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의 생각의 정원 Nov 07. 2023

모진 겨울이 가르쳐 준 것

 찬바람이 제법 코끝을 시리게 합니다. 

이럴때 가장 그리운 것이 따사로운 햇살입니다. 

찬기운에 몸을 웅크릴 수록 그리운 것이 온기이고 밝음인데요.

그 햇빛이 고픈 것이 사람만은 아닐겁니다. 

가정에서 키우는 식물들은 더하지요. 

햇빛을 양분삼아 자라니까요. 열대가 고향인 관엽식물에게 

햇빛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인데요. 그런 햇살이 약해지는 겨울이 

식물에게는 그 어떤 계절보다 힘이 들지요. 

식물이 맥을 못추는 겨울엔 식집사도 힘이 빠집니다. 

언제나 방긋방긋 새잎을 내주던 녀석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면서 

식물 키우는 재미도 줄어들게 되니까요. 

식물등을 켜주고 서큘레이터로 인공바람을 쐬어주어도 

식물이 여름처럼 자라주지 않아 심통이 나지요. 


 하지만 그런 식집사를 신나게 하는 식물들이 짠하고 등장하는 것이 

또한 인생의 또 다른 맛이지요.

여름 내내 잘 잘라지 않던 스킨답서스입니다. 남들은 죽일래야 죽일수가 없다는 식물인데요.

나에게 그렇게 어려울수가 없었지요. 매번 관심과 사랑을 너무 주는 통에 과습이 되어 죽어버리기 일쑤였으니까요. 그런데 겨울로 들어서며 스킨답서스가 달라졌습니다. 

식물등을 쐬어주었더니 쭉쭉 뻗어나가기 시작합니다. 봄에도 여름에도 꼼짝 안하던 아이가 

존재감을 드러내는데요. 그 모습이 무척 반갑고 예쁩니다. 

누구에게는 혹독한 겨울일텐데요. 스킨답서스는 그야말로 제 계절을 맞은 모습이니 참 신기하지요. 여태 맥도 못추던 아이가 나좀 봐달라고 자라는 모습에 매일 식집사는 즐겁습니다. 

인간이 약 1만년전에 농경을 시작하며 식습관이 달라졌을때 모두들 기뻐했습니다. 안정된 식량 공급에 사람들은 마음을 모두 놓았는데요. 식량이 부족하지 않은대신 다른 문제들이 생겼지요. 채집을 하던때보다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했어요. 한정적인 영양분밖에 먹을 수가 없었지요. 그러면서 인간의 평균키가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농경이전 수렵 채집민의 평균 신장은 남성이 약 178센티미터, 여성이 약 168센티미터 였는데요.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되며 평균신장이 남성 165, 여성 160센티미터로 줄어들게 되었답니다. 안정적인 상황에서 잘 자랄거라 생각했는데 인간도 스킨답서스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불완전하고 불안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더 힘껏 노력하고 있었지요.

"일어나 일어나야지. 학교 늦겠다."

남편은 어릴때부터 아침이면 아이를 깨웁니다. 잠도 덜 깬 아이를 일으켜 세워 옷을 입혀주고 양말을 신겨주었지요. 머리를 빗깁니다. 정신도 못차린 아이에게 뭔가를 먹이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습니다. 어릴때는 그나마 아빠의 정성에 하나라도 받아먹던 아이인데요. 중학생이 되니 달라졌습니다. 아무리 눈 앞에 음식을 내밀어도, 정성들여 밥상을 차려두어도 모른체 하고 학교에 가버리기 일쑤였지요. "좀 빨리 깨우지. 지각하겠어."라는 말을 남기면서요. 그말을 들으면 남편은 화딱지가 납니다. "내가 널 깨워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내탓이래. 다시는 내가 널 깨우나봐."

다음날이 되면 학교 갈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일어나지 않는 아이를 보며 남편이 또 아이를 깨우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일찍 출근하는 날에는 회사에서 전화로라도 깨웠지요. 왜 이리 늦게 깨웠느냐는 잔소리를 매일 들으면서도 그걸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둬. 스스로 깰 나이 됐어. 자기 학교 갈 시간에 깨서 준비하는정돈 알아서 해야지."

