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까미 하루끼의 소설과 함께 나이를 먹었다. 그의 신간들을 기다리면서 한 권 한 권 읽다 보면 어느새 30대가 가고 40대가 되었다.
하지만 요즘은 하루끼 책을 찾지 않는다. 나의 독서 취향이 변했기 때문이다.
하루끼 소설을 찾지 않는 이유는 딱하나!
하루끼 소설에는 안쓰럽고 지질한 짠내 나는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끼의 가벼운 포르노 그라피같은 유괘함이 좋을때도 있지만 하루끼책은 한번 이상 읽기가 힘들다. 금방 소비되는 감정의 유희처럼 숙성된 맛이 없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괸심을 갖고 나의 마음에 관심을 갖게 된그 이후부터.
이상적 인간의 유형보다는 지질한 인간에게서 느끼는 연민과 인간성에게서
더 이상 추락하지 않아도 이상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기 때문이다.
지금 이대로의 나도 사유만 한다면 충분히 영웅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고
영웅이라는 건 어쩌다 만들어지는 것이지 인간의 의지로 출발하는 것이 아닌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분명한 대비 안에서 순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선안에서 악의 추악한면을 찾고 악안에서도 인간의 순수성을 찾는 눈이 열렸기 때문이리라. 그래서인가 보다. 이제는
직면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비겁하고 추하고 지질한 면을 읽어낼 수 있는 불편한 소설에 손이 더 간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평범한 인간의 추함이 가장 잘 드러나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한일관계가 안 좋은 지금 참 안쓰러운 소설가 한 명의 소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 유미주의 대표적인 작가이며 30대에 이미 노벨문학상에 후보에 오를 만큼 탁월한 문학적 세계를 보여준 작가이다. 1970년 45세의 나이에 어이없게도 그는 자위대의 궐기를 주장하며 할복자살을 했다.
언젠가 소설가 신경숙 씨가 문단을 통째로 표절해서 사용한 소설로도 유명한 소설. 아름답고 차갑고 신비로운 글 속에 빠진다.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
이 소설을 쓰던 30대의 그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시절을 보낸 듯하다.
작가의 사변적 이야기를 쓰듯이 쓰는 소설을 좋아하는 내 취향에 알맞게
이 소설은 철학적 사변을 주인공의 독백으로 끊임없이 난해하게 파고든다.
실재 있었던 사실에 소설적 재미를 가미해서 이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불편하고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결핍이 있는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이다.
자신의 불안 정란 삶과 처지 , 자신의 모시던 주지의 부조리에 대한 복수와 아름다운 미적인 욕망을 지키고자. 자신이 숭배하던 아름다운 절
금각사를 방화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던 주인공은 반대로 절이 불타는 광경을 보면서 삶에 희망을 발견하고 살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이 소설을 30대에 꽤 흥미롭게 읽었지만 좀 불편한 소설이었다.
왠지 모르는 이질감이 느껴졌었다.
과거에 읽었던 소설을 다시 읽는다는 건. 나의 사고가 변화한 만큼 그 변화된 의식을 따라가는 내 마음을 다시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는데
허걱!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동질감 까지는 아니어도 인간 내면의 추악함이 오롯이 내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숨기고 싶은 추함 비겁함 그리고 나약함을 들킬 때 마치 죄를 지은 듯 수치심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 내면이 단단해지려면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이런 치욕적인 내면을 직면해야 한다.
주인공 미조구치는
말더듬이라는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몸도 약하고 말더듬이 때문에 자신의 의사나 감정표현을 못한다. 어려서부터 모드에게 놀림을 당하고 극도의 소극성으로 내향적 콤플레스를 가지고 있다.
승려였던 아버지의 권유로 지인이 주지로 있는 금각사로 수행 생활하러 들어간다.
금각사의 아름다움에 빠져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이라 미군의 폭격으로 금각사가 공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일상을 보낸다.
아버지가 병으로 죽자 어머니는 열심히 공부해서 미조구치가 금각사의 주지스님이 되라고 미조구치에게 야망의 불을 지핀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저 어머니가 안쓰럽고 싫은 존재이다. 아버지 또한 불쌍하고 측은한 인물이다. 그는 오래전애 인간에게서 사랑이라든가 신념이라든가 믿음이라든가 하는 이상적 단어를 잃어버렸다.
말더듬이로 놀림을 받아서도 아니고 어쩌면 미조구치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왕국을 만들어 살고 있는 스스로의 독재자적 내면 속에서 살기 때문이리라.
