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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 Sep 13. 2023

'이상한 정상가족'을 외치는 건 나였다

‘남녀부모 밑에 두 아이’라는 ‘이상한 정상가족’에 대한 무의식적인 열망


 미레나까지 하고 보니 정말 외동 엄마로만 살게 되겠구나 싶었다. 그저 적당히 돈 벌고 적당히 유희를 즐기며 나름의 안정감을 누리며 살고 싶었다. 한 번의 육아쯤은 감당할 수 있겠다 싶지만 본능적으로 두 번의 육아는 내 인생을 끝장날 수도 있겠다 싶었으므로 더 이상의 욕심은 부리지 않고 그냥 이쯤에서 가족계획을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나는 아이가 둘 이상 있는 가족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작은 울렁거림을 느꼈다. 뭐랄까 그들은 안정적인 가족처럼 느껴졌고 더 나아가 완벽함 같은 걸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가족애가 세 가족인 우리보다 탄탄할 것만 같고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그 무엇을 나는 평생 모르고 살겠구나 생각하면 왠지 좀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런 내 마음이 완벽히 구린 줄 알면서도 나는 자꾸만 그들을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남편과 마주 앉아 우리의 가족계획은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물을 때마다 그와 나 두 사람 모두 “모르겠다”는 말을 도돌이표처럼 했다. 출구 없는 미로 속에서 뱅뱅 돌고 있는 우리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쓴웃음이 지어졌다.           



 더 많은 아이를 낳아 키울 능력이 없지만 지속적으로 한 명 더?” 하는 마음이 불쑥 드는 건 어쩌면 남녀부모 밑에 두 아이라는 이상한 정상가족에 대한 무의식적인 열망이 내 안에 존재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도 남동생이 있는 4인 가정 속에서 자랐고 남편 또한 여동생이 있는 4인 가정 속에서 자랐다. 4인 가정의 울타리로 입장하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은 오랜 세월 가족에 대해 학습해 온 결과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여전히 모르겠다고 말하는 내 마음이 참 못났지만 하는 수 없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정상 가정이란 무릇 4인 가정이라고 믿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거기에 부합하지 않은 우리 세 가족은 불완전하다 여겼으며, 스스로 만들어둔 정상 범주에 나조차 포함되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자아냈다. 현실과 마음이 어쩜 이렇게 동떨어져 있던 걸까.          

 

  “사람이 자신을 믿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 나는 한 인간을 세상에 내놓는 것만큼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수습하기 어려운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출산은 결혼의 묶음 상품 같은 것이며, 이를 회의하거나 거부하는 여성은 정상을 벗어난 혹은 천륜을 저버리는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한 명의 아이가 있는 엄마이자 또 다른 아이를 고민하는 엄마의 자리에 서서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책 속에는 자신만의 세계를 지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임신을 걱정하던 나, 미레나를 한 나, 그러면서 끊임없이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하는 나, 그 모든 내가 책 속에 있어 반가웠다. 출산은 결혼의 묶음 상품이라는 말, 이를 회의하거나 거부하는 여성은 정상을 벗어나는 존재처럼 인식된다는 말에 밑줄을 그었다.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하던 내가 어디 고장이라도 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스스로를 괴롭혔는데, 실은 내가 ‘나를 믿고 판단해 가는 과정’ 중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범주를 만들든 어떤 판단을 하든 그 모든 것은 그냥 내 노력의 하나이며 내 세계를 열심히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어딘가에 있을 무언가’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나를 나는 어여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이상한 정상가족을 이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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