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똥바람 마라톤, 지독했던 극한의 런트립
'제3회 철원 똥바람 얼음 트레킹 & 알통 구보 마라톤.' 도대체 나는 왜 이 자비 없는 이름의 대회에 신청 버튼을 눌렀던 걸까.
사건의 발단은 지난번 공주 런트립을 주최했던 '러닝 전도사' 안정은 씨의 새로운 기획이었다. 이번엔 대회 참가비와 왕복 셔틀버스가 무려 무료! 오직 개인 여행 경비만 지출하면 되는, 그야말로 미친 가성비의 런트립이었다. 호기롭게 신청했지만, 워낙 조건이 좋아 신청자가 폭주하는 바람에 무자비한 '추첨제'로 진행되었다. 주변에 꼬드겨서 같이 신청한 사람도 별로 없었는데, 그마저도 나 혼자만 덜컥 당첨되어 버렸다. '아... 런트립 혼자 가는 거 진짜 기 빨리고 싫은데...'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또다시 나 홀로 셔틀버스에 몸을 싣고 겨울 왕국, 철원으로 향했다.
철원은 단순히 마라톤만 하는 게 아니라 트레킹 행사와 얼음 조각상 축제를 한데 묶어 성대하게 겨울을 즐기고 있었다. 참가 기념품으로 철원 오대쌀과 철원 사랑 상품권을 쥐여주는, 지역 경제 활성화에 진심인 착한 대회였다. '철원의 맹추위를 느끼고, 기막힌 풍경 속을 달리고, 돈을 팍팍 쓰고 가라!'는 지자체의 훌륭한 전략이었지만, 막상 돈을 쓸 곳이라곤 밥집밖에 없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었다.
이번 런트립도 지난 공주 때처럼 팀 단위 참가자가 많아 보였다. '진짜 혼자 온 사람은 나뿐인가?' 뼛속까지 스미는 서먹함과 외로움이 밀려왔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처음 마라톤 시작할 때도 늘 혼자 다녔잖아. 언제부터 사람들하고 어울려 다녔다고!' 나는 애써 씩씩하게 철원 런트립을 즐기기 시작했다.
대기 장소에 도착하니 거대한 눈꽃 얼음 조각상들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꽤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주변 천막에서는 다양한 철원 특산물을 팔고 있었는데, 만약 나에게도 철원 상품권이 주어졌다면 뭐라도 바리바리 사 들고 왔을 것이다. (무료 참가자라 상품권이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철원 똥바람 마라톤'은 생각보다 상금 규모가 꽤 짭짤한 대회였다. (7년 전 일이라 홈페이지 기록이 날아가 정확하진 않지만) 단체전 우승은 100만 원, 커플런은 70만 원, 개인전은 50만 원 상당의 철원 상품권이 걸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두둑한 상금 덕분에 나는 이날 우리나라에서 난다 긴다 하는 고수 러너들을 한자리에서 뵙는 영광을 누렸다.
보통 1,000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이 뛰는 대형 대회에서는 나 같은 취미 러너가 입상권의 고수들을 볼 기회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이 대회는 참가자가 고작 500명 남짓이었고, 그마저도 100명은 현역 군인들이었으니 실제 민간인 러너는 400명에 불과했다. 출발선에 선 고수들을 보며 나는 묘한 경외감을 느꼈다. '일반인이 대체 어떻게 저렇게 잘 뛸 수 있지? 나도 훈련하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스포츠란 모름지기 저 멀리 동경할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할 때 조금 더 오래, 포기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구경을 마치고 어느덧 대회 시간이 임박했다. 선수들이 하나둘씩 겉옷을 벗어 던지며 비장하게 출발을 준비했다. 대회장 한편에는 '바디 페인팅(이라 쓰고 낙서라 읽는다)'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얼른 달려가 등에 우리 '병아리 러닝 크루'를 상징하는 귀여운 병아리 한 마리를 큼지막하게 그려 넣었다.
