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좋아하는 식물 중에 하나가 몬스테라입니다. 다른 어떤 식물보다 빠르게 몬스터 처럼 자라서 좋아합니다. 연두색 새 잎을 내주는 주기가 빨라서 좋아합니다. 왠만한 과습도 잘 견뎌내고 건조도 잘 이겨내기에 좋아합니다.
그런 몬스테라인데 과습이 심해도 심해도 너무 심했던 모양입니다. 주말을 지내고 잎 하나가 노랗게 물들더니 톡 부러져 버렸습니다.이상하다 싶어 몇일을 기다려봤는데요. 잎이 시들해지는 기운이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겠다 싶어 화분을 뒤집었습니다. 풍성했던 몬스테라 뿌리가 아주 조금 남아있었습니다. 화원에서 심어준 화분의 흙이 계속 마르지 않는다 싶더니 과습이 굉장히 크게 손상을 주었나 봅니다. 몇일만 그냥 놔뒀으면 뿌리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것처럼 보였지요. 얼른 뿌리를 헹궈 물에 담가 주었습니다. 물에는 영양분이 없으니 영양제를 잔뜩 섞었지요. 부디 하루 빨리 건강을 회복하기를 바라며 물병아래는 검은봉지로 어둡게 감싸주었습니다. 뿌리 주변이 어두워야 더 싹을 잘 내거든요.
몇일동안 지켜봅니다. 이틀에 한번 물을 갈아주며 지켜보지만 쉽사리 뿌리가 내리지 않아 애를 태웁니다.그렇게 이주쯤 지났을때 드디어 자그마한 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식물이 과습이 되어 뿌리를 씻어 수경재배로 바꿀때는 늘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 풀이 뭐라고 내가 이렇게 정성을 쏟는담. 그냥 꺾어서 쓰레기통에 버리면 아무것도 아닐 것을. '
그렇게 과습으로 손상된 화초는 보잘것 없습니다.생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지요. 그런 작고 여리고 상처받은 아이를 그래도 정성껏 물에 심고 영양제를 넣어주며 물을 갈아주다보면 흙보다는 느리지만 뿌리를 내려줍니다. 두어달 수경에서 키운 후에 흙에 다시 심어주지요. 다시는 너를 과습으로 아프게 하지 않으리라는 다짐과 함께 말이지요.
몬스테라는 수경에서도 잘 자라는 편이지만 흙에서 더 잘 자랍니다. 어떤 흙에 영양소를 넣느냐에 따라 속도가 달라지지요. 너무 과하지도 않게 흙에 영양분과 농약을 섞어주면 되는대요. 그 비율과 농도는 사실 아무도 모릅니다. 내 방식대로 심다가 더디게 자라거나 얼음 상태로 있기도 하는데요. 나는 그저 잘 자라려니 하고 매일 매일 들여다 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게 없지요. 부디 스스로 잘 자라길 기대하면서요.
"너는 진짜 다른 집에 안 살아봐서 몰라서 그래. 우리 집이 얼마나 편안하고 좋은 환경인지 알기나 하니?"
가끔 아이들을 불러놓고 따끔하게 내뱉는 말 중에 하나입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그렇듯 자신의 환경에 쉽게 만족하지 않습니다.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불만이 많지요. 아이가 말하는 그 안 좋은 조건들보다 훨씬 나쁜 환경에서 자란 우리에게는 그 소리가 기가 막히게 들립니다.
"엄마는 너만 할때 엄마아빠가 자주 싸웠어. 얼마나 불안했는지 아니. 아빠가 술마시고 들어온 날은 누가 나를 구해줬으면 싶을 정도였지. 그런데 네 아빠는 술도 안 먹잖아. 우리는 거의 싸우지도 않아.그러니 얼마나 편안한 환경이니."
