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뭣이 중헌디, 클레임 해결에 가성비 갑의 툴은?
이번 명절에도 포항에 간다. 나는 고향인 포항을 떠나 서울살이하는 직장인이다. 혼자 살다 보니 집에서는 요리하지 않거나 배달 음식만 시켜 먹은 지 오래다. 더욱이 외식 프랜차이즈에서 근무하다 보니 매 식단의 팔 할은 외식이다. 담당 지점에서 조리하는 메뉴를 먹거나 혹은 경쟁 업체의 음식을 시장조사 차 먹거나. 이런 나를 위해 내가 귀향길에 오르기 일주일 전부터 엄마의 명절은 미리 시작된다. 바지런히 고구마 줄기 김치며 오이지, 대파 김치와 같은 반찬을 시나브로 준비하는 것이다.
갈비찜이나 해물탕 같은 거한 음식보다는 찬을 일일이 손수 만들어 내는 백반이 엄마의 주특기다. 한 봉지에 3,000원 남짓한 꽈리고추를 찹쌀가루 묻혀 쪄낸다. 그 후 매운 양념으로 치대어 손으로 조물조물 무쳐낸다. 취향에 따라 통깨를 고명으로 얹거나 엄마의 방식처럼 으깬 깨를 살포시 뿌려줘도 좋다. 통깨는 소화가 잘되지 않아 살짝 빻아서 먹어야 흡수가 잘된다. 그걸 얘기해준 모 박사의 건강정보 쇼를 본 후로 우리 집 반찬에 올라가는 깨는 성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좋은 걸 먹이려는 엄마의 마음을 가득 실어 양 손바닥으로 힘껏 누르면 깨가 바스러진다. 그 과정을 거친 깨에만 우리 집 밥상에 올라올 자격이 주어진다.
아무튼 꽈리고추찜은 평범함에서 살짝만 비튼 변주를 사랑하는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반찬이다. 그걸 해주려고 엊그제 엄마는 새로 생긴 마트에 장 보러 갔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결국 빈손으로 왔다는 엄마는 격앙된 목소리로 신규 오픈한 마트에 왜 사람이 없는지 알겠다는 이야기를 줄기차게 늘어놓았다.
집에서 1분 거리로 아주 지척에 있는 큰 마트를 두고 구 여태 자전거를 끌고 새로운 마트를 갔었다고 했다. 내심 오픈 무렵에만 볼 수 있는 그 특유의 친절함과 다채로운 상품 구성 그리고 사은행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해당 마트는 어찌 된 연유에서 돌아가는 형색이 영 시원찮아 보였단다. 쌓여 있어야 할 상품 자리에는 폭격 맞은 것처럼 군데군데 빈자리를 보였고 무엇보다 붙여진 가격과 실제 가격이 다른 물건이 많았다. 엄마가 사려던 꽈리고추 역시 2,000원이 적혀 있었으나 막상 계산하려 보니 포스 화면에 3,000원으로 뜨더라는 것이다.
아, 원래 계산할 때 나오는 가격이 맞는 거예요!
그 계산원은 앞뒤 설명 없이 볼멘소리로 응답했다. 갓 오픈한 가게가 잡히지 않은 체계로 실수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가격표와 계산할 때의 상품 가격이 달랐던 것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한 엄마를 향한 응대가 문제였다. 옆줄의 손님과 계산원도 비슷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엄마를 앞서 계산을 마친 손님 역시도 씩씩대고 있는 걸 보니 같은 처지인 듯했단다. 물론 추후 액션도 없었다. 그 깟 1, 2천 원 차이가 대수랴. 제대로 가격을 보지 않는 블랙 컨슈머 취급을 받은 입장의 엄마는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해당 계산원을 대동하여 잘못 붙은 가격표를 함께 확인하고 나서야 억울한 누명 아닌 누명을 벗었지만 끝끝내 사과는 받지 못했다고 한다. 엄마도 그 마트에서는 끝끝내 아무것도 구매하지 않았다.
내 가족이 그런 부당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분기탱천케 했지만 엄마는 이미 며칠 전 일이라고 했다. 이제 와서 멱살잡이하러 가봤자 늦었다는 의미이다. 그 일을 가만히 곱씹으면서 만약 해당 계산원이 가격 오류를 전달하는 데에 있어 다른 방식을 차용했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사를 징글맞게 직무와 결부시키는 직업병이 여기서 또 도진다. 최근 회사 내에서 신생 브랜드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비교적 체계가 덜 잡히다 보니 슈퍼바이저인 나의 고객, 즉 점주들의 불만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엄마와 계산원의 스토리에서 우리 회사의 새 브랜드가 떠오른 건 이 때문이다.
