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경험이 있는 선임에게 직접 배우고 인수인계받으면 되지 않을까. 라는 게 우리의 처음 계획이었다. 이런 계획의 중요성에 대해 세계적인 복서, 마이크 타이슨은 말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쳐 맞기 전에는(Everyone has a plan til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
계획은 어디까지나 계획이었다. 우리 부대의 주된 업무는 영상 제작이 아니다. 선임도 나도 주된 보직은 따로 있다. 어쨌든 우선순위는 본래 임무와 작업에 있다. 모든 일과는 이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나마 대대장님 지시로 실전 영상 제작에 들어갈 때가 있었는데, 이때도 사수 혼자만 참여했지 부사수는 참여할 틈이 없었다. 작업과 훈련이 많은 부대였기에 한 명의 인력이라도 아쉬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매주 토요일 오전의 동아리 활동 시간에라도 충분히 인수인계를 받으면 되었을 텐데 그마저도 보장되지 않았다. 어느 날은 훈련이나 다른 작업으로 동아리 활동 자체가 취소되었다. 어느 날은 동아리 활동 시간인데 모니터가 켜지지 않았다. 어느 날은 모니터는 켜졌는데 사수는 말년이라 연달아 휴가를 나갔고(휴가는 또 어찌나 많던지) 담당 간부는 전날 야간 근무가 잠을 자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컴퓨터 비밀번호를 몰랐다. 나에겐 보안상 컴퓨터 비밀번호조차 공유되지 않은 상태였다.
나만 답답했던 건 아니다. 간혹 책을 보고 궁금한 점이 생겨 선임에게 물어보곤 했는데, 실제로 화면을 보여주며 알려줄 수 없으니 선임 역시 답답해했다. 상상으로 질문하고 상상으로 답변했다.
신기할 만큼 이런 식으로 시간이 흘렀고, 어느새 사수는 전역할 때가 되었다. 좋아하던 선임이라 기꺼이 축하를 했지만, 영상 작업병 사수로서의 그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떠났다.
이렇게 흐지부지될 거였으면 애초에 방송 동아리는 왜 만들었을까. 어쩌면 처음 계획과 달리 더 이상 부대 내에서 필요가 없어진 건 아닐까. 선임이 마지막 불꽃을 피우고 더 이상의 영상 제작은 없는 게 아닐까. 나는 다시 헬스 동아리로 돌아가면 되는 걸까.
유일하게 실질적인 작업을 하던 선임이 전역하고, 동아리가 오늘 당장 없어져도 이상할 게 하나 없는 상황.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 상황에서 뜬금없이 대대장님 임무가 떨어졌다.
"새로운 부대 홍보 영상을 만들어라!"
당시 난 단 한 번의 영상 파일조차 만들어보지 못한 상태였다. 단 2초짜리 영상조차도. 그런 나에게 주어진 건 주말 이틀의 시간과 휴가 때 사온 얇은 책 한 권과 담당 간부가 각종 부대 행사 때 찍어놓은 사진들.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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