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miLuna May 22. 2020

비와 핀란드인들

날씨에 특별히 구애받지 않는 생활

핀란드에 와서 살기 전까지는 날씨가 인간의 기분과 생활에 이렇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인지 미처 몰랐다. 눈이나 비가 오면 좀 귀찮은 거 외에는, 더 이상 뚜렷한 지는 몰라도 사계절이 있고, 저녁이 되면 캄캄해지고 또 아침이 오면 환해지고... 몸도 마음도 너무 익숙해져 있는 날씨와 계절의 변화였기에 딱히 신경을 안 쓰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곳으로 이사 온 건 9월 초, 아직까지는 한국의 가을 날씨와 비슷하게 청량한 바람, 울긋불긋 서서히 물들기 시작하는 나무들, 파란 하늘 너무도 완벽한 날씨와 계절이었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곧 다가올 늦가을과 겨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봄에 왔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말을 하는 걸 들으며 순간 GOT의 "Winter is coming"을 떠올리며 아니 도대체 어떠하길래 궁금해하기도 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가을에는 종종 비가 많이 왔던 거 같다. 날씨도 점점 추워지기 시작하고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아침, 아이들을 챙겨 차에 태우고 라이드를 가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신기하게도 우산을 쓰는 사람이 참 없다. 비가 꽤 오는데도 아이들은 그저 평소와 다름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어른들 역시 이런 비쯤이야 개의치 않는 듯 겉옷에 달려있는 후드를 쓰고 있거나 그마저도 안 쓰고 잘만 다닌다. 핀란드에서 우산 장사는 망하겠다 생각하며 지나쳤는데 그 이후에도 비가 올 때마다 목격했던 장면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엄마랑 아이랑 같이 걷는데, 엄마 혼자 우산을 쓰고 아이는 그냥 비 맞고 있는 경우도 보고, 여전히 우산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남편은 가끔 나에게도 "You are not made of sugar"라는 말을 하는데, 비는 그냥 물일 뿐이다 라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아마도 산성비, 방사능 비, 무시무시한 오염된 비가 아직 없어 봐서 그런가 보다 한다. 

  

(사진은 구글에서 캡처한 것입니다. )


막내 아이 어린이집에는 벽에 위와 같은 옷 가이드가 붙어 있는데, 이런 가이드가 있다는 게 재밌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유럽의 모범생답게 계절마다 보내야 하는 옷들이 정해져 있는데, 기본적으로 비가 와도 바깥에서 입고 놀 수 있는 비 옷 (멜빵 달린 비 옷 바지, 후드 달린 비 옷 잠바)과 방수 장갑, 비 장화가 있어야 하고, 살짝 춥고 눈비가 올 수 있는 가을에 입는 한 벌 짜리 방한복 (요 때 비가 온다면 방한복 위에 비옷 세트를 입힌다.), 그리고 많이 추울 때 입는 한겨울 용 한 벌 짜리 방한복들이 그런 거다. 장갑도 비 장갑, 가을 장갑, 겨울장갑 용도별로 다 있다. Haalari 라 부르는 이 한 벌 짜리 방한복은 기본 방수 재질이라 비에서, 눈에서 뒹굴뒹굴해도 몇 시간은 거뜬하게 버틸 수 있다. 부러워서 어른 용도 나오는지 봤으나 작업복 외에는 이런 예쁜 Haalari는 초등 저학년까지만 입을 수 있는 사이즈까지만 나온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어서 그런지, 비가 꽤 많이 오는 날도 어린이집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신나게 바깥놀이를 하고 있다. 눈에 비가 들어가도 개의치 않고 그네도 쌩쌩, 옷이 젖는 것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물웅덩이를 철퍽철퍽 걸어 다니기도 하고, 방수 장갑 끼고 모래 놀이도 계속한다. 눈이 와도 마찬가지. 추운 날 비 오는 데 놀이터에서 저러고 놀고 있는 아이들 보면서 처음엔 에고 얼른 안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나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는데, 오히려 여기선 날씨에 상관없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의라 참 다름을 많이 느낀다. 


겨울엔 상황이 더 놀랍다. 해가 뜨는 건지 아예 안 뜨는 건지도 모르는 하루 종일 캄캄한 겨울, 놀이터는 수많은 가로등을 이용해 불을 밝혀 놓고, 아이들은 눈을 퍼 나르며 추운지도 모르고 논다. 초등학교에서는 눈을 치워 쌓아 놓은 눈 산에 자기들 만의 방법으로 미끄럼도 타고, 술래잡기며 숨바꼭질도 한다. 아이들 뿐 아니다. 캄캄하고 추운 겨울 회사원들은 일찍 시작하는 하루 일과에 따라 8시까지 회사에 가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움직인다. 조깅하는 사람들도 딱히 계절을 타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겨울이 있어서 그런지, 봄이 되고 여름으로 갈수록 사람들은 너무도 행복해진다. 집 여기저기서 바비큐를 하고, 햇빛이 비치는 곳에 의자를 두고 햇볕을 쬐고, MÖKKI라 부르는 여름 오두막집 (아 별장이라고 하기엔 너무 소박하고, 영어로는 summer cabin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에 가서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할 계획을 세운다. 회사에서 미팅을 들어갈 때마다 느끼지만 사람들이 날씨 이야기로 미팅을 시작하는 게 습관인데, 특히 요즘 같이 화창한 날씨가 몸을 간질일 때면 주말만 바라보고 사는 게 느껴진다. 


나의 핀란드에서의 첫겨울은 사실 어리바리 너무도 쉽게 지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APAC timezone에 맞춰서 일하느라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낮 12시면 일이 끝났던 지라 캄캄할 때 회사에 나갈 일도 없었고 비몽사몽간에 휘리릭 지나가 버릴 수가 있었던 것. 한국에서는 자외선 탓하며 태양을 피하느라 그늘과 실내만 찾았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따뜻한 햇볕을 받는 곳에 앉아서 비타민 D 흡수를 자청하게 되었다니 아직 일 년도 안 된 사이에 일어난 변화치고는 놀랍다. 일단 하지 (이 곳에서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시즌 - mid summer)까지는 날씨에 따른 우리의 기분이 계속 상승할 일만 남았다.      


작가의 이전글 이게 무슨 뜻이었더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