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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Sep 01. 2019

틀어진 관계

시집

관계의 틀어짐.


나무가 시간의 무개를 이기지 못하고 툭! 갈라져 버리듯이
관계가 틀어지면  말랑말랑한 찰흙처럼 동글동글 끊어지는 사람이 있고
나무처럼 툭 갈라져서 다시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나무처럼 갈라진 관계도 때로 마음만 먹으면,
망각의 시간을 거치면서 예전처럼 말랑말랑해질 수 있을 테지만,
이제는 그냥 내버려 두고 싶다.
화해의 손을 잡고 싶지 않다.

틀어진 나무의  틈은 고운 무늬로 나를 장식하고,
 시간의 무게를 이겨내면
꽃도 피어난다.
어느 날의 무늬는 그림처럼 나를 바라본다.
내 서툰 마음이 담겨있는 그림은
아름답게 멀어져 간 소리를 낸다.
한 폭의 그림을 전시하고  슬픔과 눈물과 탄식의 소리를 듣는다.
너에게서 멀어져 간 아름다운 거리를 그려보는 관계의 그림들을
보면서 내 뾰족한 모서리에 찔리고
외로운 색채를 느끼고
시간 속에 박제된 집착의 덩어리를 감상할 것이다.

인생은 이렇게 멀어져 간  틀어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그림들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들이다.
그들을 위해 거리에 흘린 눈물과 아픔만으로
가치 있는 시간들이다.
생명이 사라지듯이 되돌아올 수 없는 것들이기에
아름답다. 원망도 분노도..... 그렇게 아름답게 멀어져 간다.

아침에 글을 쓰고 나서  시를 썼다고 한번 우겨본다.


어젯밤 기형도 시를 읽다가 덮은 까닭 이리라.
김현 해설가는 말한다. 좋은 시인은 시인의 개인적  내적 상처를 반성 분석하여 그것에 보편적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인가!
기형도 시의 시는 울적한 맘이 들 때 따듯한 위로가 된다.
기형도는 추상이나 힘겨운 감상의 망토를 걸치지 않은 시인이다.
기형도는 상처를 숨기지도 과장하지도 않고
김수영처럼 언제나 직면하면서 시를 쓴다.
그의 내적 개인적 상처는 언제나 서정적이다.
증오의 감정이 없는 추억처럼 읽힌다.
 그의 시집은 언제 어느 때 펼쳐도 아름다운 그림 같다.

아침에  소리의 뼈라는 시를 소리 내어 읽어본다.


소리의 뼈
기형도
김 교수님이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
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다
모두 그 말을 웃어넘겼다, 몇몇 학자들은
잠시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 김 교수의 유머에 감사했다
학장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일 학기 강의를 개설했다
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장난 삼아 신청했다
한 학기 내내 그는
모든 수업 시간마다 침묵하는
무서운 고집을 보여주었다
참지 못한 학생들이, 소리의 뼈란 무엇일까
각자 일가견을 피력했다
이군은 그것이 침묵일 거라고 말했다
박 군은 그것을 숨은 의미라 보았다
또 누군가는 그것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모든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에 접근하기 위하여 채택된
방법론적 비유라는 것이었다
그의 견해는 너무 난해하여 곧 묵살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
----기형도, [소리의 뼈]({입 속의 검은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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