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입원한 병실은 3인실이다. 이 병동에 1인실은 하나, 다른 1인실들은 안정실로 사용 중이고, 2인실과 3인실.. 그렇게 세 타입 병실이 있다.
어느덧 입원기간이 열흘을 넘기다 보니,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하려고 하지 않아도 이래저래 말을 섞게 되는 경우가 있다. (더구나 정신병동은 침대에 커튼도 없고, 식사도 모여서 함께 한다.)
지난번 내 옆자리 할머니는 치매와 파킨슨병으로 들어오셨다. 간병인이 있었으나 기분대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아서 할머니께서도 점점 예민해지셔서 다툼이 많았다. 그래서 간병인이 없을 때 나에게 하소연을 하시고 흉도 보셨다. 내가 들어드리고 말벗을 해드리면 그렇게도 좋아하셨다. 나에게 '공주 아가씨'라는 별명도 붙여주셨다. 너무 예쁘고 착하다고... 이 나이에 공주 아가씨라니, 감개가 무량하다.
치매 할머니는 남편분을 굉장히 사랑하시는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는 없으나 남편분께서 해외에 다니며 일하시면서 돈도 많이 버셨고, 그러면서 주변에서 돈을 많이 빼앗아 가기도 했었단다. 그리고 긴 해외생활에 남편분은 바람도 많이 피우셨다고... 그래서 가끔 정신이 온전치 못하실 때는 간병인 아주머니께 내 남편 보려고 하루 종일 따라다닌다고 몰아붙이기도 하셨다. 그러면서도 남편분의 면회나 전화에는 부끄러운 새색시처럼 다소곳한 자세로 바뀌며 말소리도 더 상냥해지신다. 할머니가 안 계실 땐 간병인 아주머니가 하소연을 하셨다. 그럼 나는 또 잘 들어드리고 위로를 해드렸다. 그렇게 하면서 재미도 있고 스트레스도 종종 받았지만 시간도 좀 더 잘 지나갔다.
입원하고 보름이 지나면 상급병실로 이동을 해야 하는 규칙이 있어서 치매 할머니는 다른 병실로 가시고, 다른 할머니가 오셨다. 이번 할머니는 우울증과 심한 불안증으로 입원하셨는데 거동이 불안한 분이라 친딸이 4일째 간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팀은 너무 심하다. 할머니는 참 점잖으신데 딸은 하루 종일 짜증과 잔소리가 너무 심해 내가 스트레스받아 미칠 노릇이다. 할머니께서 색칠을 잘 못해도, 퍼즐을 잘 못해도 하나하나 짜증 섞인 잔소리다. 참다못해 이어폰 볼륨을 최대로 높이기까지 했다. (내 귀만 아팠다.)
잔소리를 피해 잠시 산책을 하고 방에 들어오니 딸이 또 화가 많이 나 있다. 간병인을 부르지 않고 딸이 함께 해주었으면 하는 할머니 말씀에, 지쳐있던 딸이 폭발한 것이었다. 외투를 걸쳐 입고 뛰쳐나가는 딸을 붙잡지도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시는 할머니. 그러면서 나에게 이런저런 말씀을 하신다. 딸이 화가 많이 났다고, 저렇게 화를 낼 때마다 너무 불안하다고. 그런데 딸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 것 같고 막막하시단다. 알고 보니 딸에게도 우울증이 있었다. 그러니 하나하나 더 부딪혔겠지...
나는 겉보기에 멀쩡한데 왜 왔냐고, 혹시 우울증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하시길래 "네, 저도 그래서 왔어요." 했더니 이런저런 증상들을 얘기하시고 "아, 똑같구나. 낫지도 않고 자꾸 재발하던데... 정말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겠는데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고... 젊은이가 몹쓸 병에 걸렸네." 하신다.
뭔가 깨달음을 얻은 듯이 머리가 띵 울렸다. 맞다, 몹쓸 병. 그게 딱 맞는 표현 같다. 나는 너무 힘들고 괴롭지만 눈에 보이는 건 하나도 없어서 대부분은 내 탓을 하는 병. 시간 많고 할 일 없으니 그런다는, 잘 낫지도 않는, 끊임없이 날 괴롭히는 병. 할머니도 할아버지의 그런 표현들에 너무 속상하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서로 의지하며 지내다가 나가자고...
그래서 난 이곳에 친구가 둘 있다. (치매 할머니의 간병인은 그만두셨다.) 이번엔 우울하신 나의 친구를 위로해 드리면서 날 위로하고 있다. 난 -적어도 지금은- 할머니 말씀처럼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지는 않으니까 위로해 드릴 수 있다. 그래도 살아보니 더 좋지는 않으셨냐고 여쭤보기도 해야겠다.
잠시 가까웠으나 먼저 집으로 돌아가신 나의 다른 할머니 친구도 우울증으로 봄, 가을마다 입원하신다는데... 난 여기가 이제 많이 답답해졌다. 잘 이겨내고 다신 오지 말아야지.
점점 집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