우리 회사의 캐시 카우 격인 메인 브랜드는 10년 가까이 운영되고 있어 안팎으로 꽤 탄탄한 편이다. 게다가 노하우가 부족하던 회사의 신생 시절에 만들어졌기에 남의 손을 빌리는 3PL(3자 물류)로 매장에 식자재 공급을 하기 시작했다. 물류 전문 업체가 우리 회사 대신 식자재 보관, 유통 등을 아웃소싱으로 맡고 있기에 안정된 공급으로 매장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3PL을 사용하면 물류에 대한 이슈가 매우 적고 클레임 처리에 기민한 편이다.
반면에 수수료 및 비용이 그만큼 상승이 되는 단점이 있다. 이를 극복해보고자 어느 정도의 노하우와 자체 공급 능력이 생긴 회사에서는 새로 만든 브랜드에 2PL(2자 물류)을 시도하고 있다. 자회사를 통해 직접 새 브랜드의 매장에 식자재를 배송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물류팀이 점주들의 발주 상품을 일부 누락시키거나 소진이 더디다는 이유로 재고를 넉넉히 보유하지 않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생겼다. 말 그대로 ‘어느 정도’의 노하우만 가지고 있는 탓이었다.
신생 브랜드에 대한 리스크를 감안하고 오픈한 만큼 가맹비와 로열티를 받지 않는 혜택을 점주들에게 주고 있다. 그럼에도 잦은 배송문제로 물류담당자와 점주들 사이에 아주 냉랭한 기운이 돌고 있었다. 직무를 변경한 나는 갓 발령받자 마자 콜드워에 내동댕이 쳐진 것이다. 점주들은 물건이 제때 도착하지 않아 사전 예약 고객에게 여러 차례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런 불안정한 공급 속에서 가장 큰 불만은 아이러니하게도 차질을 빚은 영업 상황이 아니었다. 결품이 되거나 상품이 부족하여 발주품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할 때 물류팀의 누구 하나 사전에 설명하지 않았다고 했다. 양해를 구한 적은 더더욱 없었다. 도착하지 않은 상품에 대해 항의를 하면 그제야 ‘결품’이라는 한마디로 변명도 아닌 방어를 했다. 미흡한 대응이었다. 사실 이전 브랜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사후처리였다. 이에 마음이 상했던 점주들은 신입 관리자인 나에게 초면임에도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우리는 인정하는 행위를 때론 굴욕스러운 항복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더욱이 사과해야 하는 순간을 자존심 문제와 결부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 굴욕적으로 느낀 행위 하나가 불러 울 큰 효과를 아는 나로서는 몇 번이고 굴욕을 겪어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세상 어디에도 이보다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 없다. 오류를 인정하고 ‘죄송합니다.’ 이 마법 같은 한마디만 내뱉는다면 90% 이상의 상황은 분위기 전환이 가능하다. 상대방의 분노가 눈에 띄게 사그라지는 것을 목격할 것이다. 가래로 막을 걸 호미로 얼른 막을 수 있는 간단한 상황에서 우리는 자존심이라는 무의미한 문제와 혼동하고는 한다. 사과하는 방법을 인지하지 못하는 낮은 센스가 진정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동네 장사를 저런 식으로 하니 벌써 한 달도 채 되기 전에 소문이 났나 보네. 쯧쯧
엄마가 새로 생긴 마트 앞을 잠깐 지나치다 보니 거기는 한산하기 그지없다고 했다. 명절 직전인 지금, 집 맞은편 마트는 정신이 없어 보인다. 구관이 명관인 것일까. 확장 공사한 주차장이 부족하여 미어터지는 데도 연신 들어오는 고객맞이에 집 앞 마트 직원들은 온 힘을 다하고 있다. 그 계산원은 여전히 고집스럽게 사과를 하지 않고 있고 신생 마트 측의 가격 고지 오류 관련한 해명을 아직도 듣지 못했다. 그러나 안일했던 대처에 관한 결과는 이미 고지받은 셈이다.
엄마도 내가 건강한 식단으로 매일 챙겨 먹기를 간절히도 바랐을 터이다. 그러나 건강치 못한 내 식습관을 고치려는 것은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라는 걸 엄마는 알고 있다. 그로 인해 무의미한 잔소리 대신 고향에 갈 때마다 내게 집밥 다운 집밥을 해주는 것으로 무언의 항변을 대신하는 걸 나도 알고 있다. 본인의 간절함을 아집과 고집으로 밀어붙이거나 나의 상황은 묵살한 채 식단 챙기기만 채근하는 대신, 본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나의 식단 환경을 보완시켜 준 엄마에게 감사하다. 내가 챙겨 먹을 수 없는 상황과 컨디션을 인정해 준 것에서 모녀의 평화가 비롯된 것처럼 우리는 모두 변명보다 인정 그리고 사과하는 행위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사과에 대한 본인의 잣대에 너그러워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