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미안"의 압락사스로 바라본 페이룬의 영웅, 드리즈트 두어덴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민음사(1919), p. 123 -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제일 유명한 문장이다. 사람의 마음은 비슷하다. 책에는 강렬한 문장이 있다. 그 문장은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고 기억하게 한다. 데미안에서는 서두에 언급한 문장이 그러하다. 독자들은 어렴풋한 현실이 언어로 조음될 때, 주억거리며 그 문장을 기억한다.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못한 경우가 있다. 세상의 굴레에 갇히는 경우가 그러하다. 그리고 그 굴레에 벗어나는 일은 얼마나 험난한가. 새는 태어나기 위해 부리로 알을 쪼듯이, 인간도 굴레에 벗어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그 새는 왜 '압락사스'에게 날아가는가.
'압락사스는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어떤 신성의 이름'쯤으로 여겨진단다.(p. 125) 헤르만 헤세는 대립하는 두 존재가 서로 상보적임을 누누이 설명한다. 동양적으로 말하자면 '음양', 그의 작품에서는 '인간'과 '황야'의 대립(황야의 이리), '카스탈리엔'과 '속세'(유리알 유희)와의 관계가 그러하다. 상충하지만 각 항은 대립항 덕분에 가치 있게 되고 비로소 존재한다.
D&D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기억할 법한 인물이 있다. 드리즈트 두어덴. 그야말로 알에서 태어나기 위해 투쟁한 인물이다. 그가 날아가 도착한 곳은 압락사스와 다름없다. 왜냐하면 어둠에 빛이 새겨졌기 때문이다. 드리즈트의 종족은 다크엘프로서 그 천성이 사악하다. 다크엘프의 도시, 멘조베란잔은 사악한 거미 여신, '롤스'를 섬긴다. 가문의 흥망성쇠는 힘으로 좌우되며, 목적을 위해서 암살과 저주가 장려된다. 일반적인 사회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가치는 멘조베란잔에서는 죄악이다.
드리즈트 두어덴은 다크엘프이지만 선한 마음을 지녔다. 그리고 총명하며 검술에 능했다. 두어덴 가문은 그의 재능이 암살과 살인에 기여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드리즈트는 그런 사회에 의문을 품으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줄탁동시 啐啄同時. 부화하기 위해 병아리는 안에서, 어미는 밖에서 쪼아야 한다. 운이 좋게 드리즈트에게 그런 존재가 있었다. 아버지, 자크나폐인이다.(다크엘프는 모계사회다. 남자는 권력에서 배제된다.) 그 역시 드리즈트처럼 다크엘프 사회에 깊은 염증을 느껴왔지만, 생존을 위해 가문에 일조해 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드리즈트는 자신의 선한 본성을 깨닫고 멘조베란잔으로부터의 탈출을, 더 나아가 언더다크 Under Dark에서 지상으로의 여정을 시작한다.
멘조베란잔의 다크엘프에게 드리즈트는 "데미안"의 '카인'같은 존재다. 형제를 죽인 자. 드리즈트로 말미암아 그의 가문은 롤스의 은총을 잃고 파멸한다. 드리즈트에게 '표적'이 새겨진다. 그 표적은 다크엘프 사이에서는 광인이요, 기인이었다. 정의와 조화를 택하는 길은 살인과 증오 즉, '신'(롤스)에게서 멀어지는 행위였다. 그리하여 드리즈트는 다른 신에게로 날아간다. 새가 압락사스에게로 날아가듯, 그는 '미엘리키'에 귀의하여 정의로운 레인저의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지상에서의 삶도 순탄치 않다. 드리즈트가 다크엘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악마'의 자식처럼 여겨진다.(다크엘프가 그만큼 사악하다.) 그러나 압락사스가 그러하듯 그 역시 '악마적이면서 신적'이었다. 다크엘프이지만 정의롭고 위대한 업적을 해낸다. 사악한 괴물과 위기로부터 인간을 구한다. 그의 선량한 의지가 그의 어두운 피부에 아로새겨진다. 어둠이 빛과 하나가 됐다.
'태어나기 위해 투쟁한다'. 드리즈트는 나답게 살기 위해 롤스와 투쟁했다. 지상에서는 편견과 부조리에 맞서 투쟁했다. 그리하여 압락사스에게로 날아갔다. 신답게 영원히 산다. 그의 이름은 내 기억 속에 영원히 빛나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마력이 이처럼 강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