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의 가족그림

학교에서 아이들과 동물가족화 그리기를 했다
"가족을 동물로 표현해 보세요. 아빠는 무슨 동물인가요?"
평소 말없고 성실하기로 유명한 준희가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
"우리 아빠는 사자에요. 그리고 엄마는 호랑이에요. 동생은 여우 나는 기린이구요."
헉. 아빠는 보통 사자나 호랑이로 그리니까 그렇다 쳐도 엄마까지 호랑이라니
아이가 숨쉴틈이 없어보였다.
"엄마는 지금 뭐라고 이야기 하고 있어?"
"너네 끼리 갔다와 나는 안갈께 라고 했어요. 아빠는 일하러 갔구요. 동생은 컴퓨터 게임하고 놀고 있어요.
나는 강릉으로 여행가고 싶어요.기차 타고요."
평소 친절해보이던 엄마였는데. 아이 마음에서는 무섭고 자기 일이 우선인 엄마였었구나
아이가 그래서 자기 감정을 쉽사리 내놓을 수가 없었겠구나
그래서 말이 없어졌구나 싶어 짠한 생각이 들었다.

준희 엄마에게 그림 그린 이야기를 핑계로 전화를 걸었다.
"준희 가족화 보내드린거 보셨죠. 가족들이 평화롭긴 한데 동물들이 모두 입이 없어요.
가족간에 서로 속마음을 보이고 대화를 자주 하지 않는다는 뜻이죠.
그리고 아빠는 보통들 사자로 그리는데 엄마가 호랑이에요.
아이 마음에서 엄마는 별로 말도 없고 친절하지 않은 존재인듯 해요.
아이가 숨을 쉴 공간이 필요한 거 같아요. 좋아하는 지하철,전철을 타고
목적없이 돌아다니는 거 하면 아이가 스트레스 좀 풀릴거 같아요.
그리고 엄마도 힘드시겠지만 조금 더 친절한 엄마. 자상한 엄마가 되주면 좋을 듯 하구요
근데 저도 저희 집 아이들이 아마 호랑이라고 할꺼에요. 엄마가 무서운 역할. 규율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저도 저희 집에서 잘 못하지만 어머니께는 말씀드려봐요."

전화를 끊고 한참을 생각했다

몇년 전 집에서 아이들과 가족을 동물로 표현해보자 했을 때
엄마인 나는 여지없이 무섭고 힘세고 소통 불가인 동물이었으니까.
아이들은 나를 어떤 동물로 생각할까 두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

저녁시간 밥을 먹으면서 하루 일과를 나누는 시간
동물 가족 이야기가 나왔다
딸아이가 자신은 느리고 성실한 소같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원숭이. 원숭이가 동물중에 제일 똑똑하다고
아빠는 팬더같은 느낌이라고.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재주 많고 재간둥이 원숭이라니.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이제 딸아이가 커서 눈치껏 무서운 동물은 피해서 고르는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리고 사춘기 아이가 보는 내 모습이 어떤 동물로 비치면 좋을까
잠시 생각에 잠긴다.

어찌 됐든 이야기는 통하는 동물이었음 싶다.
불통이 가장 무서운 사춘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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