요한 것은 두고 왔다.
9,10월 캐나다 날씨를 찾을 때 블로거들은 '카디건 같은 겉옷이면 충분해요'라고 말했다. 추위를 잘 타는 나는 혹시 몰라 얇은 티셔츠와 바지와 함께 목티, 바람을 막아주는 겉옷과 패딩, 수면양말을 챙겨 왔다. 캐나다에 도착하자 너무 추워 더 많이 겨울 옷을 챙기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10월 말 11월 초 같은 날씨를 가진 캐나다는 나에게 너무 추웠다. 햇살이 비치는 날에도 바람은 차가웠다. 한국과 다르게 집에는 보일러 시스템이 없었고 바람은 몸 깊이 들어왔다. 나타샤는 낮에 해가 비치면 '인디언 써머'라고 말했지만 내겐 도톰한 겉옷과 내복, 핫팩이 필요했다. 나타샤를 만나서 반가움을 나누고 가장 먼저 한 말은 '생각보다 추워요!'였다. 나타샤는 추위에 오들 거리는 나를 보고 나나이모에 가면 옷을 사러 가자고 말했다.
선물교환식을 마치고 우리는 차를 타고 이동했다. 3주간 실내에서 신을 모카신, 추운 날씨에 입을 옷, 베지테리언인 내가 먹을 것들을 사기 위해서 차를 타고 차례대로 이동했다. 가장 먼저 나타샤가 미리 찾아 둔 등산용품점에 들려 모카신을 골랐다. 나타샤가 골라둔 모카신 중 색깔만 골라야 했던 나는 다른 슬리퍼가 눈에 들어왔지만, (나타샤가 메일에서 모카신을 찾았다며 기뻐했던 것이 떠올랐다!) 검은색 모카신을 집었다. 그리고 옷을 고르는데 자꾸만 나타샤는 여자 옷 코너에서 허리가 잘록 들어간 핑크를 추천했다. 나는 바로 말했다. '노 핑크!'. 나타샤는 모카신을 고를 때와 다르게 단호한 나를 보고 웃었다. 그 이후로 나타샤는 핑크색을 볼 때마다 예쁘지만 정은 노 핑크라고 말하며 지나갔다. 덕분에 옷만큼은 '노 핑크'와 '노 걸스 스타일'을 지나 할인하는 파란색 폴라폴리스 집업을 샀다. 이 옷은 3주간 톡톡히 역할을 했고 나타샤는 상 하의를 블루로 입는 나를 보고 캐나다 스타일이라며 멋지다 말했다.
옷 쇼핑 마치고 마트로 갔다. 나타샤는 3주간 지내면서 내게 필요한 먹거리를 고르라 했다. 아침에 먹을 시리얼, 요구르트, 치즈, 과자, 한국요리 재료 등... 을 고르는데 너무 즐거웠다. 한국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것들에 대해 하나씩 보면서 비교하면서 고르고 싶었지만, 나타샤는 필요한 것만 사는 사람이었다. 필요한 것을 살 때 이전에 샀던 것을 똑같이 구입했고, 새로운 것을 구입할 때면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가격과 용량 가끔은 옵션을 두고 30초 이내에 골랐다. 나타샤의 시간을 따라 나는 빠르게 필요한 것을 고르고 넣었다. 한국 마트와는 다르게 거의 모든 게 대용량인 이 곳에서 3주간 나에게 이렇게나 많이 필요할까? 적을까? 싶으면서 보이지 않는 3주에 대한 상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