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눈을 뜨니 7시 입니다. 주말의 기쁨이 늦잠 자는 것인데 참 이상하지요. 평일에는 7시에 절대 눈에 저절로 떠지는 법이 없는데요. 왜 주말에는 그 시간에 규칙적으로 눈이 떠질까요. 이건 아니다 싶어 다시 눈을 감고 장을 청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부산을 떨어봤자 잠귀 밝은 아들이 깨어날거구요. 괜히 식구들 늦잠만 방해할 테니까요. 다시 잠을 자자고 눈을 붙이고 일어났더니 또 8시입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외쳐보지만 몸이 일어날 시간을 기억하고 있음일까요. 10분 간격으로 눈이 떠집니다.
'에잇 일어나자.'
나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었습니다. 나 혼자 일찍 깬 여유로운 주말 아침. 시간을 허투루 쓸수는 없으니까요. 옷을 차려입고 살금살금 현관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내가 닫은 현관문이 금세 열리는 소리가 나에요. 뒤를 돌아보니 잠귀가 밝은 아들입니다.
"엄마 어디가?"
"어. 나 신경쓰지 말고 너는 더자. "
저렇게나 잠귀가 밝을까 싶으면서 얼른 빠져나왔습니다. 나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침 말을 아끼고 싶었지요. 그 누구에게도 나만의 시간을 침해받기 싫었습니다. 그게 내가 너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해도요.
얼른 차에 올라타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듯 엑셀을 밟았습니다.
목적지는 서울 식물원입니다. 나의 힐링 장소이지요. 네비게이션을 눌러보니 18분 걸립니다.고속도로를 타야하긴 하지만 나쁘지 않습니다. 일요일 아침 교회가는 사람들 덕분에 밀리지 않는 길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랫만의 운전입니다. 시냇길 말고 빨리 달리는 길은 운전을 잘하지 않지만 서울 식물원 가는 길은 다르지요. 긴장이 되었지만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며 김여사 다운 속도로 천천히 식물원을 향해 갔습니다.
식물원에 가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식물원에 있는 식물판매 코너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동네 꽃집보다 가격도 저렴하려니와 식물원에 있는 다양한 식물의 유묘를 파니 종류도 많습니다. 철이면 철마다 키워내는 식물이 다르고 벌레도 없이 건강하고 뿌리상태도 좋거든요. 요즘 내가 식쇼핑을 즐기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오랫만에 일주일동안 애쓰고 일한 나에게 주는 선물을 구입하러 가는 길이지요. 가을에 접어들어 찬바람이 불어오니 식물들이 새순을 잘 내어주지 않아 재미가 덜하지만 새로운 식물을 접하면 그 재미가 늘어나니까요. 겨울이 되기전 새로운 식구를 맞이해야지요.
식물원에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서 제일 먼저 본 것은 로즈마리 외목대였습니다. 외목대 러버인 나에게 쏙 들어오는 식물이었지요. 정성껏 예쁘게 길러낸 외목대는 가격이 2만원 가까이 되더군요. 가격도 가격이려니와 로즈마리는 자라는 모습이 너무 삐죽빼죽해서 이쁘지 않습니다. 일단 패스하구요. 쭉 둘러보니 새로운 식물들이 많습니다. 기존에 있거나 사서 한번씩 죽인 식물을 제외하고 겨울에도 잘 견딜수 있는 식물을 사야하는데요. 그 선택이 어렵습니다. 왜냐햐면 내가 아는 식물들은 집에 있고 모르는 식물은 성질을 알수가 없으니까요.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서 검색을 했습니다. 트란카툴라, 러브 포인세티아. 아라우카리아 남천, 타마린드 핑크 아악무. 이것저것 검색해봤지만 딱히 겨울을 잘 이겨낸다는 식물도 없었고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눈이 가는 것은 고사리인데 고사리는 겨울의 건조한 우리 나라에선 잎이 타기가 쉽습니다. 잎이 타들어가는 식물을 제외하니 정말 살게 없더군요.
'뭐가 뭔지 알아야지. 공부한 식물들은 모두 샀고 죄다 새로운 식물들 뿐이니 뭘 고를지 모르겠네.'
