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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Feb 21. 2020

봉준호는 나와 동급이다.

아카데미

봉준호와 나는 동급이다.
말이 되나?
말 된다.
이제부터 그에게 기생하기로 했다

선망의 경쟁 대상이 있던 시절  나에게는 없는 것을 가진 그  매력적인 대상들은
내가 가고  싶은 길  앞에 늘 서 있었다.
조금만 노력하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을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하지만 내가 노력한 만큼 그들은 두세 배속 도로 나를 앞질러갔고,
언제 부터인가!  멈추어 버린 나의 발길 너머  이제 더 이상 그들의  뒷모습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나와는 경쟁조차 할 수 없는  동경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처음 매스컴을 통해 봉준호를 알게 된 건 괴물 영화 상영 후 봉준호의 다큐멘터리를 통해서였다. 그의 촘촘한 시나리오와 콘티를 보면서.. 언젠가 그가 영화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와 나는 한 끗 차이라고 믿었고, 나도 그처럼  나만의 창작 세계를 가질 수  있으리라 막연한 희망을 품었다. 그는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나 그 자체였다.
그의 아카데미상이 가슴 벅찬 이유는 그가 마치 나의 시간을 대신해서 상을 받은 것만 같은 감격 때문이었다. 그의 재능을 세상이 인정해준 것보다, 자신의 빛깔을 잃지 않고 일관성 있게 그 자리를 지킨 후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과거의 그나 아카데미상을 받은 지금의 그나 그 차이를 느낄 수 없는  같은 인물 같은 사람이다.
그는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손 내밀면 닫을 수 있는 대상이다.
동경의 대상은 내가 그 사람을 어떤 위치로 가져다 놓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의 문제이다.
동경은  그 사람을 둘러싼 권력과 , 부, 명예를  그 빛나는 포장지를 더 가치 있게 바라보는 것이다.  포장지 너머의  인간을 생각해보면 그와 나는 그저 한 끗 차이일 뿐이다.
 봉준호과 나 그 한 끗의 차이에는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자기 자신의 봉준호를  만나게 된다.  그는 아카데미라는 괴물과 자본이라는 괴물에 집어삼키지는  않을 인물로 보인다. 그를 둘러싼 포장지의 후광보다 그는 스스로 더 빛을 내는 사람이다.
 김기덕과  봉준호 , 홍상수, 박찬욱, 이세 사람의 영화의 차이점은 봉준호는 웃음코드를 늘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신만의 장점이 있다는 것이고. 스스로 모든 이야기를 창조해낸다는 장점이다. 봉준호는 영화감독이면서 아티스트이다.

봉준호라는 인물 자체가 아니스트로써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은 하면서도 더 자신다운 사람이 , 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아티스트가 된다는 건 자신이 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세상으로부터 사람들로 외면받았을 때 그 사람들의 시선애 맞추려는 노력보다. 그들이 원하는 나를 급조하여 재능이나 지위를 인정받는 내가 아니라 그들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켜야만 하는 나만의 것을 지키고 찾는 것이 아티스트이다.

아티스트란 대단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비교당하지 않는 나를 스스로 찾는 것이다.
뭔가 대중적이고 흥미로운 것들을 찾아서 주목받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내 것에서부터 나와야 한다.
내가 평생 경험하면서 조금씩 뿌리내려온 내 삶 속에서.....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토양 위에서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고 받아들이면서 더 튼실한 나무로 키워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봉준호와 나는 같다. 봉준호는 나의 자화상이다.
모든 창작자들의 희망이다.
지금 내가 가진 토양만으로도 너무나 충분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조적이란 말!

그 어떤 비교대상도 없이
절대적으로 나를 보고
나와의 경쟁을 통해서
나를 부수고 세상의 모든 다름을 받아들이고 또 다를 나를 발견하고 매 순간을 즐기면서......
또 나를 창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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