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도 자신이 죽어야 할 때를 안다

숙주

by 토끼

세포도 자신이 죽어야 할 때가 오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던져 스스로를 희생한다.

코로나 때문에 요즘 매일매일이 공포 스릴러 영화 같은 하루이다.
신천지 교인이 조직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은폐하고 축소하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버린 바이러스를 보면서, 교주는 사과는커녕 "금번 병마 사건은 신천지가 급성장됨을 마귀가 보고 이를 저지하고자 일으킨 마귀의 짓으로 안다"라고 주장했다.

무엇이 신앙의 참뜻이고 진정한 희생이고 대의인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마귀 음모론 하나로 모든 이성을 통제해버리는 인간의 집단 믿음을 보면서, 믿음이란 생각의 도구일 뿐이지 그 어떤 신념이나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신도 가져본다.
변화하는 생각을 믿음으로 붙잡고 맹목적이 되어가는 광신도들을 보면 인간의 다양한 마음 챙김 속 무아의 의미와 자유로운 마음의 흐름을 따라 감정의 변화하는 정신활동의 역동적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산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몸속의 모든 세포들의 아름다운 메커니즘을 단순히 마귀와 믿음의 무지로 덮고 내 몸의 ,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연의 이치를 거부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경이로운 생명의 순환운동을 거스르며 살고 있는 줄도 모른다.
생명은 그저 자연의 순리를 따를 뿐이다. 수용과 헌신 그리고 완전한 받아들임 속 비워진 정신 안으로 세포들은 묵묵히 생명체 안의 또 다른 주인으로 살고 있다,

의학적 지식이 짧아 자세히는 모르지만,
우리의 몸속 세포들은 5년 주기로 변화한다고 한다. 결국 내 몸은 5년 전 내가 아닐 수도 있다고 한다. 세포들은 매 순간 내 몸속에서 죽고 살기를 반복한다고 한다.
원자라는 세포 활동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주기를 반복하면서 미시적 우주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병이 들면 건강한 세포가 나쁜 병원균을 잡아먹거나 싸워서 병원체를 몰아내었다고 흔희들 생각한다. 면력력이란 이런 건강한 세포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학적 메커니즘 완전히 다르다.
우리 몸안으로 병원균이 침투하면 나의 세포 하나를 숙주로 삼아 기생하게 된다. 그때
숙주가 된 세포는 스스로 자살을 선택하고 병원균은 굶어 죽는다.
우리 몸안에는 수많은 암세포들이 생 격 나고 죽는다고 하는데 이 또한 나의 세포의 자살과 함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세포의 자살을 막고 숙주로 된 나의 아군 세포를 포섭해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면 암세포는 증식에 성공을 하게 되고. 서서히 내 몸은 죽어가게 된다.
병원체의 침투가 없는 순간에도 세포들은 스스로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세포의 수가 지나치게 많으면 함께 자라기 힘든 세포들 사이에서 어떤 세포가 특정한 신호물질을 만들어 뿜어내기 시작한다.
이 신경물질은 세포의 핵막에 손상을 입히고 세포의 핵심인 dna를 조각내서 스스로 사멸한다. 이때 하나의 세포가 자살을 위한 신호물질을 분비하기 시작하며 주위의 다른 세포들에게도 점점 번져나가 결국 함께 있는 세포들이 자살을 위한 신호물질을 분비하기 시작하고 결국 대부분의 새포들이 스스로 죽는다. 이렇게 세포들은 신경물질의 분비를 통해서 세포들 간의 희생을 자유롭게 유도한다.
이런 세포자살의 메커니즘을 알게 되면서 문득 신경전달물질이라는 신비한 신호체계의 세계를 상상해본다, 이 신경전달물질이 서로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우리 몸은 거대한 증식을 하면서 돌연변이를 일으킬지 모른다.
어쩌면 면역력이란 바로 이 신경전달 물질의 원활한 역할이 큰 것 같다.
자살과 생성을 도우고 강물처럼 감정이 자연스레 흐르게 해서 늘 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신경전 달물의 원활한 전달을 유도하는 것 아닐까! 어쩌면 신경전달물질은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로운 마음이라는 순환운동의 영향을 받지 않을까!
창조적이며 자유로운 생각이 다양한 신경전달 물질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
내 몸속에는 좋은 균도 해로운 균도 심지어는
기생충도 아름답게 공생하면서 살고 있다.
생명은 이렇게 조화롭게 유지된다.
암세포와 병원체도 내 몸속 나를 구성하는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나의 세포들은 기꺼이 그들의 숙주가 되어 그들의 먹이가 되고
때가 되면 자살함으로써
잠시 동안이나마
암세포와 바이러스 유해균들의 생명주기를 보장해준다.
이렇게 건강한 몸은 공생하는 법을 안다.
신경전달물질의 신비로운 체계에 의해서....

세포도 자신이 죽어야 할 때가 오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던져 스스로를 희생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째서?

언젠가 책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난다


믿음의 세계에 거짓이 많고 의심의 세계에 진리가 많다.

코스모스 우주속의
한 먼지가
세포와 생명품고 있듯이

김온리 시인의
'코스모스와 나비"의 시를 음미해 본딘.

"우리는 하나의 그림
속에서 동그라미를 꿈꾼다
우리라는 경계를 넘어서면
세포분열처럼 생기는
프레임 속 프레임,
꽃과 나비가 꼬리잡기를
한다
우리뿐인 우리가 없듯이 그들뿐인 그들도 없다

함께 혼자인 우리는
우리라는 프레임 안에서 평화롭다
내일이면 잃어버릴 꽃잎과 비에 젖을 날개를 맞대고 나란히 눕는다
일상이라고 말하는 너에게 나는
슬픔이라고 속삭인다
따로 또 같은 자세로 다른 호흡을 한다

동그라미가 끊어졌을 때,
너는
밀려 넘어졌다고 하고
나는 손을 놓쳤다고 느낀다
다른 그림이라고 너는 주장하지만
나는
화폭이 찢어졌다고 말한다
꽃과 나비는 각자의 프레임 속으로 걸어가고
그림자는 영원히 겹치지 않는다

흔들리는 노랑 코스모스에 부전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접었다가 편다
코스모스와 나비와,
너와 나와,
우리와 그들의 프레임은
언제나 합이 같고 규칙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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