"맞아. 아빠 어릴때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대놓고 공부하라고만 했어. 왜 공부해야 하는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한번도 말안해줬지. 특히 할아버지는 늘 못한다고 부족하다고 화만 냈어. 그런 환경에서 아빠가 겨우 의사라는 꿈을 찾아서 도전해보겠다고 했을때 할머니가 말렸어. 부담스럽다고. 그때 할머니가 지지만 해줬어도 나는 이렇게 살지 않을거야. 그런데 너네는 어때. 엄마 아빠랑 이야기 자주하고 너네 의견 존중하잖아. 원하는 거 대부분 서포트해주고너희들이 해보겠다는 거 말만하면 전폭적으로 지원하지. 그러니 얼마나 편안 환경에서 사는 거니. 내가 너희라면 정말 못할게 없겠어."
우리 부부가 신세한탄과 더불어 잔소리를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사뭇 다릅니다.
"그런가?"
"그런가라니. 너네 굶는 애들도 얼마나 많은지 알아? 매맞거나 어려서부터 돈을 벌어야 하는 가정도 많아. 얼마나 편안한 환경에서 안정되게 지내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가라고? 친구들한테 물어봐라. 우리집 같은 집 찾기 힘들어."
남편의 말에 나도 맞장구를 칩니다.
"맞아. 얼마전 어느 책에 보니까 화목한 집안의 필수조건이 아빠라더라. 아빠가 부드럽고 엄마가 카리스마 있는 집 아이들이 잘 자란대. 아빠가 자상하면 그만큼 집안이 평온하니까. 너네 아빠 봐. 저렇게 다정다감한 아빠가 어디있니. 아빠 덕분에 화목한 가정이 가능한거야. 그런 집이 흔하지 않다니까."
열변을 토해보지만 아이들은 시큰둥 하지요.
"내 친구들도 다 괜찮아 보이던데."
"그게 다 허상이야. 소셜네트워크에 봐라. 온통 행복한 모습 뿐이잖니. 그런데 그게 과연 진실일까. 자신의 초라하고 안 좋은 모습은 숨기는 거야. 너네 봐라. 우리집에서 그렇게 숨길 만한게 있나. 없잖아. 그것만 봐도 너희들은 복 받은 아이들이야."
아이들 머리에 세뇌될만큼 강하게 어필을 해 봅니다. 그래야 우리가 만들어준 이환경에 대해서 보상받는 기분이 들어서였을까요. 정작 본인들은 반응도 없는 말들을 허공에 계속 날립니다.
"너희들이 감사했으면 좋겠어."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고 결론지어야 하는 감정마저 확정짓고 마는대요. 그러게요. 이 상황만 보면 아이의 감정을 강요하는 우리집 분위기를 누가 좋다고 할지 모를 정도입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어리숙한 모습입니다. 부모가 이렇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줬다면 그 다음 성장하고 완성해내는 것은 본인들의 몫일테니까요. 어쩌면 그게 부담스러워서 가만히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식물의 환경을 골라줄 때와 마찬가지 같습니다. 나름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준다고 온갖 영양제와 천연농약, 배수가 잘되는 흙을 마련해주고 물, 바람,햇빛을 쐬어주지만요.그게 그 식물에게 꼭 맏는 환경이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어느때는 너무 영양이 과해서 아이가 웃자라버리기도 하구요. 영양제가 부족해서 잎색이 변하기도 합니다. 그런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식물들이 기특할 정도로 본인도 노력을 하지요. 그러나 끝까지 못 버텨내고 식물나라를 택하기도 하니까요. 그 과정에서 원망을 하면 안되지요.
"내가 너에게 얼마나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줬는데. 이것밖에 안돼. 왜 성장을 못해."
하고 말이에요. 내가 제공해 준 환경과 식물의 성질이 맞아 떨어지면 좋겠지만 딱 맞지 않는 것이 식물의 잘못은 아니니까요.
오늘 나는 또 아이에게 결과를 만들어 내라고 강요를 했는지 다시 돌아봅니다.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 것 또한 나의 욕심이고 만족이라 생각하며 그것에 만족할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아이에게 내가 준 것의 결괄르 내놓으라는 압박 때문에 아이가 힘들어 자기 역량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면 안될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