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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 Mar 05. 2020

잔인할수록 느껴지는 카타르시스

중독

나는 왜 프로파일러 방송 속 잔인한 사건사고에  집중하는가!

Tv가 없는 집과 작업공간은 조용하다.
음악도 고요함도 집중도를 떨어뜨릴 때가 있다. 그때는 팟캐스트 방송을 듣는다.
일을 하면서 집중이 잘 되는 방송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범죄 스릴러를 다룬 프로파일러 방송이다. 공포영화나 스릴러 영화를 좋아면서도   사회면의 사건 사고 기사들은  왠지 마음이 뒤숭숭하고  불편해서 지나쳐버리기 일쑤인데 ,
프러파일러의 나지막이 깔리는  일정한 톤의 건조한 목소리로 무시무시한 범죄 이야기들을 이성적 논리로 이야기할 때면 금방 정신이  집중되면서 산만함이 사라진다.
코 가볍지 않은 잔인한 프로파일러 이야기를 가볍게  들으며  집중이 잘되는  특별한 이유는 있을까?  그저 개인의 취향이라고 단순히 결론짓기보다 나의 감정의 흐름을 한번 들여다보기로 했다.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아내와 남동생을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한 비장한 남자 이야기부터  희대의 잔인한 과거 연쇄살인마 이야기까지 해결된 사건과 미제로 남아있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이 비극적 이야기들이 주는 묘한 카타르시스는 감정을 차갑게 안정시킨다.
사건이 잔혹하면 할수록 비극적이면 더 비극적일수록   나의 뇌는 묘한 쾌감에 반응하면서 자극하고, 잠시 흥분상태에 있다가 금방 다음 이야기 속으로  망각의 카타르시스에 빠진다.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의 피드백도 없이 빠른 적응을 보인다.
 잔인한 범죄적 장면을 떠올리지만, 나에게 이런 잔혹한 일은 절대 없으리라는 안도감이  극적인 비극 상태에 있다가  다른 이야기로 화제로 돌리면 잠시  감정의 소진 상태를 겪는다. 그때 나의 뇌는 위험 요소가 없는  현실이 주는 쾌감이 평온한 상태에 빠진다. 그렇게  방송을 들으면서 그 평온은 조금 강도를 달리해서 계속 탄력을 받고 오래 유지된다.
방송 안에서  스토리가 주는 위험과 슬픔 공포는 나를 위협하지 않는다.



우리는  tv  미디어를 통해서  수많은 동영상에 접속한다. 유튜브에는 무궁무진한 영상과 자극적인 볼거리로 넘쳐 난다. 원하기만 하면 나는 그 어떤 영상도 스토리도 무한 반복으로  보고 들을 수 있다. 이렇게  많은 감정들을 경험한다. 아무 생각 없이 보다가도
쉽게 웃고 쉽게 울고 분노한다. 또한 쉽게 감동한다. 이러한 감정들은 특별한 과정도 없이 너무나도 쉽게 불쑥불쑥 나의 감정을 건드린다. 미디어, tv , sns, 이러한 매체들이 주는 웃음 슬픔 분노 감동의 감정은 천천히 내면에서 만들어진 아니라
준비 없이 주입되고  소비되는 감정의 형태를 띤다. 생산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소진돼 버린다.
극적인 비극을 본 후에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은 때와 같이 대체로 비슷하게 바로 정상적 감정을 되찾는다.
공포와 스릴러의 비극적 카타르시스 기능은  가상의 공간에서  변함없이 현재 공간에 안주할 수 있도록 안정화 역할을 한다.
타인의 불행에서 안도하면서 나의 안정을 확인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안정화는 우리의 심리에 있어 건강한 감정의 아니다.
미디어 속 보고 듣고 느낀 비극적이고 불편한 것들은  우리의 감정들을
  외면하기 쉽게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안정화된 감정은 집중도를 높이고 쉽게 평온함과 쾌감을 주지만 나에게 실제적으로 닥친 감정들을 대변하는 데 있어서는
직면하는 능력을 떨어뜨리게 한다.
   외면하는 능력은 무의식적으로 나타나지만
직면하는 능력은 훈련에 의해서 길러진다. 흥미위주의 유튜브 쇼프로 드라마 오락은 잠깐의 여가활용으로 이용했을 때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지 장시간 노출되면   너무나 쉽게 소진되는 감정들은 오히려 현실에 부딪힌 위험에 직면하는 능력을 떨어뜨린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어떻게 느끼고 얼마큼의 시간을 할애할지를 정하는 것은 우리가 노출되어있는 미디어에서 우리를 보호하는데 필요한 일이다.
너무 쉬운 감동. 손쉬운 즐거움, 자극적인 기쁨, 소독된 슬픔, 안정을 확인하는 비극,
이런 감정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료한 시간을 벼텨내지 못한다. 혼자만의 힘든 시간을 외면하게 만든다.
사람들과의 논쟁과 갈등을 묻어두려고 한다. 직면하지  않으려 한다.
미디어를 통해
타인의 불행에 비교해서 나의 감정이 안주하고,  재미난 것만을 추구하는 기울어진 여가생활은 직면하는 법을 회피하면서  감정의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나를 보호하는 일중 하나는 이러한  외부로부터의  너무 쉬운 달콤함, 과도한 감동. 타인의 불행 속 안정화된 감정. 이런 것 들일 수도 있다.

우리의 사고는
긴 호흡으로 읽는 좋은 책이나
관계 속 갈등이나  불편한 진실들을
 사유하는 시간을 통해서   직면하는 능력을 길러야 적절하게 조화롭게 유지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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