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눈물의 균형

'피를 마시는 새'와 '눈물을 마시는 새'

by 호원샘

인간은 자기 운명을 자기가 결정할 수 있다고 상상했으며, 자연을 짓밟았으며, 지구의 리듬을 잊어버렸고, 죽음을 부정했고, 자신의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모든 것을 과대평가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존중하지 않게 되었으며, 급기야 현실의 날카로운 가장자리에 충돌하는 재난을 당하게 되었다.

- 알랭 드 보통,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청미래, p. 214 -


이영도 작가의 '눈물을 마시는 새' 이야기는 '피를 마시는 새'로 이어진다. 인간과 나가들이 무수히 많은 피를 흘린 이후, 남북으로 첨예하게 대립한 세계는 '아라짓 제국'의 건설을 통해 잠시 평화가 자리한 듯하다. 도시국가 경향이 강한 나가들은 '도시 연합(시련)'을 구축하여 강대해진 북부와의 균형을 이룬다.

이영도, '피를 마시는 새' 지도

작중 세계에 유명한 설화가 있다. 네 마리의 새가 있다. 새들은 각자 다른 것을 마신다. 피, 눈물, 독 그리고 물. 이 중에서 누가 오래 살고 누가 가장 빨리 죽는가. 가장 오래 사는 새는 피를 마시는 새요, 가장 빨리 죽는 새는 눈물을 마시는 새다. 눈물은 흘리는 것은 정화다. 내 안의 슬픔과 고뇌가 결정이 되어 흐른다. 그 슬픔을 닦아 마시는 새는 빨리 죽는다. 그리고 왕은 눈물을 마시는 새여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륜은 자신의 누이가 왕으로 추대되는 것을 결사적으로 막고자 했다. 누이 사모 페이는 기꺼이 눈물을 마실테니까.


제국은 사모 페이를 초대 황제로 추대한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그리미 마케로우에게 선위 한다. 원시제 그리미는 제국의 기틀을 완벽하게 다잡았다. 그러나 요절한다. 모두가 '그녀가 오래 살았더라면'을 되뇌며 아쉬워한다. 그녀의 사후, 라세라 불리는 나가가 그녀의 뒤를 이어 아라짓 제국을 다스린다. 그녀가 치천제다. 피를 마시는 새가 무엇인지 처절하게 일러준 인물.


제국은 방대해졌다. 평화가 지속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비대해진 몸은 무너져 내린다. 2차 대확장 전쟁 이후 큰 공을 세운 귀족들이 묘하게 황제와 대립한다. 제후의 충성을 거부하는 황제, 기어코 충성하는 변경백을 처벌하는 황제. 이밖에 일련의 사건들이 황제의 큰 그림에 기여하는 톱니바퀴에 지나지 않는다. 톱니바퀴가 작동하면서 많은 피가 땅을 적셨다. 황제와 빌파 공작과의 전투는 끔찍하게 묘사된다.


제국이 '최적'의 상태로 유지되기 위해 피가 자양분으로 소요됐다. 로마 제국의 풍요를 두 단어로 압축하면 '정복과 노예'라는 어느 역사학자의 말은 피를 마시는 새의 모습과 겹친다. 살 찌우기 위해 피를 마신다. 산업화의 성공과 자본주의 비대화는 인간에게 최적의 삶을 선사한다. 혹자는 현대를 살아가는 삶의 양식이 중세시대 왕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단다. 그러나 쉽게 얻음으로써 모든 것이 가치 절하 됐다. 감사를 느끼지 못하며,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또는 자신의 빈약한 정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거리낌 없이 타인을 비방한다.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도 없다'. 맹자의 말은 참이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본말이 전도됐다는 느낌을 쉽사리 지울 수 없다. 오르내리는 주식 시장에 마음도 오르내린다. 무리하게 투자했으나 수익은커녕 투자금마저 잃게 되면 절망에 빠진다. 딛고 일어서지 못하고 판단력을 잃는다. 자신의 선택에 쉽사리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항산'을 예비하나, 마음은 갈피 없이 움직인다. '불안不安'하다.


재화는 자본주의에 몹시 중요하지만, 때로는 가볍게 볼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열반, 진리, 천국은 매우 얇은 문을 넘어서는 것처럼 어렵기 때문이다. 즉 자본에 매몰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서머싯 몸의 소설, '면도날'의 첫 장은 인도 경전, '키타 우파니샤드'의 말로 시작한다.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려우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누군가에게 눈물을 마시라고 종용할 수 없다. 십자가를 어떻게 강제적으로 지울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꾸는 공간이다. 부처는 '아니 불弗'자 앞에 '사람 인人변'이 붙는다. 즉 '사람이 아닌 것佛'이다. 반대로 피만을 쫒으며 살 수 없다. 피를 마시는 새는 역한 냄새를 풍긴다. 나는 다만 피와 살을 지닌 나 자신이 지혜롭게 삶을 이어가고, 아주 가끔은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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