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이는 이제 그냥 나한테 똥개다

배신

by 토끼


늘 다니던 과천 산책길 비닐하우스 집에 새끼 강아지 한 마리가 입양 왔다. 지저분한 개집 앞에 꼬질꼬질 누렁이 한 마리가 지나치던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 꼬리가 남아나지 않게 흔들어대며 애정공세를 퍼붓는다. 마치 세상에 태어나 나를 처음 보고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다음날 산책길에는 드러누어서 배를 내보이며 내 다리에 머리를 문지르면서 몸을 맡긴다. 사랑은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녀석은 첫 교감부터 운명처럼 엮여 있었나 보다. 언제나 산책길 입구 멀리서부터 녀석이 사는 개집부터 시선이 고정되는데 며칠 후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 불안해져서 뒤돌아서는데, 양제천 다리 밑으로 녀석이 지나가다가 다리 위 나와 시선이 마주친다. 그 녀석이다.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어 댄다.
녀석은 나를 알아본 걸까? 잠시 후 다리에 뭉클한 느낌이 들어서 쳐다보니. 녀석이 서 있었다. 빛의 속도로 나를 따라와서 내 눈앞에서 나의 마음을 또 사로잡아버렸다. 이런 요물이 있나. 어떻게 나를 알아보고 내가 무엇인데. 나하나만을 위해서 나를 보기 위해 달려온 녀석에게 오늘 또 마음을 뺏겨 버렸다. 주인이 뭐라고 소리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책길을 졸졸 따라오는 녀석을 등 떠밀어 집으로 보내고 뒤돌아서는 녀석을 향해 소리친다.
누렁아! 내일 또 올게! 안녕!
비 오는 날에도 안개처럼 미세먼지 낀 날에도 움직이기 귀찮은 날에도
누렁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면서 날마다 산책길을 나섰다.
누렁이는 내 산책길 마법 같은 즐거움이었다.

그날 그 일이 있기 전 까지는.....
나는 까맣게 몰랐었다.

내 사랑하는 누렁이가 보이지 않던 어느 날! 애타는 마음으로 산책길을 찾아 헤매는데 멀리서 누렁이가 보였다. 너무 반가워서 달려갔는데. 어떤 여자의 손 안에서 뒹굴면서 배를 깔고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고 있었다.
녀석은 나를 아는 척하지도 않았다.
여자는 녀석을 방울이라고 불렀다.
내가 누렁아!라고 부르자.
여자는 얘 이름이 누렁입니까?
무슨 개가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지
오늘 처음 봤는데 요래 이쁜 짓을 하네요.
여자는 누렁이를 밀어내면서
방울아 이제 그만 가!
따라오지 마!라고 하는데

누렁이는 내가 불러도 본체만 체 여자를 따라간다.

오 마이 갓!
너는 누구? 나는 어디?
이렇게 다른 종을 향한
나의 사랑은 끝났다.
너 같은 바람둥이를....

산책로를 바꾸었다.
그래도 누렁이가 그리운 날은
누렁이를 보러 간다.
누렁이는 눈이 마주치면 또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지만
모른 척한다.
그다음 날도.
모른 척한다.
누렁이는 이제 나한테
그냥 똥개다.
복날 사라져도 널 위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거야.
오뉴 얼 서리발처럼 상처 입은 여자의
마음은 차갑다.

애완견들은 똑똑하다.
주인만을 사랑해서 주인에게 사랑받는다.
타인에게 으르렁거리고 주인에게 순한 애완견은 더욱 사랑받는다.
모든 사람을 좋아하는 애완견도 사랑받는다.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생명체니까....

하지만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자립이 없는 생명체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한다는 게 말이 되나?

애완견의 완전한 조건은 자신을 보살펴 준다는 확실한 목적이 있는데......

고양이라면 몰라도.....
고양이처럼 자립형 동물은 언제나 배신한다.
주인 따위 관심도 없다.

하지만 사랑받는다.


누렁도 .방울이도 아닌 똥개가 되는 순간
나도 저 녀석처럼 해맑고
사랑에 연연해 하지 않는 자유로운 똥개가 되고 싶다.

똥개
너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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