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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장 Sep 14. 2021

슈퍼바이저의 딜레마

슈퍼바이저가 처음인 당신에게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에서 슈퍼바이저는 슈퍼맨으로 통용 될 때가 많다. 이번 주말만 해도 이물질이 나왔다거나 식자재 발주를 놓쳤다거나 새로 나온 포장용기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묻는 전화가 끊임없이 울렸다. 매장에서 쓰는 CCTV가 고장나거나 조명등이 나가도 일단 슈퍼바이저에게 연락 오는 일은 다반사이다. 심지어 매장방문을 갔다가 바닥공사 업체를 연락해 공사를 진행 해주거나 고장난 싱크대를 직접 고쳐주고 온 적도 있다. 바쁜 점주의 애절한 눈빛에 대신 장을 봐다 준적도 숱하다. 슈퍼바이저들은 무엇이든 답변을 해주고 해결해주어야 하는 슈퍼맨이다. 불가능은 없는 슈퍼맨이기에 No라는 대답도 최대한 완곡하게 해야 한다. 어쩔 때는 다산콜 센터 직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점주의 입장에서는 슈퍼바이저가 곧 본사이다. 본사에 문의가 필요한 내용은 식자재이든 인테리어든 세무적인 부분이든 어느 업무를 막론하고 슈퍼바이저에게 연락을 하게 되어 있다. 이런 구조로 대부분 프랜차이즈 가맹본부가 운영되고 있을 것이다. 본사의 각 담당부서가 개별 점주와 직접 연락하기 보다는 슈퍼바이저를 통해 일원화된 소통창구를 가지고 있어야 다수가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처리하는 소수인 슈퍼바이저는 깊지는 않아도 얄팍하게 모든 것을 꿰고 있어야 하기에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연차를 쓰고 개인적 시간을 즐기는 순간에도 다급한 점주의 전화는 계속 울리는 순간에 직면하곤 한다. 업무와 사적인 영역을 구분을 늘 고민 하게 되는 것이다.


잠깐의 답변 정도야 크게 내 사생활을 침해 하지 않겠지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열정 가득한 마음으로 가맹점주들을 돕고 있음은 틀림 없으나 지금 보다 더더욱 뜨거운 마음과 다듬어 지지 않은 감정을 움켜쥐고 있던 시절에 말이다. 온라인 공지 확인이 서툰 나이든 점주는 내 부모 같고, 요령 없이 힘만 쓰며 매장을 꾸려가던 젊은 점주는 나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 했기에 선을 넘은 연락과 늦은 시간의 요청에도 무조건 답변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업무에 대한 회의감 내지는 현타를 가지게 한 작은 사건이 발생 했다.


앞서 말했던 것 처럼 매장 운영에서 막히는 모든 순간에는 점주들이 앞 다투어 나를 포함한 슈퍼바이저들을 찾는다. 고정적으로 찾는 시기는 매해 1월과 7월 중순. 이때는 부가세 신고를 위한 자료를 각자가 고용한 세무사들에게 요청 받는 시기이다. 당연히 전자 세금계산서와 전자 계산서 확인에 서툰 몇몇의 점주들은 완곡하면서도 간곡한 요청을 해왔다. 엄연히 말하면 부가세 신고에 필요한 정산 자료를 확인 해달라는 지시에 가까웠다. 어렵지는 않으나 일일이 내역 조회를 해서 데이터를 정리 해야 했기에 시간이 꽤 소요되는 업무 였고 이로 인해 내 업무 시간도 당연히 늘어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남들의 요청에는 싫은 소리 없이 친절하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서 정작 내 가족이 요청 하는 도움은 제때 처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던 엄마도 부가세 신고에 필요한 자료를 정리 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 때 였을 것이다. 매번 퇴근 후 정리 해주겠다고 약속한 자료를 24일이 될때까지 주지 못하는 내 처지를 보면서 사생활과 직무를 분리하는 것에 대한 확고한 기준을 세워야 겠다고 다짐한 때가 말이다.


연차를 쓴 오늘도 전화가 참 많이 왔다. 평소에 연락하지 않던 점주들도 내가 연차를 쓰거나 쉬는 날이면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연락이 온다. 늘 무리 없이 굴러가던 매장들에도 갑작스레 작은 사고들이 발생한다. 나는 마치 쉬면 안 되는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더이상 간곡한 이모티콘과 연락을 부탁한다는 카톡에 속지 않는다. 아주 잠시나마 내가 굉장히 대단하고 요긴한 사람이 된듯한 착각에 취해 살았지만, 아닌 걸 안다. 정말 급한 업무라면 내가 연락되지 않아도 어떻게 해서든지 다른 슈퍼바이저나 팀장과 연락을 해서 기어코 해결할 사람들이 점주들이기 때문이다. 점주들은 개인의 이득을 가장 우선시 하는 사람들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날 이후 내가 세운 확고한 업무 기준은 지점의 업무 요청을 내 가족 일처럼 처리하지 말자는 것이다. 무리해서 내 가족에게 해줄 것보다 더 잘 해주려고 하지 않는 게 내 업무 신조가 되었다. 물론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최소한의 내 영역까지 탈탈 털어 희생하고 싶지 않다. 그럴 의무도 없다. 그 누구도 내가 영끌해서 희생하도록 강요하지 않았으나 그저 내가 이렇게 희생정신이 강한 사람임을 알리고 싶어 떠벌리고 다녔을 지도 모른다. 엄마와 같이 있던 평온한 주말 저녁에도 괜시리 점주 전화를 받았던 것은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는 야무진 딸내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서울살이에 밥벌이 잘하고 있노라고. 그러나 콩알만한 자위에 팔아 넘긴 내 자유가 너무나 거대했다. 그래서 나는 곰 같은 희생 대신 똑똑하게 슈퍼바이징을 하는 연습 중이다.


이번 연차 기간은 백신을 접종하는 엄마를 위해 시간을 낸 것이었다. 나는 본가에서 따로 나와 사는 자식치고는 꽤 자주 방문하는 편인데도 매장 방문 간에 샅샅이 점주와 매장을 살피는 것처럼 엄마의 불편을 살피지 못한 것 같다. 유독 눈이 시리고 미간을 찌푸리던 엄마의 모든 증상이 그저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인 줄 알았는데 별생각 없이 들른 안경원에서 돋보기를 하셔야 하는 나이라고 했다. 엄마 얼굴에 어울리는 안경테를 이것저것 씌워보며 최대한 젊어 보이는 예쁜 안경을 골랐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나의 업무 신조를 떠올려 보았다. 모 지점 점주의 조카가 군 제대하는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던 게 무슨 소용인가. 내 가족에게 쏟을 관심보다 더 많은 노력을 지점 관리에 쏟지 말자고 검사실에 들어간 엄마를 기다리며 다시 한번 상기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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