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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령 May 05. 2019

제대로 된 인식의 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책은 왜 우리가 슬픔에 대해 진지하게, 지속적으로 공부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가끔 음성이 지원되는 책읽기가 있다. 이 책에서는 중저음, 감정을 한껏 절제하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는 스스로 감정과잉이 되지 않도록 단어를 고르며, 독자에게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말을 건넨다. 문학평론가의 문장도 이렇게 정중하고 아름다울 수 있구나


슬픔이 공부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슬픔을 공부씩이나? 그저 같이 슬퍼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눈물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조작된 감성이 아닌가?

저자는 인간은 똑 같은 고통을 겪어보기 전에는 상대의 고통과 슬픔을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원래 인간이라는 동물이 그렇단다. 저자는 이를 “인간의 근원적 무능력”이라 표현하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배울만한 가장 소중한 것”이자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으로 타인의 슬픔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은 기본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몇 마디 채 듣기도 전에 벌써 눈물을 글썽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까지 했다. 나의 피는 지극히 차가우리란 의심도 했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나의 이런 태도는 타인의 슬픔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을 예로 들면서 “위로는 단지 뜨거운 인간애와 따뜻한 제스처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나를 위로할 수는 없다. 더 과감히 말하면, 위로받는다는 것은 이해받는다는 것이고, 이해란 곧 정확한 인식과 다른 것이 아니므로, 위로란 곧 인식이며 인식이 곧 위로다. 정확히 인식한 책만 정확히 위로할 수 있다.” 라고 말한다. 덧붙여 <슬픔의 위안>이라는 책을 소개하는데 간략한 에피소드만 봐도 애통해하는 자에 대한 겪지 못한 자의 위로라는 것이 얼마나 얄팍한지, 제대로 된 인식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인식은 훈련을 통해 가능하다. ….조금 안심하고 있다. 


타인의 슬픔과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려면 공부가 필요하다. (책에서는 소설의 한 장면을 놓고, 주인공은 이 대목에서 왜 슬퍼했을까? 를 놓고 여럿이서 다양하게 얘기를 나누는 일화를 보여주는데 이 방법도 괜찮겠더라)

감수성은 최근 미투 운동으로 인해 관련 재판부의 ‘성인지 감수성’이 비판을 받으면서 새롭게 주목받는 단어이다. (나는 중학교때인가 이 단어를 배우면서 감수성이란 뜻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 당시는 민감성으로 외운듯). 저자에 따르면 “감수성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들을 이해하고 행여 그것에 대한 잘못된 지식/믿음(즉 ‘무지’와 ‘미신’)이 ‘차별의 근거로 작동할 수 있는 상황을 예방하거나 비판할 줄 아는 민감함” 이다. 

‘아는 게 병’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의 감수성에 대한 수용성을 설명해주는 말이다.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해왔던 행동들을 곱씹어보고 점검해야 한다는 점에서 감수성은 차라리 모르는 게 더 편안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일단 계몽된, 깨달은, 진보한 인간은 되돌아갈 수 없는 법이다. 개인적으로는 촛불 이전, 이후 우리의 시민의식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있는데 –미투 같은- 나는 이것이 시민의식에 대한 인식, 그리고 감수성과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궁금해진다. 왜 우리는 스스로 불편하고 때로 귀찮기조차 한 타인의 슬픔을 인식하려는 노력,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가? 

결국, 인간의 도리란 무엇인가, 삶의 태도란 어때야 하는가의 문제로 돌아온다. 여기에 정답은 없다.  그게 인간다운 거니까, 라는 막연한 대답이 무심히 튀어나오지만 그게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고 더구나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왜 옳은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나만의 답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막연하게 그 누구도 타인에게 부당한 고통을 줄 권리는 없다 정도랄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자신의 분야에서, 감수성을 발휘하며 타인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 그럼으로써 사회를 천천히 바꾸고 있는 사람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밖에. 


p.s. “인간의 내면과 진실에 다가서는 그 신중하고 섬세한 태도” 

원래 저자가 친구인 영화감독의 작업 스타일을 표현한 말인데 이 말이 정말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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