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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 Sep 08. 2023

내 자궁에 미레나를 넣었다

나는 내 인생을 지켜야겠다고 자꾸만 마음먹는다

    

 워킹맘이었던 시절 나의 하루는 6시 30부터 시작되었다. 출근 준비를 하고서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아기띠에 조심스럽게 매달고 친정집으로 향한다. 회사 가방 그리고 아이의 짐까지 양손을 무겁게 한 채로. 7시 30분 친정 엄마는 늘 아파트 입구까지 나와서 아이를 받아갔다. 아이가 생후 90일이었을 때부터 만 5세가 될 때까지 우리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오후 6시 퇴근을 하고 곧장 친정집으로 달려가 다시 아이를 받아왔다. 집으로 데려가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놀다가 재웠다. 사계절을 다섯 번 지내면서 달라진 건 아이가 자랐다는 사실뿐 우리는 늘 시간과 돈에 쪼달렸다.        

   

“둘째 안 낳아요?” 

 친한 사람 그냥 아는 사람 길에서 지나치고 말 모르는 사람들 그들은 틈만 나면 나보고 둘째는 안 낳냐고 물었다. 단순히 궁금해서 혹은 인사치레로 물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냥 말을 걸고 싶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사람들은 자꾸만 물었다. 그럴 때마다 “안 낳아요.”라고 답했다. 아이는 축복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애는 많을수록 좋아, 적어도 둘은 있어야 해, 한 명 더 낳자, 오예 랄랄라!” 하며 덜컥 임신을 해버릴 수는 없다. 청춘의 한 부분을 떼어내어 한 생명을 오롯이 감당하는 일. ‘한 번 해봤으니 두 번째는 더 쉬울 것이다’가 아니라, 한 번만으로 기진맥진해 버리는 그 엄청난 일을 아무런 준비 없이 해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던가.      


 생리 주기가 일정하지 않은 편이었기에 매달 임신이면 어떡하지 걱정하는 일이 잦았다. 조금이라도 열감이 느껴지거나 속이 미슥거리거나 하물며 작은 복통이 있어도 가정 먼저 ‘임신’ 걱정부터 해버렸다. 산부인과에 가서 피임방법에 대한 상담을 받고 미레나 피임 시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어떤 장치를 몸속에 넣는다는 건 심히 거북한 일이었지만 당분간 아이를 낳고 기를 계획이 단호하게 없었기에 시술을 받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산부인과 굴욕 의자에 앉아 다리를 벌리는 일은 정말로 겪기 싫은 일이었지만 그쯤은 감당할 의지가 있었다.            



 미레나가 내 속으로 스윽 입장한 순간을 기억한다. 의사가 “이제 됐습니다. 제대로 잘 들어갔어요.”라고 말하는 찰나 알싸한 생리통이 시작되었다. ‘네 자궁은 바로 여기 있어’라고 알려주듯 그 고통은 싸하게 번져 나갔다. 아이를 낳는 것도 고통이지만 낳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일도 고통이라는 사실을 이를 꽉 깨물며 깨우쳤다. 눈물이 찔끔 났다.     


 제대로 걷지 못하고 배를 부여잡은 채 엉금엉금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놀란 모습으로 괜찮냐고 물어오는 남편이 미웠다.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그가 얄미워서 팔을 뻗어 밀쳐버리고 싶었다. 아내가 다리를 벌리고 질 속에 무언가를 넣는 동안 병원 복도 의자에 앉아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그가 정말이지 미웠다. 아이를 품고 낳고 기르고 키우는 것에서도 한 발짝 멀어질 수 있는 남편은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는 순간에도 나와 다른 공간에 있을 수 있었다. 불공평했다.  


 이틀이 지나고 나서야 미레나에 대한 어떤 감각이 사라졌다. 내 몸속에 T자 모양의 작은 피임 기구가 들어있는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평생 피임약도 한 번 먹어보지 않은 내가, 감기에 걸려도 쉽게 약을 먹지 않는 내가 몸속에 피임 기구를 넣다니. 나는 나의 결정이 새삼 놀라웠다.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잃고 싶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돌고 돌아 내가 내놓은 답변은 이것이다. 가진 것이 많이 없어 불안한 삶이었고 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대출금과 얇은 비상금 통장, 매년 10만 원 내외로 오르는 월급,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일상.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는 성인이었고 또한 내 미래를 스스로 설계해야 할 의무가 있는 청춘이었다. 짐승도 주위 환경이 불안하면 새끼를 치지 않는다고 하는데 하물며 인간인 나는 얼마나 더 많은 생각으로 버무려져 있는지. 아이를 낳을까 말까의 고민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는 어떤 동물적인 감각이 작동해 준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나는 본능적으로 그리고 인위적으로 임신을 할 수 없는 어느 길 위에 서 있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내 인생을 지켜야겠다고 자꾸만 마음먹었다.       

     





 미레나 후 나는 무월경을 경험했다. 생리가 멈추면서 내 안에 있던 불안감들도 조금씩 잦아들었던 것도 같다. 고열이 나는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달려가는 상상, 경단녀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육아에 찌들어 꿈 없는 아줌마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혹은 가난한 노인으로 늙어간다는 못나고 불편한 걱정들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되었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더 낳지 않는다고 결정하더라도 결코 우리의 모습이 불행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불행해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행복을 소중히 여겼기에 다양한 시도를 한 것이다. 아무튼 일단은 해방이다. 다행인 건 나와 남편은 여전히 젊다는 사실이다. 막연한 불안감을 헤쳐나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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