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탔다. 마침 자리가 있어 앉았다. 각 줄에 한두 자리 정도 비어 있는 적절한 붐빔. 나쁘지 않다. 들고 온 책을 펼쳐 글을 읽었다.
내가 탄 지하철이 서울 중심에 가까워지면서, 내리는 사람보다 타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내 반대편 줄에는 임산부 배려석만 남았다. 그때 누군가 빠른 걸음으로 열차를 가로질러 오더니 임산부 배려석을 차지했다. 미니백 하나를 옆으로 매고 있는 젊은 여성이었다. 입고 있던 패딩 점퍼를 지하철 끝자리 팔걸이에 걸쳐 두더니 스마트폰을 꺼내 신나게 모바일 세계로 빠져들었다. 임산부 배려석은 가급적 비워뒀으면 하는데, 세상 일이 참 내 맘 같지는 않다.
몇 정거장이 더 지났다. 이제는 서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들고 있던 책 너머로 진한 핑크색 세로줄 하나가 흐릿하게 나타났다. 새로 탄 누군가가 내 건너편 임산부 배려석 앞에 섰다. 나를 등지고 있었기에 확실하진 않지만, 그가 어깨에 메고 있는 가방에 분명 진한 핑크색 줄 하나가 걸려 있었다. 방향상 그 핑크색 줄에 매달려 있는 게 무엇인지는 볼 수 없었다. 엉덩이를 살짝 들어 확인했다. 예상대로였다. 얼핏 보이는 핑크색의 동그란 무언가. 아무리 생각해도 임산부 등록 뱃지다. 임산부 배려석 바로 앞에 임산부 등록 뱃지를 단 가방을 메고도 서 있어야만 하는 임산부라니.
내가 일어서는 순간 그 자리를 내 의도와 다르게 근처 다른 사람이 앉아버리면 속상하다. 그런 경험들이 꽤 있다. 이 속상한 경험이 몸에 저장되어 있던 건지, 엉덩이만 살짝 더 올려 누군가 냉큼 안기엔 어중간한 위치를 잡았다. 대신 팔을 쭉 뻗어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분의 어깨를 건드렸다.
"저, 여기 앉으시겠어요?"
내 쪽으로 돌아서는 그분의 가방 뱃지를 보니 확실히 임산부였다. 그분은 고맙다며 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나보다 일찍 지하철에서 내렸는데, 그때도 다시 한번 나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며 떠났다. 굳이 지하철 몇 정거장을 더 서서 가게 되었지만 그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임산부가 떠나고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아까부터 계속해서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던 건너편 젊은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편히 앉아 모바일 세계를 즐기고 있었다.
괘씸했다. 그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70도 각도로 스마트폰을 들어 올린 채 무언가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의 시야각을 고려했을 때, 자기 바로 앞에 버젓이 진한 핑크색 뱃지를 달고 있던 임산부가 완전히 안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순간 집중에 외부의 구체적인 현상을 꼼꼼히 확인하진 못했어도, 적어도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는 사람으로서 자기 바로 앞에 임산부 뱃지가 움직이는 걸 그저 놓칠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 가급적 자리를 비워두는 게 맞지만,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잠시 앉아 있을 수는 있다. 그래도 본 의도에 맞게 진짜 필요한 사람이 탔을 때는 당연히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과 함께 배를 시작으로 가슴을 거쳐 목까지 올라오는 기운을 관찰하던 찰나, 내면의 눈과 달리 신체의 눈은 또 다른 현상을 하나 확인했다. 굳이 신경쓸 이유가 없어 몰랐었는데, 잠시 뒤척이던 앞자리의 그의 배 부분이 유독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옷 때문일 수도 있고 다른 이유에서 그럴 수도 있지만, 두터운 패딩 점퍼는 이미 팔걸이에 걸어두었고 살집이 많지 않은 얼굴을 고려한다면 분명 내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비율이 아니었다.
그에게서는 핑크색 무언가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런데 임산부임을 표시하기 위해 핑크색 뱃지가 있는 거지, 핑크색 뱃지가 없다고 해서 임산부가 아닌 것은 아니다. 물론 그는 임산부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곧바로 임산부 배려석에 앉았던 것도, 자기 앞에 임산부 뱃지를 단 사람이 버젓이 탔음에도 당당히 앉아 스마트폰을 즐기고 있었던 것도 어쩌면 그가 임산부이기 때문에 가능했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임산부일 수도 있다. 그는 임산부가 아닐 수도 있다. 이 와중에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모름의 상태에서 화가 나 있었던 건 '나'라는 사실이다. 여전히 그가 임산부인지 임산부가 아닌지 확실하게 아는 바 없지만, 내 시나리오 속에서 나는 괘씸해했고 나는 내 괘씸에 민망해했다.
심리 상담에서 중요한 건 모름의 자세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제대로 보고 만나는 것을 가로막고는 한다. 이 모름의 자세는 상담실은 물론 일상에서도 적용돼야 한다. 삶은 '내' 앎보다 언제나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