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그 사람은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했을까?
생각이라는 걸 한다.
이런 저런 생각. 별의별 생각. 그러다 생각은
삼천포로 빠져서 그 사람과 상관없는 것으로 뻗어 간다. 그리고 결국 그말의 진의를 물어보겠다는 선택을 한다.
생각을 많이 하고 신중하게 고민하면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생각이 많이 해서 내린 선택과 , 마음에 끌려서 순간적으로 선택한 결정의
결과는 때로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선택의 결정은 바로 생각의 총량이 아닌 결정적 순간이다.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생각의 깊이나 강도 이성적 판단이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를 보면 깊이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 꼭 좋은 결과를 자져온것은 아니었다.
깊이 생각했기에 옳다는 확신이 결과를 온전히 책임지는 동기부여를 하는데
도움이 됐을
뿐이다. 결국 생각이란 도구일 뿐이지 믿음이나 확신이 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빠른 직관이 더 도움을 줄 때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생각이라는 걸 별로 하지 않는다.
어쩌면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도 한다.
무의식의 진화는 빠른 이성적 판단으로 연결되어 직관적으로 결정 내리는 촉이 발달되어 있다.
또한 생각을 안 하면 안 할수록 어떤 결정을 내리는 데 득과 실이 잘 보일 때도 있다.
글을 쓸 때 생각이 글로 나온다는 표현은 잘못된 말이다.
글은 직관적으로 나온다.
어떤 생각이 잠시 떠오르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 아무런 생각 없이도 줄줄 나오는 게 글이다.
한참글을 쓰다가 생각이란게 끼어들면, 이건 좀 말이 안되는데 별로인데 라는 간섭으로
글은 역동성을 잃는다. 물론 긍정적인 생각으로 다시물꼬를 틀면 다시 힘을 얻지만 긍정이 좋은글을 쓰는 토대는 못된다.
생각이 오히려 글을 우물쭈물 기어 들어가게 한다.
하루 중 생각이라는 것의 흐름을 가만히 살펴보면
정말로 유치 찬란할 때가 많다. 생각은 천방지축이고 무지하고 어린아이 같고 겁 많고
때로는 사악하고 이기적이고 편협하다.
내편인지 남편인지 이해하기 힘들 만큼 나에게 불리하게 흐른다. 생각은 긍정으로 가다가 삐딱선을 타고 부정으로 흐른다.
멈추어야 할 때는 이미 선을 넘어설 때도 있다.
물론 좋은 생각도 있겠지만 생각의 습성 자체가
양자역학의 확률처럼 불안정적이며
어디로 튈지를 모른다.
생각 비우기를 시작하면 생각이라는 정체는 정말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명상이라는 걸 한번 해보면 안다.
명상은 생각의 민낯을 보여주는 기회를 준다.
생각을 멈추어보면 드디어 알게 된다.
깊은 생각이란 없다. 우리가 배우고 학습하는 모든 지식은 이미 나의 직관으로 저장되고
컴퓨터보다 더 빠르게 이성을 움직인다.
오히려 나의 잡다한 생각들이 이성을 혼란하게 할 뿐이다.
생각 비우기를 하지 않았을 때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생각을 멈출 수 있는 순간을 알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깨어있는 의식이라는 것은 생각을 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
생각을 비운 상태이다. 생각을 비우거나 멈추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인식되고
그런 상태 안에서 평온해진다.
평온함이란 모든 감각이 열리는 시간을 말한다.
단지 희로애락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감각이 살아서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슬픔도 기쁨도 순수 상태로 느끼는
상태가 평온함에서 시작된다.
생각의 부스러기들 안에는 과거의 후회. 누군가의 평가 판단 비판 행복한 것들의 열망
미래의 불안 이런 잡다한 것들의 퍼레이드이다.
멈추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들이다.
지금이라는 강력한 힘을 가져와서 생각이라는 먼지를 털어내자.
생각은 순간의 도구일 뿐 머물게 할 필요가 없다.
오늘도 생각을 흐르게 해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