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일상을 찾아서.
누구에게나 인생은 삭막하고, 각박하고, 모질기 마련이라지만, 유독 나에게 주어지는 행복하고 설레는 순간은 그 누구보다도 짧게 나를 스치듯 지나가고 ‘인생은 이 맛이지’ 싶던 그 순간은 찰나에 잊히는 것만 같다.
아침에 화장을 할 때면 오롯이 혼자인 시간 속에서 「생각」이란 것을 하게 되는데, 왜 그 생각은 매번 괴롭고 화가 나고 억울한 생각들 뿐인 걸까.
그 상황에서 나는 왜 이렇게 말하지 못했으며, 왜 그렇게 대처할 수밖에 없었는지.. 나를 추궁하고, 그때 못한 말을 되뇌어 말하고, 스스로를 꾸짖다 보면 화장을 마치는 순간엔 거의 폐인 수준으로 지쳐버린 나를 발견한다.
나의 머릿속인데도 내가 원치 않는 생각들이 작은 틈새조차 놓치지 않고 비집고 들어오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저 잠자코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를 잠식해 버린 불온한 생각들을 털어내는 것은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그렇게 아침을 시작하는 하루는 이미 기진맥진하고 불행하다.
어느 날 나는 결심을 한다.
불안한 생각들이 나를 좀 먹지 않도록 하리.
나를 괴롭힐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고,
나를 살아날 수 있게 하는 것도 나 스스로일 뿐이니,
나는 나를 오직 행복하게만 하자.
아니,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시간이 흐른 후 오늘을 반추할 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날이라는 기억은 만들지 말자.
그저 똑같이 흐르는 일상이었지만 평온했노라고 그렇게 기억할 수 있는 하루를 살자.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이 식상한 말이 삶이란 걸 살면 살수록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 되었다. 과한 듯 들리던 ‘헛되이 보내는 시간은 죄악’이라는 말에도 어느 정도는 수긍을 하면서.
나는 취미 부자가 되기로 한다.
돈으로 부자가 되는 것은 하루아침에 뚝딱 되는 일이 아닐지언정, 내가 좋아하는 취미로 부자가 되는 일은 내 맘먹기 만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일 테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은,
그러거나 힘들었던 하루를 아무 일도 없던 듯이 덮어버리고, ‘오늘도 꽤 괜찮은 하루였어’라고 나를 속이는데 썩 도움이 된다.
내 머릿속에는 지우개가 있어서,
힘들었던 일을 즐거웠던 것으로 지우고 다시 채우다 보면 나는 제법 괜찮은 하루를 산 내가 되어 있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
그것이 말도 안 된다고 해도 괜찮다.
내 깊은 내면 어딘가에 휴화산처럼 잠재되어 있어도 괜찮다.
오랜 시간 꾹꾹 눌러져 있다가 어느 날 한 순간에 대폭발이 일어난다 해도 괜찮다.
그 순간조차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찾으며 나를 괜찮게 만들어 줄 테니까.
나는 아주 천천히 걷기를 좋아하고,
음악 듣기를 좋아한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들으며 아주 천천히 걷는데,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나를 온전히 버려야 하는 것이다.
지금 결정해야 하는 일, 처리해야 하는 문서, 답장해야 하는 문자 등 해야만 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느껴지는 것만 느끼고, 들리는 것만 듣는다.
머리를 완전히 비우고 나의 오감을 자극하는 것에만 반응하는 것은,
나를 가볍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 걸음 중에,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찾아내는 것을 좋아한다.
익숙하게 걷던 편안함 속에 그동안 몰랐던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은 설렘을 넘어 희열마저 느끼게 한다.
그동안 몰랐던 미지의 골목에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나를 완전히 잊고 골목을 탐험하기 시작한다.
내 발이 밟는 보도블록 하나, 담벼락에 엉겨 붙어있는 넝쿨 한 가닥, 빼꼼히 열려있는 작은 창문 틈으로 보이는 작은 화분 하나까지도 그곳의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익숙함을 좋아하지만,
내가 살아있는 동안 경험할 수 없을지도 모를 새로움을 찾아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똑같은 도서관, 똑같은 문고인데도 나는 여지없이 매료되어버리고 마는데,
다 읽지도 못하면서 양팔에 책을 한 아름 안고 나오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읽건 안 읽건 그것은 둘째 문제이고 지금 내 품에 책이 안겨있고 그 책이 내 집 내 눈에 보이는 곳에 안착한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행복하다.
아무렴 그중에 여러 권을 나에게 읽히는데,
이야기꾼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문체를 맛보면서, 그의 상상력을 나만의 방식으로 탐닉하는 일은 그 무엇도 대체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책을 읽는 정적인 활동을 즐기면서도,
바쁘게 사부작거리기를 좋아한다.
코바늘로 작은 네 잎클로버 뜨기를 좋아한다.
어떤 잎은 둥글게 어떤 잎은 오목하게 만들고 어떤 줄기는 짧게 어떤 줄기는 가늘고 길게 만들어 열쇠고리로도 쓰고 책갈피에 꽂아두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색감으로 내가 원하는 모양의 수세미를 만드는 것은 또 어떻고.
내가 좋아하는 사부작을 가지고 살림을 하면 그 또한 노동이 아니라 즐거움이 된다.
맘이 몽글거리던 일상은 나이라는 것을 먹으면서 부글이 되고 징글이 되어 일 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되면 결국 나의 삶에 남는 것이 끔찍한 징글의 흉터밖에 남지 않을까 봐 나는 그게 두렵다.
나는 항상 오늘 죽을 것처럼 산다.
내가 오늘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역설적으로 나를 살게 만든다. 그것도 ‘잘’ 살게 만든다.
나는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산다.
오늘 죽을 수도 있으니까,
최선을 다해서 잘 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