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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령 May 21. 2017

김차장의 돌연사

낙타는 마지막 바늘 한개때문에 쓰러진다

1.

2년 전 4월이었던 것 같다. 한 아이의 엄마이자, 열심히 일하는 조직원이었던 후배 김차장이 세상을 떠난 때가. 

현관에서 출근 인사를 하다가 쓰러졌고 그 후 바로 세상을 떴다며, 또 다른 후배 L이 울면서 소식을 전했을 때 느꼈던 비현실감과 이질감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병이 있던 것도 아니고 멀쩡히 건강했던 사람이었다. 그 동안 이일 저일 시키는 대로 묵묵히 해내다가 불과 한달 전, 디자인 센터로 발령을 받고 드디어 제 일을 찾았다, 이제 펄펄 날 일만 남았다며 행복한 덕담을 주고 받았는데 도대체 왜?? 


그날 오후 빈소에 찾아갔다. 워낙 갑작스런 죽음이라 빈소에는 영정사진조차 채 준비되지 않았었고 –사실 누가 40대 초반에 영정사진을 준비했겠는가- 친정엄마의 넋두리만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회사 일로 일본 출장을 다녀온 바로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하다가 쓰러진 거라니 저절로 업무 스트레스, 과로사 이런 말이 떠올랐다. 원인은 아마도 스트레스. 스트레스만큼 원인이 모호하면서도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단어가 또 있던가.


사실 사무직의 경우 육체적 강도보다는 정신적 강도가 심한 만큼 직무가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임을 증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주변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동료들만이 그 상관관계를 어렴풋이 짐작할 뿐. 

아무튼 동료로서 남의 일 같지가 않은지라, 과로사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실제 이후로도 그녀의 죽음이 산재로 인정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회사의 입장에서 ‘산재의 인정’이라는 것이 조심스럽고 민감한 부분이고, 산재를 증명하기 어려운 만큼 쉽지 않겠다 짐작할 뿐.)


사인이 스트레스라는 것에는 같은 조직문화에서 근무하는 동료들이니만큼 전반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였는데 의외였던 것은, 회사 다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그 정도의 스트레스는 받는 거 아니냐, 그 정도의 스트레스를 관리 못 했느냐는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말이었다. 그것도 같은 노동자급, 같이 근무했었던 사람의 입에서. 

이 말은, 모든 사람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 동일하며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이나 여기에 대한 반응이 똑같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아무리 우리가 한 회사의 노동자로서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개인의 육체와 정신의 반응이 서로 다르다는 것, 그리고 한 개인 내에서도 어제와 오늘, 작년과 내년이 다르다는 것쯤은 헤아릴 지성과 연민 조차도 없단 말인가. 


낙타는 마지막으로 올려진 바늘 때문에 쓰러진다. 바늘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100%에 추가적으로 올려진 final blow이기 때문에 쓰러진 것이다. 

추측컨대 김차장 본인도 자신의 상태를 몰랐을 거다. 그 전에도 조금 이상하다는 조짐은 있었는데, 무시했다고 했다. 똑 같은 자극이 주어져도 수용 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구는 가볍게 무시하고, 누구는 지나치리만큼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것은 그의 기질과 과거의 경험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단지 그녀의 잘못이라면 자신의 몸에 대한 판단을 잘 못한 것이다. 몸은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신이 몸을 끌고 가도 괜찮은 시기는 아주 짧은 순간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쉽게 몸의 신호를 간과하고, 정신력이 약할 뿐이라며 무시한다. 결국 쓰러지고 나서야 사실은 몸이 자신의 한계를 규정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받아들인다. 그녀는 그 신호를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정도를 못 견디냐는 순진한 의문은 동료를 넘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거세된 발언이다. 같은 노동자급 중에서도 회사의 대변인 혹은 회사가 자신의 것인 양, ‘높은 분’의 마인드로 회사의 이익을 편드는 사람들이 있다. (일명 마름). 같은 소작인이며 월급 노동자라는 처지도 다르지 않건만 지주보다 더 포악을 떠는 마름들이 있다.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왕 노릇을 한다지.

얼마 전에 있었던 혼술남녀 PD의 사망관련 뉴스에서도 그런 마름들의 모습을 본다. 마름의 자리 또한 영구불변하지 않을 텐데 왜 그리 서로 포악을 떨어야 하는지. 


2. 

영정이 도착한 후, 그때까지 기다리던 나와 후배 L이 먼저 첫 인사를 했다.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니 디자인 센터의 수십 명 동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조용히 울고 있었는데, 어느 새 전원이 검은색으로 옷을 갖춰 입었던 모습들이 그 와중에도 기억에 남는다. 그것은 동료를 갑작스럽게 보내는 디자이너들만이 할 수 있는 의식(ritual)이었다. 


돌아오는 길, 나와 후배 L은 삼겹살 집에 들렀다. 김차장까지 우리 셋은 일과 후 종종 삼겹살 집에 들러 회사와 상사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그 일을 추억하며 남은 자들은 먼저 간 자를 위해 건배를 하고 그녀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게 우리가 그녀를 보내는 의식(ritual)이었다.

 스트레스 없는 곳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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