그나마 잘 버티겠다 싶은 일일초를 두개 샀습니다.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렵게 마음과 시간내서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가기는 싫었으니까요. 공부도 하지 않고 왔더니 땡기는 식물이 없더라구요. 역시 세상은 아는만큼 보이는 모양입니다.
이런 경험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후에는 초대권을 받아 음악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얼마전 부터 예술의 전당 공연을 한번 보고 싶다는 딸의 요구가 있었는데 잘되었다 싶었지요. 평소 클래식 음악을 즐겨듣는 남편과 나는 오랫만의 가을 음악회가 정말 반가웠습니다. 기대되기도 했구요. 아이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도 기대가득이었지요. 미리 예습한다고 들어본 드뷔시의 현악 4중주 곡이 난해하긴 했지만 현장에서 들으면 느낌이 다르리라 싶었습니다.
공연장에 들어가 자리에 안고 해설을 해주시는 분이 연주자들과 곡의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드뷔시가 처음으로 만든 4중주 곡인데요. 여러 곡을 만들려 했으나 반응이 좋지 않아 한곡에서 마무리 지었다고 합니다. 이 곡은 네 악기가 함께 어우러져서~"
해설자의 설명이 한참 이어지는데 아들이 제 귀에 대고 속삭입니다.
"뭐라는 거야?"
아들은 설명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습니다. 나도 다 알지는 못하기에 설명해 줄만큼 지식이 있지도 않았지요. 아무튼 내용을 알기 전에 음악이 좋으면 그만이고 감상은 관객의 몫이라 생각하며 연주를 기다렸습니다.
드뷔시의 4중주 연주 1악장이 시작되었습니다.
'뭐지?'
해설자의 설명을 듣는 것보다 몇배는 더 난해하고 어지러운 곡이었습니다. 음악의 흐름이 자연스럽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것도 아니더군요. 눈을 감고 있으니 머리가 빙빙도는 느낌이었습니다. 왜 한곡만 만들고 멈췄는지, 반응이 좋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그렇게 1악장에 나가고 싶은 욕구를 참고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하려고 노력했습니다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연주곡의 선율보다 주변에서 매너없이 기침하는 소리가 더 잘 들리더군요. 얼마나 좋은 곡인지 훌륭한 연주자들인지 설명을 들었음에도 내 귀에는 이질적인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겨우 드뷔시의 곡을 다 듣고 하이든의 4중주가 이어졌습니다. 처음에 들었던 충격만큼은 아니었지만 편안한 선율이 흐르더군요. 듣기 좋다 싶을때쯤 눈이 스르로 감겼습니다. 아까부터 듣고 있던 드뷔시의 곡에 대한 피로도 때문인지 연주회에서 좀처럼 자지 않는 나도 잠이 오더군요. 옆에 앉은 아들은 쌔근쌔근 잠이 들었습니다. 숨소리가 바이올린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릴 때쯤 연주회는 인터미션 시간을 가졌습니다.
"가자."
우리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마음이 통했습니다.
"너무 난해하고 어려워. 피곤하다."
예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우리는 연주회가 너무 힘든 나머지 중간에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주회장 밖으로 나오니 전당 뒷마당에서 음악분수 연주가 한창이었습니다. 시원한 바람과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오니 기분이 금세 좋아졌습니다.
"여기가 훨씬 낫다."
뒤에서 따라 나오던 여자분이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롤르 바라보며 빙긋 웃었습니다. 그 마음이 우리 마음이었으니까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공부하지 않았기에 모르는 식물에겐 관심이 가지 않았구요. 익숙하지 않았기에 처음 듣는 클래식 음악이 난해하기만 하더군요. 모든 것은 내가 알고 관심을 가지는 것만큼 보이는 법입니다. 지난번 아들과 함께 식물원에 갔을때 예전과는 다르게 식물원의 식물들 이름을 아니 더욱더 애정이 가고 재미있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아는 세상을 점점 넓혀가고 관심있는 것들을 넓혀가다보면 세상이 조금 더 재미있고 의미있어 지겠지요.
어렵다 싫다 말하기 전에 내가 가진 지식과 앎. 관심을 넓혀가야겠어요. 그게 세상을 조금 더 재미있게 살아낼 수 있는 방법이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