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땐 몰랐지. 내가 엄마표영어를 할 줄은.
"으아아아아앙~~~~ 싫어~ 싫어~"
"엄마랑 놀 거야~ 아빠랑 안 놀아~"
퇴근하고 아이들과 잠시만이라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자 한껏 들뜬 마음을 안고 온 영국인 신랑. 그리고 아빠와 놀지 않겠다며 울며 불며 소리를 지르고 고함지르는 둘째. 둘 사이엔 허물 수 없는 벽이 있었다. '언어'라는 벽.
만 24세, 지금의 영국인 신랑과 결혼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는 예쁜 두 딸이 있다.
사실 신랑과 결혼할 때만 해도 나중에 애들을 낳게 된다면 '영어'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이들이 쌔근쌔근 자는 얼굴만 보고 출근하던 신랑이 하루에 아이들과 소통하며 보낼 수 있는 시간은 퇴근 후 길어야 1-2시간이 전부. 아이들이 하루에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도 고작해야 1-2시간이 전부.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 아빠와의 시간을 독차지했던 첫째는 영어로도 제법 말할 수 있었다는 것. 아빠와의 관계가 돈독했기에, 영어로 아빠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욕구 역시 강했다.
하지만, 하루 종일 한국어 환경에만 있던 둘째는 달랐다. 맞벌이를 하던 탓에 약 12개월 때부터 기관 생활을 시작했다. 또, 둘째는 워낙 빠르다고 하지 않던가. 말이 빠른 아이였다. 만 두 돌이 채 지나지 않아서부터 단어를 나열해가며 의사표현을 했다. 한국어로는 이미 의사표현을 할 줄 아는 둘째에게 영어로만 말하는 아빠와 놀이 시간은 괴로운 일일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믿었다. 둘째가 아빠와의 관계를 쌓으면, 영어 거부도 줄어들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었다. 영어 거부를 넘어서 아빠와의 시간까지 거부하기 시작했다. 둘째가 약 30개월 정도 되던 때. 그 사이 둘째의 한국어 실력은 더 발전했고, 영어 실력은 제자리였다.
어느 날 신랑이 나에게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둘째와의 관계가 쌓이지 않아 고민이라고. 신랑은 자기에게 자신의 딸이 영어로 말하기를 거부하고, 자기와 놀기를 거부하는 마음아픈 일이 닥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부모님과 떨어져 먼 나라 땅에서 살고 있는 신랑이 마음 붙일 데라고는 한국인 아내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두 딸이 전부인데,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현실이 그러했으니. 그저 받아들이고 해결방법을 찾아야 했다.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지도 모르겠다. 다른 한국인 가정처럼 '우리 아이가 영어를 거부하니 조금 더 크면 영어를 가르쳐야겠다.'하고 잠시 물러날 수가 없었다. 둘째가 영어를 하지 못 하면 아빠와의 관계가 쌓이지 않으니.
이 상황에서 발 벗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은 영어를 잘 하는 신랑도, 둘째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할머니도, 첫째도 아니었다. 둘째에게 한국어와 영어 모두를 자연스럽게 익히게 해줄 수 있는 사람. 바로 '나'였다.
엄마표영어라는 용어를 사용한 건 채 되지 않지만, 내가 둘째에게 해준 것들이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엄마표영어'였다. 다행히, 약 20년 전, 내가 엄마표영어 환경에 노출되어 있던 탓에, 둘째의 영어 거부 해결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좌충우돌 엄마표영어는 시작되었다.
영국인 신랑과 결혼해서 아이들 영어는 걱정없을 줄 알았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