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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We're tuff.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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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정 Nov 06. 2019

Jeong's Trip

'Next week'라는 제목으로 메일이 왔다.



맞다!

까미노에서 만난 나타샤는 루틴이 있었다.

순례를 마치면 낮잠을 자며 쉬고, 여행다이어리에 순례를 기록하고, 컴퓨터가 있는 알베르게(순례자를 위한 숙소를 지칭하는 말)에서는 누군가에게 메일을 보냈다. 가방에는 여러 짐들과 함께 두 개의 숟가락과 포크가 담긴 플라스틱 통이 있었는데, 요리를 하고 남은 음식은 플라스틱 통에 담아 다음 날 식사시간에 먹었다. 슈퍼에서는 필요한 것만 구입했다. 나타샤와 빅토의 요리는 늘 적당했다. 

그들은 귀엽고 검소했으며, 나는 그 모습을 좋아했다.


계획이 담긴 메일이 오기 전, 나타샤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와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은지를 물었다. 나는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베지테리언이어서 고기와 생선(한국에서는 유동적으로 생선까지는 먹지만 늘 무언가를 덜 해하고 싶다.)은 먹지 않는다고 했다. 나의 대답에 나타샤는 'Nextweek'로 시작되는 메일을 보냈다. 같은 계획은 없었다. 나타샤의 나이가 75세라는 것을 생각하면, 매일 다른 계획을 세운 일은 놀랍고도 고마운 일이었다. (심지어 중간에는 래프팅을 간다는 계획이 있는데, 내가 아는 래프팅이 맞는가를 생각하며 눈을 의심했다.)


캐나다 여행을 검색하면 록키산맥을 시작으로 국경을 건너면 갈 수 있는 미국 여행까지도 추천한다. 땅이 넓은만큼 갈 수 있는 곳은 너무나도 많았다. '생애 처음으로 가는 캐나다인데..' 하고 검색한다면 캐나다 지도는 금세 좌표로 가득해질 것이다. 비행기표를 결제한 후, 본격적으로 나나이모를 검색했다. 너무 많은 정보가 나올까 걱정했지만 검색창은 한 페이지를 넘기지 않았다. 그나마 알게 된 것은 나나이모에 간다면 나나이모바를 먹어야 한다는 정도였다. 정보수집을 멈췄다. 3주의 시간과 집을 내어준 나타샤를 떠올리며, 여행보다는 '친구 집에 놀러 간다는 기분'으로 마음을 두고 캐나다 여행을 준비했다. 그런데 한 주 여행 계획을 세운 메일이 왔다. 정보를 찾지 않아서, 나타샤가 75세여서 다행이구나 싶었다. 나타샤가 좀 더 젊었더라면 여행은 그만큼 조밀해질 텐데, 이미 영어를 하는 것만으로 아이폰6처럼 금세 배터리가 사라지는데..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휴.


비행기에 내려 둘러본 캐나다의 모든 것이 신기했다. 밴쿠버에서 머무른 숙소의 세면대 버튼을 켜기 위해서는 수도꼭지를 있는 힘껏 위로 올려야 한다는 사실조차도 말이다. 나타샤와 나는 나타샤의 아들 JP를 따라 순례자처럼 13km 가까이 걸었다. 밴쿠버에 거주하는 JP는 가장 힙한 곳을 소개해주었는데, 처음엔 신기해서 즐거웠지만 비행기에서 밤을 새웠기에 나중에는 졸면서 걸었다. 나타샤가 JP에게 그만 걷고 숙소로 돌아가자를 말하지 않았더라면 걷다 기절했을 것이다.

 

09.19 여행일기 중,


기절하듯이 잔 다음 날, 밴쿠버 홀슈베이에서 나나이모 디파츄어베이로 가는 배를 탔다. 바다 위에 유유히 떠다니는 물개와의 만남에 나는 온몸으로 신기함을 표현하였고, 나타샤는 흐뭇히 웃었다. 우리는 배에서 풍경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앉았다. 조용한 엔진 소리와 함께 배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타샤는 스타벅스 커피 두 잔 사서 나눠준 후, Jeong Trip이라 적힌 종이를 꺼내 3주 여행 계획을 소개했다. 수요일에는 ~, 목요일에는 ~, 금요일에는 ~... 다행히 한 주 뒤쯤에는 비어있는 구간이 있었다. 나타샤는 이때 내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면 함께 할 것이라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라고 생각에 머무를 즈음 나타샤는 '우리의 여행이 재밌다면 빠르게 지나가고 그렇지 않다면 무척 느릴 거야. 그러나 나는 우리의 여행은 빠르게 지나갈 것이라 생각해.'라고 말하며 웃었다.


나타샤 다운 생각과 말이었다.

남들은 왜 이렇게도 길게 남의 집에서 머물다 오냐 했지만,

나타샤와 나는 길지 않을 것임을 이때부터 알고 있었다.


Jeong's Trip의 종이가 천천히 넘겨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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