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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Feb 25. 2020

오래된 사랑

뿌리

한 사람과의 오래된 사랑!

흔희 사랑을 나무에 비교하기도 한다.
나무의 열매나 가지나 꽃처럼 되지 말고 뿌리 같은 사랑이 되라고 한다.
철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잎사귀와 꽃이 아니라
흙속에 파고들어서  변함없이 깊어지는 흙과 한 몸이 된 사랑! 그렇게 단단해지고 굳어진 사랑이 되라고 한다.

하지만 한 사람과 그렇게 오랜 시간 사랑이 지속될리는 없다.
나무의 뿌리가 흙속에 깊은 사랑으로 파고들기 위해서는. 늘 철마다 새롭게 피고 지고 열매 맺어야지 깊어질 수가 있다. 우리의 사랑은 그래서 늘 변화되고 새로운 사람들로 끊임없이 바뀌어간다.  하지만 한 그루의 나무가 같은 한 사람의 사랑만으로 늘 다른 꽃들을 피워낼 수 있을까?
사랑은 설렘이고 설렘은 내 안의 새로운 모습의 인식이다.
첫눈에 반했다는 이야기는 너로 인해서 내 안의 새로운 모습이 꿈틀댄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새로운 사람이 주는 즐거움은 그 사람에 대한 관심보다는
새로운 사람이 주는 변화된 나의 내면 때문이다. 한 사람이 마음속으로 들어와서 나태해져 있던 나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주면서 나를 다시 인식하게 만들어준다.
관념적으로만 보던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게 되고 상대가 나를 다른 관점으로 봐주기 때문에 내가 마치 다른 사람이 된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면서 새롭게 만난 나에게서 영감도 얻게 되고 활력을 찾게 된다.

"나 다시 사랑에 빠졌어"라는 이야기는  나라는 존재를 새롭게 인식해주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결국 사랑이라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무수한 존재인 나를 깨워 다시  열정을 태울 수 있는 시간을 부활시켜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매개체가 바로 당신이 나를 인식해주고 사랑해주면서 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끝났다는 건 , 내 존재의 새로움이 동시에 끝나버렸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새로운 내가 안에서 꿈틀거리지 않았기에 또다시 내 가슴을 팔딱이게 하는 또 다른  대상을 찾아 나선다.

결국 사랑이 변한다는 건 상대의 변심도 아니고
상대가 싫어진 것도 아니고,
내 안의 존재의 부재 현상 때문이다.
사람에 대해서 싫증을 잘 내는 사람들은 자신 안의 실존의 대상에 의한 부재이다.
사랑은 자신 안에서 창조되는 그 어떤 실존인 것이다.

신부나, 수녀, 수도승 같은 사람들은 어쩌면 자신의 실존을 자신 안에서 찾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타인의  소유 물적인 사랑이 아닌  영혼 불변의 신과 해탈이라는  믿음을 향해 수행을 통해서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고.
끊임없이 발견하는 사람들이다.
타인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본질에 흔들리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실존을 느끼기 위해 사랑을 하고 자신을 희생하고 예술을 하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문학을 하고 미치도록 돈을 벌고   
술을 마시고 때로는  쾌락을 위해 자신을 파괴하기도 한다.

육체적 쾌락이 주는 사랑의 본질은 가장 타인의 지배를 많이 받는 요소중 하나이다.
자신 안의 새로움이 타인의 젊음과 아름다움 열정으로 지배당한다면,
우리의 본능은 끊임없이 방황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나를 얼마나 인식하고
스스로를 얼마나 새롭게 창조하고
사랑할 수 있는가!
그  깊은 사랑의 마르지 않는 마농의 샘물은 스스로의  마음 안에 늘
차고 넘칠 것이다.
단지 모르고 있을  뿐이다.

양자역학의 세계처럼
우리는 모두 타인 속에서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늘 인식한다.
하지만 누군가 단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너밖에 없어!라고 의미를 주었을 때 그 인식은
비로소 나의 실존이 된다.
우리가 관측하지 않을 때
전자는 파동의 형태를 띠고
우리가 관측하는 순간
전자가  입자가 되는 것처럼...

지각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나로서 지각되는 것.
내 안의 세계가 아닌
너를 통해서 지금도
우리는 나를 찾아 헤맨다.

칠레의 노벨문학상(1945년) 작가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이
지은 [장미 뿌리]라는 시를  음미 해 본다.

땅 위에나 땅속이나 생명이  있습니다.
사랑과 증오를 느끼는 생명이 땅속에서도 자라고 있습니다.

땅속에는 벌레들이 꿈틀거리며 기어 다니고 있고
검은 밧줄 같은 나무뿌리가 있으며,
가느다란 지하수 줄기도 흐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지하수가 나무뿌리를 만나 말을 건넵니다.
"나는 지금까지 너처럼 이렇게 못생긴 걸 본 적이 없어.
원숭이가 장난 삼아 꼬리를 땅속에 넣었다가 우연히 너를 보게 되더라도
못 본 척 그냥 가버릴 것 같다. 너는 지렁이인 척이라도 하고 싶겠지만
지렁이처럼 윤기도 없고 또 움직일 수도 없잖아.
네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내 맑은 물을 마시는 것뿐이구나.
재수 없게 너를 만나 내 물이 반이나 없어졌어.
야! 이 못생긴 녀석아, 도대체 네 정치가 뭐니?"

뿌리는 겸손하게 대답합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지금 네 눈에는 길쭉하기만 하고
흙 범벅인 내가 하찮게만 보이겠지. 어쩌면 너무 피곤해 보여 노동자의 축 처진
어깨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래 맞아, 나도 일종의 노동자야.
나는 내 몸을 대신해 햇빛이 비치지 않는 여기에서 일을 하고 있지.
나는 이곳에서 너를 흡수해 내 몸 곳곳에 보내주어야 해.
그래야 내 몸이 더욱 신선해지고 아름다워 지거든. 만약 네가 떠나면
나는 또다시 생명을 유지해 줄 다른 물을 찾아 먼 여행을 떠나야 하지.
네가 언젠가 햇빛이 밝게 비치는 곳에 가게 되면 땅 위의 내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될 거야"

지하수는 뿌리의 말을 믿지 않았어요.
그러나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은 채 속으로 "나중에 두고 보자"라고
마음먹었습니다.

지하수 줄기는 계속해서 흐르고 흘러 땅 위의 세상이 보이는 곳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는 얼른 땅 위에 있는 나무뿌리의 색다른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요?
아름다운 봄 햇살이 비추이는 곳에 있는 나무뿌리의 또 다른 모습은
바로 너무나도 아름다운 장미꽃이었어요.

나뭇가지 위에 굵직한 꽃봉오리가 피어나고
공기 중에는 향긋한 장미향이 퍼져나갔어요.

한편, 지하수 줄기는 큰 도랑이 되어 아름다운 꽃이 활짝 핀 초원으로
계속해서 흘러갔어요.

"세상에, 이 못생긴 뿌리가 정말 아름다운 면을 가지고 있다니..... "
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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