은박으로 된 서바이벌 블랭킷(보온 포일) 하나만 몸에 두른 채, 짧은 쇼츠 한 장만 입고 상의를 완전히 탈의했다. 현재 기온 영하 13도. 불과 1년 전만 해도 겨울엔 춥다며 헬스장 러닝머신으로 도망치던 내가, 영하 13도의 철원 칼바람 속에서 홀딱 벗고 실외를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니. 내 인생이지만 참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출발!" 코스는 10km가 조금 안 되는 약 9km였다.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에 온몸의 피부가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폐 속으로 얼음장 같은 공기가 훅훅 찔러 들어왔다. 너무 춥다 보니 나도 모르게 '빨리 결승선에 들어가서 롱패딩을 입어야겠다'는 생존 본능이 발동했다. 게다가 지난번 시즌 마감 마라톤에서 전력 질주를 경험해 본 덕분인지, 발걸음이 생각보다 훨씬 가벼웠다. 나는 내내 심각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미친 듯이 질주했다. 아마 내 마라톤 인생을 통틀어 가장 절박하고 심각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결승선을 통과했다. 기록은 36분 58초! 10km로 환산하면 무려 42분대라는, 당시 내 실력으로는 믿기 힘든 엄청난 호기록(PB)이었다.
비결은 간단했다. 내 앞에서 달리던 여성 러너의 등짝만 보고 죽어라 쫓아갔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그녀는 이날 여성부 전체 3위를 차지한 엄청난 고수였다.) 아는 사람도 없고, 응원단도 없이 오직 '추위로부터의 생존'과 '달리기' 그 자체에만 완벽하게 몰입한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한 나의 공식 기록증에는 **'45분'**이라는 터무니없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응? 엉? 이게 뭐지?' 알고 보니 배번호 배부 과정에서의 치명적인 오류였다. 호스트가 단체로 배번호를 받아 나눠주었는데, 하필 나와 이름이 똑같은(동명이인) 다른 남성 참가자가 있었고 우리의 배번호가 뒤바뀌어 전달된 것이다.
그분의 45분 기록이 내 기록이 되었고, 나의 소중한 36분대 호기록은 그분의 것이 되어버렸다. (그 기록은 지금도 바뀌지 않고 공식 홈페이지에 영원히 박제되어 있다.)
심지어 그날은 가민 시계조차 켜지 않고 맨몸으로 달렸기에, 내 최고 기록을 증명할 데이터는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 억울해라.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완주했지만, 결승선에서 나를 반겨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너무 일찍 들어온 탓도 있었지만, 애초에 나를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나는 씁쓸함을 삼키며 버스로 돌아가 혼자 완주 셀카를 한 장 남기고, 재빨리 롱패딩으로 갈아입었다. 축제 부스로 이동해 뜨끈한 떡국 한 그릇을 비우며 꽁꽁 언 몸과 마음을 녹였다. 아는 사람이 없어도 밥은 잘 넘어갔다. 혼자 다니는 데는 이골이 났으니까.
거리가 짧아 일찍 끝난 덕에, 떡국을 다 먹을 때쯤 버스로 모이라는 공지가 떨어졌다. 오후 일정은 대한민국 최북단 '철원 평화 전망대' 관람이었다. 망원경 너머로 얼어붙은 북한 땅을 바라보며 조속한 통일을 기원했다. 당시 2019년은 남북 관계에 훈풍이 불며 '서울에서 평양까지 뛰어가는 평화 마라톤 대회'가 진지하게 논의되던 낭만적인 시기였다. (물론 이후의 삭막한 미래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미래를 안다는 건 때론 참 낭만 없는 일이다.)
두 번째 런트립이 끝났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여행은 무조건 아는 사람, 친한 사람과 가야 한다!'
마라톤도 재밌고, 여행도 재밌다. 이 두 개의 완벽한 콘텐츠가 결합했는데 런트립이 재미없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남이 짜놓은 판에 혼자 끼지 말고, 차라리 내가 판을 벌리자!'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괌(Guam) 마라톤'**을 홀로 신청해버렸다. 그리고 우리 '병아리 크루' 단톡방에 당당하게 공지를 띄웠다. "괌 마라톤 같이 가실 분?!"
다행히 지난 춘천 마라톤을 함께했던 친구 한 명이 미끼를 물었다. 우리는 비행기 티켓을 끊고 본격적인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눈치 보지 않고, 어색하지도 않은, 진짜 **'나만의 런트립'**이 마침내 시작된 것이다.
(물론, 영하 13도의 똥바람 속을 전력 질주했던 그날의 지독한 추억도 내 마음속엔 꽤 진하게 남아있다. 아직도 대회 공식 홈페이지 어딘가에 내 맨가슴 사진이 당당하게 걸려 있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