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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의 생각의 정원 Oct 31. 2023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아침이면 꼭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직장동료냐구요. 아닙니다. 가족도 아니구요. 아는 사람도 아닙니다. 아침마다 길에서 만나는 한 남자입니다. 

그 사람을 처음 본건 몇 년 전 부터입니다. 약간 구부정한 등을 가진 남자인데요. 나와 출근 시간이 같은지 매번 마을 버스에서 만났습니다. 눈썰미가 좋기로 유명한 나는 몇 번 본 사람은 잘 잊지 않는 편인데요. 그사람이 내 눈에 들어온건 발목위로 올라간 바지와 발목이 보이는 짧은 양말 때문이었습니다.사시 사철 같은 가방을 들고 성큼 성큼 걸어가는 모습이 한번 두번 눈에 들어오더니 이제는 출근길 동지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사람은 나를 알지 못합니다. 나 혼자 내적 친밀감을 가진 거지요. 버스 정류장에 갔는데 그 남자가 있으면 곧 내가 탈 마을버스가 온다는 신호거든요. 조금만 늦게 나가면 정류장엔 남자가 없습니다. 마을버스도 가버린 뒤인거죠. 그래서 아침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남자를 만나는 것이 나쁘지 않습니다. 내 마을버스와 함께 매일 아침 그사람도 나타나니까요. 

오늘은 조금 일찍 집에서 나왔습니다. 저만치 반가운 마을버스가 오는데요. 남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가끔은 이 시간에도 보이지 않으니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있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가 내 뒤쪽에서 나타나더군요. 나 혼자만의 내적 반가움으로 남자가 버스에 오르는 모습을 봤는데요. 이상했습니다. 오늘은 남자의 모습이 전과 같지 않습니다. 

뭐가 달라졌나 살펴봤더니 몇년째 쓰고 다니던 마스크를 벗었네요. 이상하죠. 다시 독감이 유행이라는데 왜 벗었을까요. 한번도 벗지 않던 마스크를 벗었는데요.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삼십대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발목이 드러나는 요즘 스타일의 바지와 양말 때문이었을 겁니다. 눈매를 봤을때도 주름하나 보이지 않았기에 신혼인 남자일 거라 생각했지요. 삼십대 답지 않은 여유로운 행동이 그때는 눈에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오늘 마스크를 벗을 걸 보니 얼굴에 주름이 꽤 깊습니다. 딱 보기에도 오십대로 보이네요.

'뭐야. 속았잖아. 저 사람 완전 마스크 사기꾼이었네.'

나혼자 피식 웃었습니다. 몇년동안이나 자주 스쳤는데 이제서야 남자의 진짜 얼굴을 보고 너무 늙은 모습에 실망을 하고 말았네요. 여러번 겪은 일인데도 참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필라테스를 배우러 갔을때도 매력적인 선생님의 성격과 말투에 끌렸었는데요. 마스크를 벗는 순간 할머니가 나타났어요. 얼굴을 보고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나 혼자 기대하고 실망한 건데요. 외모만 빠지는 속물이라고 해도 어쩔수 없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외모가 영 달라지니 정말 어색했거든요. 한참을 선생님의 얼굴에 적응하고 나서야 편안하게 선생님 얼굴을 볼수 있었지요. 

"왠만한 사람은 다 마기꾼이야. 벗은것보다는 마스크 쓴게 낫지."

나는 마스크 쓴 것과 벗은 것 중 어떤게 나으냐고 묻는 말에 동료 선생님이 한 대답입니다.맞아요. 팔짜주름에 볼살도 패였으니 차라리 눈만 보이는게 덜 나이들어 보였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다 맞는건 아니었어요. 유독 눈매가 날카로운 사람은 마스크를 썼을 때 인상이 더 나쁘기도 하니까요. 쎄보이는 사람이 마스크를 벗는 순간 순한 인상이 되는걸 보면 모두다 마기꾼이라는 말은 오류가 있지요. 

"엄마 나 마스크 쓴거랑 벗은거 어떤게 나아?"

아직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아들 녀석이 묻습니다. 

"너는 눈매가 날카로워서 마스킈 벗는게 나아. 마스크 벗으면 얼굴이 훨씬 순해 보여."

아들은 고개를 갸우뚱 거립니다. 

"아닌거 같은데. 아이 어색해. 그냥 써야겠다."

스스로 마스크 벗는 걸 어색해 하며 다시 얼른 마스크를 골라 쓰고 외출을 합니다. 

외출하고 돌아와선 또다시 묻습니다. 마스크 쓴것과 벗은 것 중에 어떤게 낫냐구요. 

내 얼굴은 전혀 변화가 없을진대 나의 외모에 참 많이 신경을 씁니다. 

남들이 보기에 번듯한 내 모습이 중요하니까요. 

중년에 접어들면서 얼굴에 주름이 하나둘 늘면서는 더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이 아닌것 같아 병원을 전전긍긍하며 얼굴의 노화를 잡아보겠다고 

안간힘을 쓰지요.

그러면서 늙어보이는 사람을 보면 욕을 못해서 안달이 납니다. 

"그여자. 그여자 있잖아요. 금메달 딴여자. 성형 심하게 한."

"맞다 그 사람. 성형해서 얼굴 이상해 졌잖아."

이름도 필요없습니다. 얼굴에 손을 대고 예뻐졌다는 이유로 온갖 뒷담화의 주인이 됩니다. 

'왜 사람들은 저렇게 남의 성형에 부정적이지? 자기 돈으로 알아서 한거잖아.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네.'

늘어지고 무거워지는 눈 때문에 쌍커풀 수술 상담을 받으러 다녀온 나는 사람들의 말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자기가 못하기 때문에 그러는 건가 싶기도 해요. 말하는 사람 눈을 보며 나와같이 쳐져서 무겁고 불편할 거 같은데요. 자기가 안하기 때문에 욕을 하는건지. 못해서 그러는건지 알수가 없습니다. 나 역시 성형에 관심도 안 가졌다면 함께 욕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요. 

나이가 들면서 주름이 하나하나 늘고 내가 나 같지 않습니다. 화장으로 가려봐도 숨길수가 없구요. 거울 보는 일이 우울해 지기만 합니다 갑자기 팍늙어 버린 것 같아 서글퍼지는데요. 이런 우울한 생각을 하는 나를 부끄러워 한 적은 없습니다. 

성형한 사람을 욕하는 사람이나 마스크 사기꾼에게 어색함을 느끼는 내 모습이 다르지 않을 텐데도 나는 조금이나마 나은 사람인척 하는 내가 실상 우습지요. 

세월을 이길수는 없습니다. 거슬러 살아갈 방법은 없을 텐데요. 외모에만 너무 치중해서 살기 싫은데 자꾸 외모에만 눈이 가네요. 마음을 더 충실하고 따뜻하게 하고 살아야지 하면서도 줄름을 가리려고 화려한 악세사리만 무작정 사들입니다. 언제나 철이 들고 속이 단단해질지 알수가 없습니다. 그저 보이는 외모를 치장하느라 속을 알차게 하는건 등한시하는데요. 더 나이들면 이게 포기가 될까요? 눈에 보이지 않고서는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일을 멈추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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