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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의 생각의 정원 Oct 12. 2023

현명하게 나이 드는 법

퇴근하면서 아이에게 카톡을 보냈습니다. 학원에 가기전 뭐라도 챙겨먹어야 하는데 

먹을만한 게 있는지 걱정이 되어서요. 영 먹을게 없다고 하면 반찬집에서 반찬을 사서 갈  생각이었습니다. 

아이가 답장을 했습니다. 대충 챙겨먹겠다는데요. 스스로 챙겨먹는 걸 어려워하는 남편은 

아이의 그런 대답이 기특한 모양입니다. 


 사랑이 가득담긴 하트팡팡 이모티콘을 보내더군요. 

한창 사춘기 딸아이가 왠일로 하트 이모티콘으로 답변을 합니다. 

이 사랑이 가득한 광경을 그냥 보고만 있을수는 없지요. 팩트폭행녀인 내가 나섭니다. 

"두분 애정 표현이 과하시네요. 만났을때 친하게 지내세요. 제~~~~발."

둘 다 순간 머쓱해 졌을 겁니다. 

그런데 둘이 따스한 표현을 주고 받는게 오글거리는 건 진짜였습니다. 

부디 하루 하루 만나면서 저렇게 애정이 넘쳤으면 하고 바라는건 그야말로 진심이었지요.  

남편은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닙니다. 자신이 꽂힌 분야. 특히 회사일에 대해서는 

말을 많이 하지만 보통은 조용합니다. 아빠를 닮은 딸아이도 마찬가지지요.

누가 건드리지 않으면 평온하구요. 감정의 동요도 크지 않은 편입니다. 

그런 남편이 요즘 달라졌습니다. 이상하게 말이 많습니다. 그것도 투덜대는 말이요. 

왜그런가 살펴보니 남편이 딸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유독 그렇습니다. 

자신과 똑 닮은 모습이 거슬리는 모양입니다. 

아이가 미워서라기보다 아이는 자신과는 다른, 나은 삶을 살았으면 싶은 욕심 때문이겠지요. 

그 바램을 예쁜 말로 하트 가득 이모티콘처럼 담아서 표현해주면 좋을텐데요. 

뾰족한 잔소리로 쏟아붇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기분이 좋을 리가 없지요.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알았어."

짜증이 가득담긴 대화가 오갈 수 밖에요.

남편이 내가 살아보니 이렇더라고 하면 딸아이는 강요하지 마라 그 세상은 내가 

경험해보겠다고 합니다. 둘의 입장이 아주 팽팽하지요. 서로 양보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오랫만의 따스한 부녀간의 카톡이 어색한게 이상하지 않잖아요. 

남편의 걱정도 아이의 반항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만 둘이 좀 더 다정하게 

대화했으면 하는 바램은 사라지지 않아요. 

그런데 이게 남의 일이라 그런 거구요. 

내가 말하는 입장이 되면 이런 논리는 순식간에 몇배나 불어납니다. 

"당신 요즘 입만 열면 잔소리야. "

어느 날 남편이 투덜거리며 말했습니다.

"내가 무슨"

이라고 말은 했지만 진짜 그랬나 싶어집니다. 

어지간해서 불만을 말하는 남편이 아닌데요. 내가 지적을 많이 하긴 했나봐요. 

"말만 하면 불만 가득이고 지적만 하잖아."

진짜 그랬었나 싶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싫어했던 것이 "이건 이래. 저건 저래."라고 말하는 부류였습니다. 

마치 자신이 세상을 다 아는 냥 자신만의 기준을 정해두고 그 밖은 다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확언할 수 있을까 싶었지요. 

자신이 경험한 세상은 정말 티끌만큼이잖아요. 안그래도 우주의 먼지같은 존재인 우리가 

티끌만큼 경험한 것으로 세상을 단정짓는다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나는 나이를 먹더라도 항상 유연하고 생각이 플랙서블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어릴때부터 다짐했었지요. 

그런데요. 이상합니다. 내가 나이를 먹으니 이상하게 규정짓는 것들이 많아져요. 

그 상황을 한두번 겪은 나의 경험으로 판단을 하고 있더란 말입니다. 

"당신은 원래 그래. 그러면 안되거든. 이렇게 해야지."

어찌나 단호한지 마음을 칼로 베일 듯 단정짓는 경우도 생기더라구요. 

그런 차원에서 아마 내가 남편에게도 잔소리를 한 모양이에요. 

남편이 얼마나 답답하고 싫었을까 나의 이런 태도가 특히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굴레같았을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나이들수록 모든 에너지가 입으로 몰린다더니 정말 그런 모양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이 글을 써대내는데도 하고 싶은 말이 많고 외로운 모양입니다. 

이대로 아는 척 한번 못하고 있다가 쓸쓸하게 늙어가 뒤안길로 사라질까봐 두려운가봐요. 

자꾸만 잔소리라는 타이틀에 숨겨 내 헛헛한 마음을 규칙으로 만들어 

가족에게 보이지 않는 짐을 지우고 있었어요. 

'말을 줄여보자. 그리고 아이가, 남편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결심은 하였는데요. 너무나 쉽사리,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옵니다. 

나이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했는데요. 

나는 아직 나이를 허투루 먹은 모양입니다. 

평소에 잘하라고 지적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지적받아 마땅한게 나였습니다.

오늘은 한번 더 듣고 한번 덜 말해봐야겠습니다. 

나의 섣부른 잔소리에 가족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공허한 말을 줄여보는 것. 

내가 현명하게 나이들어 가는 방법을 하나 찾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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