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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의 생각의 정원 Oct 17. 2023

한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내일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집니다.일부 지역에서는 서리도 내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농작물 관리에 만전을 기하시기 바랍니다."

뉴스에서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다고 합니다. 이번 가을은 사둔 블라우스를 다 입기도 전에 끝나버린 기분입니다. 반팔을 입다가 갑자기 뽀글이 후리스를 꺼내입어도 이상하지 않은 기온변화. 날씨뉴스를 듣자마자 걱정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집안에 있는 나의 식물들이지요. 

퇴근하고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자마자 베란다에 있던 식물을 안방으로 옮겼습니다. 느낌있게 식물방을 꾸미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멋진 소품도 아이디어도 없었기에 화분 정리대에 차곡차곡 올려두었지요. 감성은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식물들이 편안했으면 싶어서 식물등과 가습기를 틀어주었습니다. 건조하고 추운 겨울날 식물들이 해를 입으면 안되니까요. 

"와 재네는 좋겠다."

아들이 들어서며 한마디 합니다. 

"나도 누가 저렇게 돌봐줬으면 좋겠다. 식물들은 아무것도 안하는데 저렇게 관심을 받네."

남편도 한마디 거듭니다. 식물 자체에 관심이 없는 딸마저 베란다에서 식물들을 보고 있으니 

"엄마는 왜 맨날 여기 있는거야. 여기에 세냈어?"라고 하더군요. 

모두들 식물을 돌보는 나를 보며 한마디씩 보탭니다. 그야말로 질투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자기들에겐 그다지 다정하지도 않고 매번 '알아서 해'라고 하는 엄마와 아내인 내가 

식물들을 애지중지 키우는게 탐탁치 않은 모양입니다. 

"너는 네 스스로 필요한 것을 찾을 수 있잖아. 그런데 식물들은 아니지. 말도 못하는데 아프기라도 해봐. 얼마나 짠하니. 그러니 내가 돌봐줘야지."

했지만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식물이 왜 아무것도 안해. 저 식물들도 목숨걸고 자기를 지켜내느라 얼마나 애를 쓰는데. 끝까지 끝까지 버티다가 식물나라로 돌아가는 걸 보면 얼마나 짠한지 알아? 아무것도 안하는것 같지만 저 식물들도 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어. 그런 너는 얼마나 인생을 치열하게 사는데? 저 식물들처럼 온 힘을 다해서 살아내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어?"

되지도 않은 질투를 부렸다가 된통 당하는 꼴입니다. 말하면서 화가 잔뜩 오른 나는 점점 더 감정이 격해졌습니다. 

"식물들이 새 잎을 낼때 얼마나 고되고 힘든 줄 알아. 그 노력이 너무 가상하고 예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라고 영양분도 주고 바람도 쐬어주는 거야. 힘들때니까 물도 조금 더 주고 빛도 쐬어주고. 그렇게 공들여서 새 잎을 내고 또 한참을 쉬지. 힘을 모아서 다시 새 잎을 내는 거라고. 왜 식물들이 아무것도 안하고 대접받고 있다고 생각해. 죽을 힘을 다해 살고 있는 것 자체가 감동이고만. 그래서 내가 식물들을 좋아해. 격려해 주고 싶다고."

괜히 한마디 했다가 빈축을 산 가족들은 각자 방으로 흩어져 버립니다. 나는 화를 간신히 가라앉히고 다시 식물앞에 섭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새 잎을 내서 보드라운 연두잎이 아름다운 몬스테라 앞에 서니 경건한 마음이 듭니다. 날씨가 너무 건조해서 잎이 타버렸는데도 버티고 있는 제브리나에게는 한번의 분무질로 어루만져 주지요. 잎이 다 떨어졌는데오 목대는 너무 튼튼하게 남아있는 장미허브에게는 '너를 어쩌면 좋니'싶은 짠한 마음이 듭니다. 목대가 살아있는데 뿌리를 뽑아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렇게 빛도 없고 춥고 건조한 우리 나라 날씨에서 무심히 아픈 소리 내지 않고 꿋꿋이 버티고 있는 식물들을 보니 마음 한켠이 뭉클해집니다. 

어쩌면 그 모습이 나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른 아침 눈을 떠 야채 주스를 갈면서부터 시작하는 나의 하루요. 출근할때 지하철에서 서가는 내내 뒷꿈치 운동을 하며 책을 읽습니다. 수업을 하고 학부모님에게 상담을 하고 아이들을 격려해주며 하루를 보냅니다. 틈틈히 공문도 처리하고 계획서도 기안하지요. 점심시간엔 선생님들을 만나 학교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햇빛을 쐬며 걷기도 합니다. 오후에는 짬시간을 내서 글을 쓰기도 하지요. 집에 돌아와 저녁을 하고 부랴부랴 운동을 갑니다. 집에 와서 반신욕을 하고 식물들을 돌보다가 스마트폰을 하지요. 저녁시간이 너무 빠르다며 아쉬워하며 잠을 청하기까지 고단하기도 하고 바쁜 나의 하루입니다. 그 하루를 살아내면서 희노애락의 온갖 감정을 접하지만 너무 깊숙이 감정을 가져가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면 내일을 다시 살아내는게 힘들어지니까요. 중간 중간 몸이 아파 병원을 가더라도 그렇게 몸을 추스려가며 나이 드는 거라고 나를 위로하지요. 그런 내가 감정을 자칫 돌보지 못하는 날에는 눈물이 한없이 쏟아내기도 하면서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버티고 서 있는 것이 나를 닮았습니다. 그러다 작은 성과라도 내는 날이면 나 혼자 기쁜 마음에 보름달 빵이나 하나 사먹으며 자축을 하는 거지요. 조금씩이지만 자라고 성장하고 변화하는 내모습에 감사하면서요. 그렇게 끝까지 내 에너지를 조금씩 조금씩 방출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식물과 참 비슷합니다. 어느 날 소리소문도 없이 껶여버릴 수 있다는 것조차요. 

나는 식물이 참 좋습니다. 순간순간 소리내지 않으면서 자신의 자리에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거든요. 그 모습이 좋은 나의 하루는 식물을 닮았습니다. 힘들다고 크게 소리내지 않으면서 묵묵히 내 일을 해나가는 것이요. 가끔 서럽기도 안쓰럽기도 하지만 살아있으니 된 겁니다. 살면서 성장하니 그걸로 된 거지요. 한창 흐드러지게 피는 나이가 지났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노목이 보여주는 새싹이 더 아름답고 소중한 것처럼 나는 내 인생 작은 꽃이라도 피우기 위해 노력할 거니까요. 그게 짠하고 안쓰럽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나는 지금 내 모습이참 참 고맙거든요. 햇빛에 탄 곳도 있고 삐죽한 가시도 있을 수 있지만 이게 나니까요. 사십년 넘게 하루 하루를 열심히 버티고 키워낸 내모습. 내가 먼저 사랑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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