내가 백번 얘기해도 소용없었습니다. 살뜰하게 챙겨주던 남편네와 달리 스스로 알아서 했던 우리 집이었습니다. 남편은 내가 챙김을 못받아서 아이를 사랑할줄 모른다며 되려 나를 원망하더군요. 그럴바에는 차라리 아이에 대해 불만이라도 안 가지면 좋을텐데요. 자신이 좋아서 하지 말라는일을 하면서도 궁시렁거리는 남편을 이해하긴 쉽지 않았지요. 그렇게 남편은 지쳐가면서도 아이 깨우기를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아이가 아직 학교에 안왔어요. 시험 시간이 다 되었는데 오늘 무슨 일이 있을까요

출근했는데 아이 담임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가 아직 등교를 안했다네요. 집에 있는 동생에게 전화를 해보니 누나가 집에서 나간지 얼마 안되었다더군요. 시험 시작 몇분전에 겨우 도착한 모양입니다. 

아이는 새벽까지 시험공부를 하는척 전자책을 봤답니다. 아빠가 분명히 학교갈 시간 다 되었다고 깨우고 갔다는데요. 일어났다가 다시 잠이 들었대요. 잠을 못잤으니 졸렸겠지요.눈을 떠보니 벌써 시험 시간이 다 된 거에요.부랴부랴 학교에 갔고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었답니다. 하지만 누굴 원망하고 말것도 없었지요 .아빠는 이미 자기를 깨우고 나갔으니까요. 

그때부터 아이가 달라졌습니다.  몇번의 지각사태가 있었지만 시험에 늦을 뻔 한건 대단한 모험이었으니까요. 그 이후부터는 아빠가 깨우거나 전화하지 않아도 알아서 일어나 학교에 갑니다. 물론 겨우 지각을 면할 정도로 일어나긴 하지만요. 그게 어딥니까. 누구의 도움없이 스스로 일어나 준비를 한다는 것이요. 이제 겨우 우리의 손에서 독립해 자기 잠자는 시간과 깨어나는 시간을 관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험을 앞두고 아슬아슬하게 지각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아이는 여전히 아빠의 기상벨에 맞춰 일어나 늦게 깨웠다며 원망을 하고 있었겠지요. 황당하고 어이없는 실수를 할뻔한 이후에야 자기 시간관리를 스스로 하게 된 것입니다. 

식물이 가장 엄청 애를 쓰고 에너지를 쏟는 일이 바로 꽃을 피우는 일입니다. 그래서 꽃이 피는 식물에게는 온갖 돌봄을 다 해주어야지요. 그리고 꽃이 진다음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꽃잎을 모두 따줘야해요. 그래야 그 에너지가 새로운 꽃대 쪽으로 가거든요. 그 에너지로 다시 새롭게 힘을 내 아름다운 새꽃을 피워낼 수 있지요. 

아이도 마찬가지일거에요. 아이에게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도 부모는 참기가 힘듭니다. 그 어려움을 덜어내고 없애주려고 갖은 애를 쓰는데요. 아이에게도 겨울은 필요합니다. 모질고 험한 추위를 견뎌내며 아이는 자신만의 에너지를 얻게 되구요. 자신에 대해서 더 잘알게 될테니까요. 

지금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려는 아이앞에 얼마나 보드랍고 안락한 환경만 마련해주려고 했는지 생각해봅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아프고 힘들까봐 내가 더 조심하는데요. 그건 진정 아이의 성장을 돕는 길이 아닐겁니다. 아이가 아파하는 모습을 내가 못참아서이거나 그 아픔을 보고있는 내가 안쓰러워 그럴수 있을 거에요. 이제 나도 툭툭 손을 털어버리구요. 아픔을 겪고 모딘 겨울을 견뎌내는 아이에게 박수를 쳐줘야겠습니다. 그 추위를 이겨내서 더 멋진 사람으로 성장해 갈 테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끝까지 버텨내는게 모기뿐만은 아닙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