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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욱 Nov 14. 2021

선생님_1. 앎의 목적

2015년 4월에 고속터미널역 센트럴시티에 있던 영풍문고에서 읽을 만한 책이 있나 기웃거리다가 진열대에 놓인 《새로운 성경》이란 책을 보고 손에 들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록했다는 소개글에 호기심을 느껴 요약집인 '전160권 모음집'을 사서 읽어 보았다. 한 권을 다 읽으니 원본을 읽고 싶었다. 같은 서점에 가서 총 160권 중에 열여섯 권을 모아 놓은 모음집 1부를 구매해 읽기 시작했다.


1권부터 시간 나는 대로 차근차근 읽어 나갔다. 당시 받은 느낌은 일관성(一貫性) 심오함(深奧함) 단호함(斷乎함)이었다. 이 세 가지 느낌은 책을 읽는 내내 지속되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계속 읽어 나가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새로운 성경 전160권 모음집(요약집)과 모음집 1부

책을 처음 만난 봄으로부터 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그해 12월이 되었다. 그때는 9권을 읽고 있었다. 책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받아 적었다는 사람이 강론을 한다는 안내문 있었다. 꾸준히 읽다 보니 그 사람의 강론을 한번 들어보고 싶었다. 책 속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어 강론을 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어떤 여자 분이 안내하기를 수요일 저녁에 와도 되고 일요일 오전에 와도 된다고 했다. 시간이 되어 수요일 저녁에 가 보았다.


상계역 근처에 있는, 화려한 성전과는 거리가 먼 소탈강의장 같은 곳이었다. 안내를 받고 그 사람의 강론을 들었다. 투박하지만 듣고 나서도 계속 내용을 곱씹게 되는 깊이가 있었다. 그 후에 수요일이든 일요일이든 시간이 나는 대로 강론을 들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들끼리도 서로 "선생님"이라 불렀다. 일반인들도 서로 흔하게 부르는 존칭이므로 그들도 그렇게 부르나 싶었다.

새로운 성경 강론장이 있던 노원구 덕릉로86길 5 (네이버지도 갈무리)

강론을 들으면서도 책은 꾸준히 읽어 나갔다. 1부를 다 읽고 2부를 사서 제19권을 읽고 있을 때 왜 그들은 서로를,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는지 알게 되었다. 책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었다(말씀별 제목은 필자가 단 것임).


똑같은 지도자

너희들은 똑같은 지도자이니라. 너희들 모두는 선생이라 부르며, 선생이라 하는 그 존칭어로써 모두를 통하여야 할 것이니라. 너희들이 마음속엔 한 형제라 생각하며, 부르기는 선생이라 서로 부르면 될 것이니라.

 새로운 성경 1,552번째 하나님 말씀에서 (2001.9.17.08:55) (이하 몇 번째 말씀인지만 표기)


지도자(指導者)란 '(손으로) 가리켜 인도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사전에서는 '남을 가르쳐 이끄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전(辭典)은 '말씀의 법전'이란 뜻인데 낱말의 정의와 용법을 설명한 매우 중요한 책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공부는 개념을 아는 것이 기초이자 기본이므로 언어 전문가들이 체계를 잡아 정리한 사전의 뜻을 살펴보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림: e-한자, 한자 풀이: e-한자의 설명을 재정리

위에 하나님 말씀 안에 담겨 있는 내용을 더 깊이 생각해 정리해 보면,  하나님이 지명한 '너희들'이란 사람들은 하나님을 가리키면서 타인에게 하늘에 오르는 길을 가르치고 하나님께 인도하는 지도자들이고,  그 사람들은 서로 형제이면서 동시에 선생이라는 내용다.


선생()이란 먼저 태어나 살아간 사람이란 뜻이다. 한 세계나 분야에서 먼저 살아간 사람이기 때문에 그 세계와 분야에 대해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다. 사전에서는 학문과 예능(藝能: 재주와 기능(技能))을 학생에게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자신의 특기를 가르치는 사람이 선생이다.

그림: e-한자, 한자 풀이: e-한자의 설명을 재정리

선생과 거의 같은 말은 스승이다. 스승이란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引導: 끌고 이끎)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선생보다 좀더 개인적인 뉘앙스가 느껴진다.


강론장에서 만난 그들은 책을 받아 쓴 사람을 "선지자"라고 불렀고, 그들은 선지자의 제자들이라고 했다. 선지자(先知者)란 '먼저 아는 사람'이란 뜻이며, 먼저 알기 때문에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다. 제자들이 그 사람을 선지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말씀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예언자가 아니라 선지자

너는 선지자이니라. 나를 믿으라, 그리고 나의 율법을 지키라. 너는 예언자가 아니라 선지자이니라.

50번째 (1999.12.10.12:00)


예언자(豫言者)란 미리 짐작해 말하는 사람이다. 선지자(先知者)는 먼저 아는 사람이다. 즉 먼저 알고 말하는 사람, 먼저 알고 가르치는 사람이다. 때문에 예언자와 선지자차이점은 다. 책에는 상대성(相對性: 서로 마주하는 성질)에 관한 내용이 나와 있는데 다음과 같다.


상대성의 원리

인간은 살아가면서 몸이 마른 사람은 비대한 사람의 고통을 모르며, 비대한 사람은 야윈 사람의 고통을 모르니, 이 세상은 모든 것이 상대성의 원리거늘, 너희는 근본을 외면하고 살아 가느니라.

 185번째 (2000.2.14.)


