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1년이란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아... 입학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이네."
"그러게.. 졸업하면 뭐 하지?"
"편입을 해야 하나.... 근데 편입할 만한 데도 없는데 그냥 3년제 선택할까.."
"근데 3년제 선택해봤자 의미가 있겠어? 이미 2년 동안 다 배운 것들일 텐데, 돈만 날리는 거 아냐?"
졸업 후 행보에 대해 고민하는 대화가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2년제 대학이라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졸업이 다가왔다. 불행 중 다행인가, 내가 졸업할 즈음에 우리 학번부터 2년제를 3년제로 변환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졌다. 2년제에서 4년제로 가는 과도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실용음악 작곡 전공이다. 한국에서 내놓으라 하는 대학에 수시로 입학했지만, 2년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이미 입학할 때부터 졸업하면 어떤 방향으로 진로를 정해야 할 지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사회초년생인 나에게 2년이란 시간은 너무나 짧게만 느껴졌다. 대입 이후 인생에서의 또 다른 중요한 결정이었기에 점점 더 초조해져만 갔다. 거기에 대학은 무조건 4년제가 최고, 음악하는 사람은 '딴따라'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대다수의 어른들에게 '졸업하면 뭐 할 거니?'라는 눈초리는 나를 작게만 만들었다.
'졸업하면 뭘 해야 하지?' 하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3년제로 선택해서 학교를 1년 더 다닐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4년제 졸업장도 아니고, 고작 3년제. 어차피 졸업해도 남은 1년을 어디선가 채워야 했다. 3년제로 늘인다고 해서 큰 의미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공부를 더 하느냐, 아니면 일을 하느냐. 동기들은 어떤 길을 가야 할 지 설왕설래하며 나름 자신에게 최선의 선택을 했으리라. 어느 쪽을 선택하든, 도찐개찐이었다. 어차피 한국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사실 나는 졸업하고 무엇을 할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항상 ‘유학’을 염두해 두고 있었다. 특히나 나는 ‘브릿팝’을 너무나도 좋아해서 ‘영국’으로 유학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현지에서 직접 배우면 나의 음악 세계는 얼마나 더 넓어질까 상상할 수록 더욱 간절해졌다. 비틀즈의 음악성, 오아시스의 음악 분위기, 콜드플레이의 가사. 존경하는 영국 뮤지션을 고르라고 하면 고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남들이 한국에서 졸업 후 다음 행보를 찾고 고민할 때, 내가 영국으로 눈길을 돌릴 수 있게 해준 건 바로 ‘영어’였다. 엄마표영어 덕에, 영어는 나에게 또 하나의 편안한 언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유학을 가려면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다. 학교 정보도 알아야 하고, 현지 사정도 알아야 하고, 입시 지원 방법부터 입학 과정, 심지어는 비행기편, 숙소까지. 대개는 이 모든 과정을 유학원에 맡긴다. 도움을 받는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 지도.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들을 나 스스로 했다. 유학원의 도움은 일절 받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는, 어떤 유학원이 있는 지조차 찾아보지 않았다.
유학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에 비용을 절약해야 할 필요도 있었지만, 한 발짝 더 꿈에 다가가기 위해 스스로 하나부터 열까지 해내고 싶다는 열의가 더 강했다. 그리고 그 당시 일반 영국 유학원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아닌 실용음악(popular music)에 관한 정보는 많이 부족해보였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내 스스로 직접 찾아보고 나의 구미에 맞는 학교를 직접 선별하고 싶었다.
영국의 입학지원 사이트에 나와 있는 각 지역의 대학교 목록을 훑어 내려갔다. 나는 브릿팝에 대해 더 심도 있게 배우고 싶어서 ‘popular music’ 코스를 중점적으로 살펴봤다. 코스 정보를 읽어보고, 학교 사이트를 둘러보면서 마음에 드는 몇 군데를 추렸다.
들어본 지역들은 많았다. 비틀즈의 고장 리버풀, 영국 런던 등. 하지만 이 학교들이 어디에 붙어있는 지 알 길이 없어 프로세스가 더뎠다. 목록을 워드파일로 정리해서 뽑아놓고, 구글 지도에서 찾아보며 반 강제적으로 영국 지리도 익혔다.
특히나, 지방 도시의 경우는 영국 문화의 메카(?)인 런던으로까지의 접근성이 중요했다. 그래서 기차 시간표 및 비용 등을 적극적으로 알아봤다. 기껏 유학갔는데 지방에 갇혀 제대로 된 영국을 느끼지도 못 한 채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학비 정보, 장학금 정보 역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학교에 지원함과 동시에 해당 부서에 이메일을 보내 장학금의 종류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의했다.
영국으로 유학을 갈 때, 가장 중요한 건 영어 실력이다. 아무리 해당 전공 분야에 뛰어나더라도,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면, 배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권 이외의 국가에서 유학을 올 경우, 두 가지의 선택권이 있다. 하나는 foundation course (대학교 안에서 진행하는 어학코스 같은 것) 를 밟는 것이고, 또 하나는 IELTS나 토플 같은 인증 영어 시험 점수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영어에 자신있었다. 다른 대안을 원했다. 편입해서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에 한국 대학교에서 이수한 수업이 학점으로 인정되는 지 여부를 문의했다.
지원한 학교들 중, 두 군데의 학교에서 오퍼 레터를 받았다. 그 중 한 곳은 학점 인정을 해 줘서 3년제 학제인 영국에서 2년만 다니면 졸업이 가능했다. 덧붙이자면, 영국은 원래 학제가 3년제이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것과 같다. 거기다 나에게 오퍼 레터를 보낸 대학은 런던에 있는 곳이었다. 나의 모든 조건에 부합했다.
이 모든 과정들은, 나의 영어실력이 아니었다면 현실화시키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 영어를 잘 하고 못 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영국으로 유학을 가야겠다는 의지가 있었고, 영어를 읽고 이해하는 데 두려움이 없었다. 문의 메일 보내는 것도 서슴치 않았고, 교통편 등 실제 생활에 필요한 정보들을 검색하는 것 역시 해보면서 점점 익숙해졌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대학교에 입학하기까지 몇 개월의 시간이 고작이었다. 영국의 학교들은 9월에 1학기가 시작하기에, 대학같은 경우 1-2월에 지원을 받고 프로세스가 진행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이 기간 동안 학교를 검색하고,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하는 것도 모자라 영어 시험 점수를 받기 위해 영어 공부까지 해야 했다면, 아마 위와 같은 결과들을 이뤄내지 못 했을 것이다. 영어점수는 어찌저찌 받아냈을 지 몰라도, 유학 가서 수업을 못 따라가는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1년을 줄인 편입이라는 히든카드는 꿈도 못 꾸지 않았을까.
나의 세계를 한국이 아닌 세계로 넓힐 수 있게 해 주고, 현실적인 대안과 선택지들을 가질 수 있게 해준 건 영어 덕분이었다. 영어에 대한 근자감은 나를 꿈꾸게 해줬고, 그 꿈을 이루게 해 줬다.
그렇게 나는 영국 대학교에 편입 입학을 했고, Uppder-second 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영국 대학교의 졸업장을 손에 거머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