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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화 작가 Mar 03. 2024

말 끝마다 'X발'이 붙는 해장국집 손님을 보며


 매번 지나치기만 했는데 동네 맛집이란다. 한 번도 가지 않았던 해장국집에 들어갔다. 이미 세 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침 가까운 곳에 자리가 있어 앉았다. 내 앞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로 추정되는 성인 남성 2명이 있었고, 그 너머에는 어른 몇 명과 어린아이들이 있었다. 기본 해장국을 주문했다. 잘 모를 땐 기본이다.



 메뉴판을 보며 어떤 음식들이 더 있는지 확인했다. 맛집이라 하니 앞으로 몇 번 더 이용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능동적으로 정보를 담아내는 나의 눈과 달리, 나의 귀로는 특별히 애를 쓰지 않았음에도 주위의 소리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소리는 그리 탐탁지 않았다.



 내 바로 앞자리 사람들이 자기 지인들과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뭔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만, 말 끝마다 'X발'이 붙었다. 다른 건 몰라도 간단명료하며 악센트가 붙는 이 욕지거리는 참 잘 들린다. 외국인들이 왜 욕부터 배우는지 이해된다. 모든 언어의 학습은 듣기부터 시작한다. 그다음은 말하기고.



 한 사람은 키도 크고 살집도 있었다. 오토바이 보호복을 입고 있으니 덩치가 더 커 보였다. 앉은자리 바로 옆에는 형광색의 화려한 헬멧이 놓여 있었다. 그를 마주 보고 앉은 사람은 키는 작지만 살집은 더 있었고, 남성미 있게 자란 수염이 인상 깊었다. 



 'X발'을 붙여 가며 시원시원하게 일상을 나누는 그들과,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고 있는 초등학생 무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저 아이들은 지금의 장면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있을까. 어떤 느낌을 받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 해장국과 반찬이 도착했다.



 누군가 맛집이라고 이야기할 만했다. 멀리서 찾아올 만큼의 유명 맛집은 아닐지라도, 어릴 적 학교와 군대의 급식을 먹으며 딱히 맛 타령을 할 일이 없었던 나로선 충분히 만족할 만했다. 그렇게 조금씩 나름의 미식을 즐기던 중, 앞에 앉아 있던 두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를 마친 모양이다.



 내 옆을 지나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대는 보이지 않았지만, 나의 귀는 이번에도 애쓰지 않고도 소리를 잘 담아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잘 먹었습니다."



 조금은 예상했다. 이렇게 'X발'을 붙여가며 이야기하는 사람은 계산대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일 거라고. 



 사실 계산대에서 특별히 무례하기도 쉽지 않다. 일부러 시비를 걸거나 카드나 현금을 내던지지 않는 이상. 그냥 아무 말 없이 기본적인 것만 해도 특별히 무례할 것도 예의 바를 것도 없다. 그럼에도 이런 사람들이라면 최소한 거만한 자세로 대충 계산하다거나 조심성 없이 문을 열고 나간다거나 뭔가 그런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조금의 예상을 했다. 아니 어쩌면 약간은 대비를 했는지도 모른다. 혹시 험한 말이 튀어나오거나 작은 소란이 있더라도 너무 놀라진 않도록.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깨졌다. 앞에서 들은 'X발'이란 단어의 인상을 지우고 보면, 그들의 목소리와 말투는 전혀 거칠지 않았다. 오히려 밝게 힘이 있었고, 예의 바르기까지 했다. 심지어 먼저 인사를 한 건 사장님이 아니었다. 그들이었다. 사장님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내 뒤에 계산대가 있었음에도 말이다. "감사합니다"도 "잘 먹었습니다"도 모두 그들이 먼저 던진 말이었다. 



 내가 볼 수 있는 건 그 사람의 단면이다. 처음 본 사람의 경우 그 단면마저도 일순간이다. '면'도 아니라 '점'이다. 하지만 그 잠깐의 접촉에 나의 해석을 붙여 그 존재 전체를 규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각종 시나리오를 그린다. 그리고 그런 온갖 시나리오들 속에서 나는 살아간다.



 여전히 말 끝마다 붙는 'X발'은 탐탁지 않다. 이런 언어 습관을 가진 사람은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게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시나리오가 세계의 전부가 아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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