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속 빌보의 시로 바라본 인내와 긍정
프리드리히 니체는 "즐거운 학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아테네인들이 극장에 갔던 것은 아름다운 대사를 듣기 위해서였다. 소포클레스가 가장 노력을 기울였던 것도 아름다운 대사였다.' 나는 말을 좀 바꿔서 이렇게도 쓰고 싶다. '사람들이 원작을 읽는 것은 아름다운 말을 읽기 위해서였다.'라고. "반지의 제왕"을 다시 읽노라면 이를 기꺼이 실감한다.
반지의 제왕에서 반지 운반자, 프로도는 고생 끝에 '깊은 골 Rivendell'에 도착한다. 자유민들의 수장들은 모여서 절대 반지를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하는데, 소설에는 프로도의 삼촌인 빌보가 회의에 자리한다. 그리고 빌보가 아름다운 시를 낭송하는 대목이 있는데 아래와 같다.
All that is gold does not glitter,
Not all those who wander are lost;
The old that is strong does not wither,
From the ashes a fire shall be woken,
A light from the shadows shall spring;
Renewed shall be blade that was broken:
The crownless again shall be King.
- J. R. R. 톨킨,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 중 빌보의 시 의역 p. 278 -
보로미르에게 의심받는 아라곤을 두둔하기 위해, 빌보는 그를 위해 쓴 시를 낭송했다. 자신의 혈통을 숨긴 채 악에 맞서는 아라곤에게 헌정한 시다. 빌보의 시를 음미하는 순간, 우리는 순찰자의 고귀한 면모와 그의 시련을 직감한다. 여담이지만 간달프는 이 시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라곤을 보증하는 의미로, 빌보의 시를 편지에 인용하여 프로도에게 남긴다.
마법사의 마음을 사로잡은 시는 현대인의 눈길도 사로잡는다. 그리고 위로를 건넨다. 그것은 '인내'였다. 인내는 말 그대로 '참고 忍 견디는耐 것'이다. 여린 나무의 뿌리가 깊어질 때까지, 재 속에 있는 불씨가 다시 타오를 때까지, 부러졌더라도 그 조각들이 다시 벼려질 그날까지, 그리하여 칠흑 같은 밤을 지나 태양이 솟아나듯, 왕으로서 귀환할 때까지 말이다.
애굽의 병사들이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들을 추격했을 때, 모세는 즉시 홍해를 가르지 않았다. '바다로 손을 뻗자, 동풍이 밤새도록 불어 물을 밀어낸 것이다.'(Exodus 14:21) 그 와중에 이스라엘 민족들은 아우성을 쳤다. '광야에서 죽느니 차라리 애굽을 섬기는 것이 낫겠노라.'
절망 앞에서 주저앉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무너져서는 안 된다. 즉 방랑마저 긍정할 무엇이 필요할 진데, 그것은 바로 '머무름'이다. 긍정은 '즐기기로肯 결정한 것定'인데, '긍'자가 신비롭다. 긍肯은 지止와 月자의 합이다. 즉 '몸(육달 월月)이 머무르는 것止이 긍정'이다. 또는 '달月 앞에서 머무르는 것'이 긍정이다.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에서 달을 이상 Ideal에 비유한 것이 괜히 공교롭다. 추위와 허기 따위로 그림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스트릭랜드의 강철 같은 의지. 위태로운 삶마저 긍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피어나기 위해서다.
자신이 피어날 시기를 기다릴 것. 겨울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이 겨울을 기꺼이 감내하기로 결정하는 마음. 무사히 겨울을 감내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즐기기로 결정할'만 한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