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트위스트> 성호의 편지
언니와 라나에게
'내 머릿속의 지우개' 란 영화 아시죠? 누가 내 머릿속을 깨끗하게 지워놓은 걸까요.
영감을 얻어야 글을 쓰는 저는 이번 주 내내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숨 돌릴 틈 없이 지냈어요. 영감이란 녀석은 마음의 여유에서 온다는 걸 깨닫고 있는 지금입니다.
저는 저 스스로에게 <올리버 트위스트>를 하루에 100쪽씩 계획해서 읽는 현대인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시간이란 것이 금과 같아서 유튜브 보다가 하루를 다 보내버리면 매일 해야 할 일들이 미칠듯한 속도로 추격해 와서 몸과 마음을 결박시키고 처절한 현실이 되어 돌아오죠. 그러니 라나야 < 올리버 트위스트 >를 마저 읽을 거라면 시간과 계획을 확보해야 해. 그리곤 일이 쫓아오기 전에 네가 먼저 달아나서 여유의 언덕 위에서 그것들을 지켜보며 선명한 미소를 띠며 따돌리길 바라.
방금 쓴 단락은 <올리버 트위스트> 읽으며 느낀 문장의 특성을 흉내 내 보았어요. 저에게 지면과 시간이 조금 더 주어진다면 제가 처한 현실을 꾸미고 또 꾸미고, 비꼬고 또 비꼬아서 < 졸리버 트위스트 > 같은 패러디를 써 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책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서두가 길었습니다.
나중에 누군가 “ 나 <올리버 트위스트> 읽으려고 ” 라고 한다면 그 사람에게 꼭 하고 싶은 제안이 있어요. “ 9쪽에서 13쪽에 달하는, 작가의 말 즉 서문을 읽지 않고 넘기는 게 어떻겠니?” 왜라고 묻는다면,
“이유가 알고 싶다면 한 번 읽어봐” 라고 짖궂게 말해주고 싶군요.
두 분은 이유를 알고 계실테지요. 서문을 읽으셨을테니..ㅎㅎ
이 책은 찰스디킨스가 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묶은 것이라고 해요. 기자였던 찰스 디킨스가 이전 작품에 성공을 거두면서 작가의 삶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해요. 이 책을 쓸 당시 작가가 겨우 스물다섯 살이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어요. 현대의 내가 생각하는 스물 다섯은 애기처럼 느껴지는데요. 우리는 어쩌다가 이렇게 늦돼버렸을까요.
올리버 트위스트가 태어난 곳은 구빈원이었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도 구빈원이었어요. 이 가련한 올리버 트위스트는 엄마가 구빈원에서 자기를 낳다가 죽어버리고 세상을 맞이해요. 배고픔에 시달려 왜소한데다 구빈원 운영자들에게 학대받기 일쑤였어요. 그러다 굴뚝 청소부, 장의사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도제로 보내지게 되는데 그때도 배고프고 학대받기는 마찬가지였지요. 올리버 트위스트가 결국 일하던 곳에서 도망치게 되죠. 그러다 만난 아이에게 이끌사람들은 더할 나위없이 행복하고 부유한 삶을 살았다는 것도요.
책을 다 읽고 나니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읽은 <몽실언니>가 생각났어요. 몽실언니는 일제에서 해방된 후에 고향으로 돌아온 귀국 동포의 자녀였어요. 조국에 다시 돌아와도 땅뙈기 하나 없는 거지 신세일 수밖에 없었죠. 그런 가난이 몽실언니의 가정을 망가뜨려 놓았어요. 더군다나 몽실언니는 새아버지 때문에 다리가 부러지지만, 병원에 한 번 가보지 못하고 장애를 갖게 돼요. 6.25가 터지며 아버지가 전쟁터로 끌려가고, 어린 동생을 혼자 책임지게 됩니다. 몽실언니 나이 겨우 10살에요. 그렇게 구걸하며 살다가 전쟁으로 고향과 아버지를 잃어요. 그 어린 것이 말도못할 고생을 하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요...몽실언니는 시대에 휘말려 고통을 겪습니다.
그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은 죽지 않고 살아나가는 것뿐이었어요. 가난과 장애, 삶의 시련은 다 시대가 준 것이었어요.
올리버 트위스트 역시 그렇습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을 거치며 경제적으로 성장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넘쳐났어요. 노동자들은 24시간 공장에서 일을 했고, 도시 빈민들은 굶주렸으며 범죄가 넘쳐났죠. 올리버 트위스트가 나고 자란 구빈원이 그렇게 가혹했던 건 신구빈법이 만들어지면서에요. 찰스 디킨스는 이 점을 비판하고 싶었죠.
<몽실언니>는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위해 역사적 사실들을 배경으로 삼았다면, <올리버 트위스트>는 작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신구빈법과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가련하고 사연있는 소년을 넣은 느낌이었어요.
13살 아이들과 지난 겨울 4달에 걸쳐 세계사를 공부했어요. 세계사를 공부하고 나니 문학 작품이 달리 보이는게 아니겠어요? 올리버 트위스트의 시대적 배경을 살피게 되더랍니다.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고 난 후, 우리가 함께 보고 있는 <곰브리치 세계사> 를 열어보았죠. 그래도 시원하지 않아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도 구입해 읽어봅니다.
문학과 예술을 더 재밌게 읽기 위해선 역사적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생각해봐요.
오늘은 그간의 저와 다른 느낌이지 않나요?
제 깊은 곳엔 지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가 자리하고 있답니다.ㅎㅎ
새로운 걸 배우는 것도 참 좋아하고요.
역사의 재미를 서른여섯이 되어서 처음 느껴본다는 부끄런 고백도 더해봅니다.
오늘은 마감이 바투하네요.
지금은 마지막 수업의 쉬는 시간이예요.
다들 명절을 무사히 보내고 돌아오세요. 대한민국 며느리, 엄마 파이팅!!
졸라게 트위스트 추고 싶은 성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