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슐러 르 귄의 소설, '테하누'의 테나에 대하여
"'이夷'라는 말은 손상당했다는 것이니, 밖에서 손상을 당한 자는 반드시 가정으로 돌아오므로 가족을 상징하는 가인괘로 받았다."
- '주역', 정이천 주해, 심의용 옮김, 글항아리, p. 734 -
"夷者傷也, 傷於外者必反於家, 故受之以家人."
위 글처럼 쓰인 이야기가 있다. 어슐러 르 귄의 소설, '테하누'의 주인공, 테루다. 그녀는 어릴 적에 나쁜 짓을 당하여 불에 그을린다. 화상이 얼굴을 덮고 손가락은 '10'을 가리킬 수 없게 됐다. 그런 그녀를 테나가 거둔다. 테나는 힘 있는 '이름 없는 존재'를 모시던 대사제였다. 그러나 마법사 게드와의 조우를 통해 어두운 힘에서 벗어나고, 그와 함께 에레삭베의 고리를 완성한 역사적 인물이다.
어슐러 르 귄의 소설의 매력적인 점은 환상을 통해 현실을 자각하게 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명제를 인물들의 서사를 통해 드러낸다. 대마법사 게드는 위기에 처한 세계를 구하느라 가진 기예를 전부 잃고 만다. 테나 역시 역사적인 과업을 완수한 후, 드높은 명예를 누리지 않았다. 그녀가 택한 행보는 곤트 섬(게드가 어릴 적 자랐던 외딴섬)에 자리 잡아 가정을 꾸린 거였다. 다친 테루를 거둔 시점은 남편은 이미 세상을 떠나 없고, 다 큰 아들은 멀리 가버려 홀로 집을 지키던 때였다.
그런 집에 다친 이들이 찾아온 거였다. 테루가 그렇고 게드가 그러했다. 그들이 테나에게 찾아오는 것은 주역의 '가인'괘의 첫대목을 그대로 구현한 사건이다. '명이明夷'괘(빛이 손상됨) 다음으로 '가인家人'괘가 이어지는 이유를 소설, '테하누'에 찾아볼 수 있다. 즉 밖에서 상처받은 이들이 어떻게 치유되는지 보여준다. 치유는 복원이 아니다.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의지를 가지고 살게 한다.
"시간을 가져야 해요, 게드. 죽음으로부터 되돌아오는 건 긴 여행임에 틀림없어요. 용의 등에 타고 온다 하더라도 말이죠. 시간이 걸리는 일일 거예요. 시간과 고요, 침묵, 평온이 필요해요. 당신은 다쳤을 뿐이에요. 앞으로 나을 거고요."(테하누 p. 125)
"사람들은 그 흉터를 봐. 하지만 또한 너를 본단다. 그리고 너는 그 상처가 아니야. 너는 못나지 않았어. 너는 나쁘지 않아. 너는 테루이고, 예뻐. 너는 일할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달리고, 빨간 치마를 입고 예쁘게 춤을 출 수 있는 테루란다."(테하누, p. 266)
다친 이들을 위해 테나가 건넨 말들이 따뜻하다. 삶을 사는 우리들 역시 테루나 게드처럼 다치기 쉬운 일들이 적지 않게 쌓여있다. 즉 산다는 것은 우리가 투사라는 것을 의미한다. 괴테는 자신의 '서동시집'에 아래와 같이 썼다.
(...) 당신의 영광을 말하는 상처를 보여줘요. 그러면 당신을 안으로(천국) 맞이하겠어요.
너무 까다롭게 대하진 말아 주시오! 그냥 나를 들어가게 해 주오. 나는 하나의 인간이었고, 그건 내가 투사였다는 말이라오.
- 괴테, "서동시집" 중 '천국시편' P. 207 -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다. 테루나 게드가 겪었던 상실만큼 아니더라도 삶은 우리로 하여금 지치고 다치게 한다. 상처가 지속되면 큰 병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정에서 치유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진실로 중요한 가치는 상실해 가는 것 같다. 빨간 머리 앤은 초록지붕 아래에서 치유받았는데, 적지 않은 현대 가정들은 치유는커녕 서로를 다치게 하는 경향이 크다.
음과 양은 대립하지만 보완적이다. 변증적이다. 그리고 모든 것에 음과 양이 섞여있다. 말, 칼, 돈, 사람 모든 것에. 말로 사람을 죽이지만,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기'를 살리는 데, 말만큼 큰 힘을 발휘하는 것도 없다. 테나가 그러했듯이 우리는, 인간은 위로가 담긴 말로 힘든 싸움을 하는 이들을 힘나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