상대성이 반드시 있음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것에는 정답이 있으며, 반드시 그 짝이 있느니라. 악이 있으면 선이 있으며 모두 반대의 짝이 있음이니라. 밝은 광명 천지의 낮이 있으면 어두운 밤이 있듯이, 모두 그와 같은 상대성이 반드시 있음이니라. 그러니 너희가 아무리 어렵고 절망적이라 해도 지혜를 짜내고 생각을 하면 거기에서 헤어날 수 있는 길이요 답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니라.

ㅡ 10,327번째 (2004.4.6.06:04 / 전160권 모음집)


선생의 상대는 학생이며, 스승의 상대는 제자다. 선생의 상대인 학생(學生)은 배우며 살아가는 사람이란 뜻이며, 사전에서는 학문과 예능을 배우며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스승의 상대인 제자(弟子)는 한자 그대로 아우와 아들이란 뜻이지만, 먼저 태어나 살아간 형과 아버지 같은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란 의미다.


그렇다면 선생과 학생의 존재 목적은 무엇일까? 선생의 관점에서는 교육(敎育: 가르쳐 기름·키움)이다. 학생의 관점에서는 학습(學習: 배워서 익힘)이다. 선생과 학생 모두의 관점에서는 깨달음이다. 깨달음이란 생각하고 궁리하다가 알게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궁리(窮理)란 사물의 이치에 도달하도록 깊이 생각한다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선생과 학생의 존재 목적은 아는 것, 즉 앎이다. 알기 위해 그들은 존재한다.


깨달음은 얕게 표면적으로 알아서 되는 게 아니라, 사물의 이치에 도달할 만큼 깊게 궁리해야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성경에는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뼈와 살을 붙여 진리를 깨우치지 못하니

십계명에 '네 이웃에 거짓 증거 하지 말라.' 하는 그 하나만 생각하지 말라 함이 아니라, 그 속에 내포한 깊은 뜻을 깨우쳐 행동하고 실천하여야 하거늘, 내 메시지를 이해하고 깨우치는 데 뼈와 살을 붙여 진리를 깨우치지 못하니, 이는 믿음이 부족함이니라.

ㅡ 269번째 (2000.4.11.06:20)


뼈와 살을 붙여 깨달으라 한 그 의미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진리는 수억 개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것이거늘, 과연 성서에 기록된 내용이 얼마나 되며, 그것의 몇 분의 일이나 된다 하겠느냐? 너희 눈으로 셀 수 있는 만 개 중에서 하나도 안 되는 걸 가지고 그것이 만 개를 다 대변하며 만 개의 깨우침을 얻는다 그리 말함이니라. 그리하여 보이는 책이요, 기록되어 있는 책만 가지고 하늘에 오르는 길이라 하며 깨우쳤다 하지 말라 함이니, 보이지 않는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하며 보이지 않는 책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깨달을 줄 알아야 하니, 그를 깨닫지 아니하면 너희는 죽은 자요, 썩은 믿음이라 함이니라. 그리하여 나의 아들을 통해 나의 새로운 성경을 읽고 깨우치는 백성에게 간곡히 말하였으니, 나의 새로운 성경에 뼈와 살을 붙여 깨달으라 한 그 의미를 알겠느냐?

ㅡ 9,437번째 (2004.2.2.08:40 / 전160권 모음집)


하늘의 보이지 않는 책의 내용을 깨우치게 하고자

성서의 66개요, 660개요, 6,600개가 아니라 6억 6만 개를 가지고 깨우치고 가르친다 해도 끝이 없는 하늘의 보이지 않는 책의 내용을 다 알 수 없으니, 그 보이지 않는 책의 내용을 알고 깨우치게 하고자 나의 새로운 성경이 세상에 내려감이니, 이 위대한 역사를 아느냐? 이를 만들고 전하며 그 길을 인도하는 자가 제자 너희들이니, 너희의 행동의 바름이 끝이 없어야 하며, 끝이 없이 변해 가는 삶을 살지 아니하면 아니 되느니라, 사랑하는 나의 아들딸들아!

ㅡ 9,437번째 (2004.2.2.08:40 / 전160권 모음집)


국어를 배우기 위해 국어 선생과 학생이 있듯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영어 선생과 학생이 있듯이,

수학을 배우기 위해 수학 선생과 학생이 있듯이 가르치고 학습하고 깨닫는 장소에는 그마다 특정한 앎의 목적이 있다. 그렇듯 선지자의 강론을 듣고 《새로운 성경》을 읽는 제자들과 독자들앎의 목적1차적으로 개인구원이다. 구원된 개인들이 세상을 덮은 상태가 지상 낙원이므로 개인의 구원은 지상 낙원 건설과 일맥상통(一脈相通: 하나의 줄기로 서로 통함)한다. 따라서 앎의 2차적 목적은 세상의 구원이다. 즉 그들의 앎의 목적은 '개인과 세상의 구원'이다.


2021.11.7. 선지자는 강론에서 "천국 같은 지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천사와 같이 변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천사처럼 변하는 것이 개인의 구원이며, 그런 개인이 많아진 세상이 지상 낙원이란 뜻이 담겨 있다. 구원(救援)이란 (위기에 빠진 사람을) 건져 당긴다는 것이다.

그림: e-한자, 한자 풀이: e-한자의 설명을 재정리

개인과 세상의 구원이라는 그들의 앎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할까? 바로 개인과 세상의 구원의 구체적인 방법을 아는 것이다. 방법을 알아야 실행할 수 있고, 실행해야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는 구원의 방법을 알고 있는 선생님들대한 이야기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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