작가의 심미주의는 이상 한쪽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가령 증오심에 불타는 여자에게나 공포로 일그러진 여자에게서ㅡ아름다움을 느끼거나, 절망애 빠진 얼굴에서 인간 본연의 민낯 앞에서 아름다움이나 순수를 발견하기도 한다.
미군 병사가 돈을 주겠다면서 여자의 배를 짓이겨 밟으라고 하자. 주인공은 자신이 이일을 하지 않으면 미군 병사가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합리화를 시키며 여자의 밀치고 배를 밟는다. 신음하는 여자에게서 관능적 미를 느낀다.
아주 어려서부터 긴카쿠지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혔지만 그 아름다움은 동시에 자신의 결핍을 넘어설 수 없는 벽이 된다.
주지의 여성 행각을 술집에서 목격하고 주지를 협박하기도 한다.
주지와의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는 대목은 너무나 흥미진진하다.
주지는 미조구치를 절에서 내보내려고 머리를 쓰고 그는 태연하게 버티려고 한다.
이를 떨쳐 버리기 위해 금각사에 불을 지르면서 소설은 끝난다.
그리고 그것으로 생의 의지를
새롭게 다진다.
일본의 패망과 함께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되면서 정치적인 성향은 시대적 흐름에 순응하는 정도로 약하다. 인물 중심의 내면을 주로 다루고 있어 촘촘한 인물 묘사가 마치 나의 속을 까뒤집는 듯하다.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주인공을 엿볼 수 있다. 몸도 약하고 말더듬이로 예민하고 소심한 성격에 자신의 의사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미조구치는 어렸을 적부터 놀림을 당하고
소외된 자신의 결핍이 고독 안에서 스스로 세계를 만들고 우월감으로 자리 잡는다.
내면에서는 언제나 자신이 황제처럼 군림하면서 심미주의에 빠진다.
소설 속 이대목은 그런 주인공의 마음을 대변한다.
말더듬이가 말문을 열려고 조바심을 치고 있는 동안, 그는 마치 내부의 찰진 찰떡에서 몸을 떼어내려고 파닥거리며 몸부림치고 있는 참새와도 다를 바 없었다. 겨우 몸을 떼어냈을 때는 이미 늦다. 과연 바깥 세계의 현실이, 내가 쩔쩔매고 있는 동안 일손을 쉬고 기다려 주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기다려 주는 현실은 이미 신선한 현실은 아닌 것이다. 내가 애써서 겨우 바깥 세계에 도달해 보았자 언제나 거기에는 순식간에 빛이 바래고 어긋나 버린, ……그리하여 그것만이 내게 걸맞은 듯한 낡은 현실, 절반쯤 상한 냄새가 나는 현실이 가로놓여 있을 뿐이었다.
이런 소년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두 종류의 상반된 권력 의지를 품게 되기 마련이다. 나는 역사에 나오는 폭군에 관한 얘기를 좋아했다. 말더듬이인 내가 만약에 말수 적은 폭군이라고 한다면 부하들은 내 안색을 살피면서 온종일 벌벌 떨면서 지낼 테지. 나는 명확하고도 매끄러운 말투로 내 잔학함을 정당화시킬 필요도 없다. 내 침묵만이 모든 잔학성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평소에 나를 깔보는 교사나 한 반 친구들을 모조리 처형해버리는 공상을 즐기곤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는 또 내면세계의 왕자, 조용하게 체험하고 밝게 깨달아 내다보는 위대한 예술가가 되는 공상을 즐기곤 했다. 보기에는 초라한 나였지만 나의 내면세계는 이렇게 해서 누구보다도 풍요했다. 무언가 떨쳐버릴 수 없는 약점을 가진 소년이 ‘나는 은밀하게 선택된 인간이다.’ 하고 생각한다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 세상 어딘가에 아직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사명이 기다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본문 중 발췌----
이 대목이야말로 주인공의 현재와 미래를 지배하는 의지가 되고 있으며, 말더듬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의식이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저지르도록 만드는 실체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안의 왕국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상상 속 왕이
광기를 가지고 현실 속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간은 평생을 살면서 해야 할 일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내가 뻐져든 생각은 악의 평범성에 대한 생각이었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이 저지르는 부정한 행동들에 언제나 합리화하면서 스스로를 대변한다.
불편한 인간의 내면은 소설 속에서 묘한 카타르시를 준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모습이고 지금 내 모습이다. 우리는 모두 이런 모습들과 싸우면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