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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령 May 29. 2016

타인의 삶을 통해 본,
사장으로 산다는 것

해야만 하는 것 vs. 원하는 것

1. 처음에는 짠했다.


 친구 A는 대학 졸업 직후부터 지금까지 이십 몇 년을, 사장으로 살아왔다. 뭐 그렇다고 잘 나가는 사업의 유능한 후계자를 상상해서는 곤란하고. ^^  

그런 A가 정말 공감했다며 <사장으로 산다는 것>이란 책을 권해주었다. 내용은 사장으로 사는 고단함과 외로움에 관한 대기업, 중소기업 사장들의 인터뷰.


...짠했다.

'자신이 택한 길이니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거 아니야?" 따위의 삐딱한 감상으로 넘어갈 수도 있던 책의 울림이 달랐던 것은, 당시 스무살짜리였던 A가 겪었을 막막함이 고스란히 읽혀졌기 때문이다. 이미 사회의 경험을 충분히 쌓은 중년의 사장들조차도 이렇게 외롭고 힘든 리더의 역할을 A는 채 졸업도 전에 감당해왔던가. 아침마다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는 A의 말에는 어떤 위로도 나오지 않았다. 신입사원이었던 나의 '회사 가기 싫어'와, 어쩔 수 없이 사장이 된 A의 '회사 가기 싫어'의 무게가 어찌 같으랴.

대기업에는 사장의 의사결정을 다각도에서 지원하는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중소기업은 사장 스스로가 이런 역할을 해야만 한다. 스타트업도 아니고,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의사결정을 내리고, 불안과 의혹의 시선으로 자신을 지켜보는 조직원들을 이끌기에 스무살은 너무 '젊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조직에서 IMF와 금융위기를 겪으며 내가 더듬더듬 조직원이 되어가는 동안,

A는 안팎으로 출렁거리는 회사를 견뎌내면서 순식간에 진짜 사장이, 어른이 되어있었다.


2. 해야만 한다 vs. 원한다. 그 사이에 자신의 삶이라는 것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사장의 첫째가는 의무는 역시 직원에 대한 경제적, 도의적 책임일 것이다. 누구는 모래 한 알에서 우주를 본다지만, 사장은 한 명의 직원에게서 그 가족의 얼굴들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책임감으로 턱없이 무례한 거래처 앞에서 기꺼이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겠지.


그렇게, ‘사업을 위해 ~ 해야만 한다’가 우선한다는 점에서, 사장의 삶은 오히려 금욕적인 것 같다.

접대를 하는 사람에게 접대업무는 유흥이 아니다. 아무리 취해도 냉정하게 거래처의 안색을 살피고 상대를 즐겁게 해주는 엔터테이너로서의 의무가 우선이다. 사실, 유흥 앞에서 약해지는(혹은 추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자주 접하다 보면, 뭐랄까.., 되려 유흥에 냉소적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사업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항상 직원부터 거래처까지의 크고 작은 욕망을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과 건강을 -그리고 아마도 도덕성까지- 지불한다면 정작 자신의 삶은 언제 돌본단 말인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는 한 걸까.


A에게는 지난 달이나 이번 달의 시간, 작년이나 올해의 시간이 별반 다르지 않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간이 축제를 만들어 낸 이유는 시간에 마디를 맺음으로써 기억할 꺼리를 만들어 의미를 부여하고 즐겁게 살기 위해서라는데 그런 의미에서 A의 시간에는 마디가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변함없는 시간. 돈이 그 시간에 대한 위안이 되는지 궁금해졌다.

지구를 짊어진 아틀라스가 그 의무에서 빠져나오려면 지구를 파괴하거나 지구에 짓눌리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혹은 대신 짐을 질 자를 구하거나) ... A는 짓눌리는 쪽을 택한 것 같다.


3. 나에게 있어 사장으로 산다는 것


비즈니스 오너가 매혹적인 이유는 그들이 자신만의 무언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일생을 걸고 헌신할 수 있는 대상을 갖고 있는 것이 부럽다.

돈의 ‘로그인’ 보다 ‘로그아웃’이 더 많은 통장을 보면 저절로 마음이 초조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내 자본의 규모에 맞는 업을 택하거나,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업이라는 이유로 혹은 앞으로 유망하다는 이유로 헌신의 대상을 선택하고 싶지는 않다. 왠지 그건 아닌 것 같다.

비싼 술과 자동차, 다 경험해 봤지만 그뿐이라는 A의 조소는, 삶에는 돈 이상의 어떤 것이 분명 존재한다는 걸 보여준다. 실제 또 다른 지인 B는 거울 속 자기 모습에서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괴물을 발견하고 잘 나가던 사업을 망설임 없이 접기도 했다.


심리학자 마이클 뉴턴은 그의 저서 ‘영혼들 시리즈’에서 우리 각자는 스스로의 의지로 현재의 삶의 여정을 택했으며 삶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가 이 삶을 선택한 이유가 단지 더 많은 소비와 소유를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그렇다면 굶어 죽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가치를 못 찾고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옳다.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돈을 버는 일을 찾는 게 아니라 남은 생 동안 헌신할 가치를 찾는 일이다. 현재의 삶의 방식을 유지한다면 앞으로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 삶의 방식을 바꾸는 과정이 아마도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나, 내 영혼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잠들기까지의 고요한 시간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옳은 방향을 찾으면 모든 문이 저절로 열릴꺼라는, 조지프 캠벨의 말을 지침으로 모든 문을 두드려볼 수 밖에. 올해 안에 헌신할 대상을 찾아내기를 바랄 뿐. 그렇게 원하는 가치를 찾았을 때 비로소 사장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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